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잠 못 자…어머니의 몫까지 치유하는 길”
[미디어펜=박준모 기자]1980년 5월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사연이 전해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한 카페는 지난 12일 SNS를 통해 그리다(활동명) 씨가 프랑스에서 커피를 선결제한 사연을 알렸다. 

   
▲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이라고 밝힌 30대 여성 그리다(활동명) 씨가 탄핵 집회에 나가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사연이 전해지면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카페는 “해외에 계신 교포분으로부터 선결제 관련 문의가 왔다. 유선을 통해 후원하는 이유와 타국에서도 실시간으로 한국의 정권 심판에 대해 관심이 크다는 것을 듣게 됐다”며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가슴에 울림이 가득했다”고 전했다.

그리다 씨도 자신의 SNS를 통해 ‘아침이슬로 다시 만난 세계: 어느 계엄군 딸의 고백문 그리고 1000잔의 커피’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커피를 선결제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라다 씨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정보병이라고 밝히며 “엄마는 꿈도 많고, 재주도 많고, 공부까지 잘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군대뿐이었다”면서 “차별과 억압, 꿈과 자유가 이상하게 뒤엉킨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어느 날 엄마는 광주로 가 그곳에 모인 빨갱이들을 척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엄마가 그 도시에서 본 것은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며 “정보병이었던 엄마는 거리로 나가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함성과 총성, 찢어질 듯한 비명과 통곡, 끌려오는 무고한 사람들의 부서진 몸과 얼굴이 지옥처럼 엄마를 짓눌렀다”고 설명했다.

그라다 씨는 올해 여름 한국을 찾아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됐다. 그는 “우리 모녀는 까마득히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며 엄마의 처녀 시절까지 거슬러 갔다. 엄마의 군대 시절의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며 “여군이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날 엄마가 들려준 광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엄마의 주름진 손마디를 얼어붙게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택시 운전사’와 ‘서울의 봄’은 더 이상 멀고 복잡한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부로 와닿는, 내 가족의 이야기였다”며 “14시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라다 씨는 “지금도 긴 밤을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이슬처럼, 음울한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진줏빛을 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며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자들이 이기지 않기를, 더 이상 쓸쓸하거나 외로운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혁명의 땅 프랑스에서 그 기운을 담아 1000잔의 커피를 보낸다”며 “따듯한 커피에 여의도에 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다”고 했다.

그리다 씨는 자신의 사연이 한국에서 화제가 되자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나흘 동안 잠을 못 잤다”며 “시민들에게 마음을 보태는 것이 어머니의 몫까지 치유하는 길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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