|
|
|
▲ 박여진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 전문위원 |
올겨울은 준비할 새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거리에는 단풍이 한창이었고, 겨울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첫눈마저 유난히 매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은 겨울만이 아니다. 바로 이 시기에 함께 다가오는 “은퇴”다. 수십 년간 직장에 몸담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유로운 몸이 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기도 하지만, 지갑 사정을 떠올리면 걱정이 앞서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은퇴를 앞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후의 경제적 안정성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자산 운용과 적절한 절세 전략만으로도 안락한 노후의 기초는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지금부터 은퇴 예정자라면 반드시 점검해야 할 핵심 사항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는 현재의 자산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은퇴 이후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자산과 부채 상황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전 금융권에 흩어져 있는 예·적금, 투자자산, 부동산 등 모든 보유 자산과 상환해야 할 부채의 잔액, 금리를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은퇴 후의 현금 흐름, 즉 평균 생활비, 의료비, 여가비 등을 고려해 대략적인 지출 계획을 세워보자. 여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 자산의 5~10% 정도를 유동성 자산으로 확보해 비상금까지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통해 현재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두 번째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음 편한 노후를 위해서는 꾸준히 들어오는 소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노후의 재정 상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현명한 연금 수급자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앞서 파악한 본인의 연금 상품을 바탕으로 수급 시기를 적절히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품마다 최소 연금 수령기간이 다르고, 절세를 위해 연 1500만 원 한도를 맞춰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금은 노후를 위한 혜택이 많은 상품인 만큼 오래 수령할수록, 그리고 연령이 많아질수록 절세 혜택이 커진다. 따라서 연금 수급 시기를 산정할 때 이러한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퇴직금 재원을 바탕으로 한 개인형 퇴직연금(IRP)는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율의 30%를 절세할 수 있으며, 11년차부터는 최대 40%까지 절세가 가능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11년차”의 의미가 퇴직 연차가 아닌 “실수령 연차”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의 연금 흐름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최소 금액(예: 월 1만 원, 연 10만 원)으로 연금을 수령해 실수령 연차를 채우는 것이 유리하다. 연금저축상품과 세액공제용 IRP의 경우에도 길게 받을수록 혜택이 존재한다. 바로 연령에 따른 5.5~3.3%의 낮은 연금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은 세액공제를 받은 연금저축의 경우 대부분 연 1500만 원 한도를 넘지 않도록 조정하지만, 퇴직금 수령용 IRP에서 발생하는 운용 수익이 이 한도에 포함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연금으로 지급되는 IRP의 퇴직금 재원 자체는 분리과세로 종결되지만, 재원이 고갈된 후 지급되는 운용 수익은 세액공제 상품들과 동일하게 연금소득세로 원천징수된다. 따라서 연 1,500만 원 한도를 넘지 않도록 수급 기간을 조정하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전략을 통해 연금 수령 시 불필요한 세금 부담을 줄이고 노후의 현금흐름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출생연도에 따라 다르며 정확한 예상 수령액은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선택지는 조기 수령과 연기 수령 제도다. 최대 5년까지 조기 또는 연기할 수 있으며, 조기 수령 시 연금액이 연 6% 감소하고, 연기 수령 시 연 7.2%씩 증가한다. 조기 수령을 고려하는 경우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래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다른 소득원이 부족하거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수급을 앞당기는 경우,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조건(합산소득 연 2천만 원 이하)을 맞추기 위해 조정하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다만 국민연금 고갈 우려는 현재 수급 예정자가 아닌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조급한 선택은 지양하자. 또한 연 6%, 총 30% 감액은 적지 않은 금액이기에, 건강 상태와 재무 상황 고려하여 부득이한 경우에만 선택하길 바란다.
세 번째, 금융 상품의 활용이다. 퇴직 예정자의 경우 자산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노후를 대비하여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예금으로만 노후 자산을 운용한다면 세금과 수익률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다. 예금은 만기 해지 시 이자소득세가 즉시 발생해 과세 이연 효과를 누릴 수 없으며,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 시장 기대감이 선반영되어 장기적으로 예금 금리는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큰 규모의 노후 자금을 연 2%로 운용하는 것과 연 4%로 운용하는 것은 장기적인 노후 재정 계획에서 절대적인 차이를 만든다.
따라서 여유자금 운용 시에는 ISA, 확정금리형 저축보험 등을 활용하고, IRP 내 운용 시에TDF(Target Date Fund)나 TIF(Target Income Fund)와 같은 상품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절세 혜택과 수익률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특히 ISA는 비과세 혜택과 수익 통산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3년 만기 후 연금저축 상품으로 이전하면 전환금액에 대해 10% 추가 세액공제(300만 원 한도)를 받을 수 있다. 아직 퇴직까지 여유가 있는 독자라면 ISA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 금융 상품이다.
네 번째, 관심이다. 사람이나 식물도 관심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성장에 차이가 나듯, 자산도 마찬가지다. 포트폴리오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자주 점검하고 리밸런싱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은퇴 전에 세운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세제 혜택, 재무 상태 등을 반영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해야 한다. 최소한 분기별로 한 번은 현금 흐름, 수익률, 세율 등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것이 좋다. 만약 자산 운용 전략이나 세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빠르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재정 계획은 배우자나 가족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증여나 상속 계획을 미리 세우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덩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언덕 위의 작은 눈이 굴러가면서 큰 눈덩이가 되듯, 작은 준비가 결국 큰 결과로 이어진다. 위의 사항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다 보면 누구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 바로 실천해보자.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글=박여진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 전문위원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