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면서 이토록 마음 무거운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의례적이든 희망고문이든 새해엔 새 희망을 얘기한다. 2025년 시작은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현실의 짐이 너무나 무겁다. 암울한 현실의 벽 앞에 질식할 듯한 답답함이다. 계엄의 후폭풍과 탄핵의 광풍은 멈출 줄 모른다. 제주항공 대참사가 마지막 인내의 숨통마저 조여온다. 악몽의 12월이었다.     

을사년(乙巳年)이 밝았다. 육십간지 42번째 청색의 '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가 상징하는 '청사(靑蛇)의 해', 푸른 뱀의 해다. 굳이 아픈 기억의 역사를 소환하지 않아도 '을사늑약'이라는 잊혀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떠오른다. 잊고 싶은 갑진년이지만 맞이하기 두려운 을사년이다. 

뱀은 많은 오해를 간직한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뱀은 성질이 온화하여 원칙적으로 자기방어 이외에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뱀을 징그럽고 위험하고 악의 현신인양 여긴다. 보호냐 공격이냐를 떠나 인간과 상존하면서 뱀은 독을 품은 상징이다. 인간이 자연을 가벼이 여겨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지만. 
 
   
▲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토록 마음 무거운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의례적이든 희망고문이든 새해엔 새 희망을 얘기한다. 2025년 시작은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현실의 짐이 너무나 무겁다. 암울한 현실의 벽 앞에 질식할 듯한 답답함이다. /사진=김상문 기자

새해를 맞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을사늑약에서 유래했다는 을씨년스럽다는 역사의 비애를 간직한 채 국민의 가슴속에 불안함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국가라는, 나라라는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표를 던질 만큼.

정치 실종의 시대. '위기가 기회'라는 자기 위안은 이제 '위기는 생존'이라는 불안과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미증유의 계엄에 이어 탄핵 정국이 몰아치고 있다. '탄핵의 굿판'은 폭주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한강의 기적으로 부러움을 사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민주를 의심받고 자유를 속박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했다.

경제와 안보, 외교가 길을 잃었다. 삼류 정치판이 부른 권력 다툼에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해 온 기업의 경쟁력이 체력을 다하고 있다. 제조, 유통, 첨단산업 전체가 중국의 추격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선거때만 되면 종복을 자처했던 이들의 무능과 무지와 탐욕으로 나라가 통째 위기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시작은 글로벌 시장에 퍼펙트 스톰을 예고하고 있다.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고 미국 최우선 정책을 예고했다. 1기 때보다 더욱 강력한 압박을 천명했다. 

미증유의 위기다.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리후 1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불안과 증시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은 기대감을 주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서 있고 낭떠러지 아래는 온통 가시밭이다. 제2의 IMF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꾼들의 야바위 놀음이 불러온 폐해와 온갖 부작용들은 곧장 국가를 향한 청구서로 돌아온다. 정국 혼란속에 모든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과 중소기업의 사활이 걸린 주52시간제는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늘부터 시행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재계 인사들이 국회를 찾아 야당 의원들에게 읍소했지만 그들의 선택은 노동계의 '표'였다. 정치인 아닌 정치꾼과 짬짜미한 노동 귀족이 만들어낸 '표퓰리즘'의 세상이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마저 탄핵의 심판대에 올렸다. 탄핵의 굿판에 두 번씩이나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미래를 보고 있다. 국정 마비는 현실화하고 있다. 초유의 대통령권한대행 탄핵소추다. 헌법이나 국회법에 의결정족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밀어붙였다. 엎친 데 덮친 혼란 양상은 한 치 앞도 예상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대행의 대행까지 겁박하고 있다.

계엄 이후 한국경제는 외국인의 주식투매로 원 달러 활율이 급등세를 이어가고 소비심리 투자심리 지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 대행 중심의 정부 노력으로 그나마 유지했던 국가 신용등급도 살엄음판이다. 대행의 대행이라는 한국의 정치 리스크는 공포감마저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의 충격까지 덮치면 한국경제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대혼란의 와중에도 정치권은 대결과 충돌의 진영논리로 폭주하는 열차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법치는 무너지고 헌정은 위태롭다. 자신들만의 잣대로 법치를 부르짖고 헌정 질서를 외친다. 거칠고 무책임한 독선과 아집과 오만으로 똘똘 뭉쳤다. 구제불능의 오염된 집단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은 정치인들에게 금과옥조였지만 잊혀진 단어다. "정치 자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던 그의 말을 지금의 정치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치는 없고 모리배만 춤추는 세상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을사년, 기억하고 싶지 않는 역사의 소환에 현대판 '을사의 적'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뱀은 허물을 벗고 스스로 탈태를 한다. 대한민국이 살길은 정치의 환골탈태다. 경제, 안보, 문화, 사회의 발목을 잡고 갈등을 부추기는 자해의 정치를 내려놓길 바란다. /사진=김상문 기자

정치, 경제, 안보의 공백.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새해를 사흘 앞두고 일어난 제주항공의 참사는 전 국민을 슬픔속에 빠져들게 했다. 국가 재난 앞에 정부도 국회도 비정상인 이 상황을 만든 이들 앞에 국민은 공분을 느낀다.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책임을 운운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이고 공허한 메시지를 띄우는 이들의 진짜 모습은 뭘까?

IMF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은 국민이 나서서 해결했다. 국민보다 뛰어난 정치를 보지 못했다. 살아야 하는 절실함은 정치를 뛰어넘는 생존철학이다. 그 절실함을 정치가 옭아매고 있다. 경제를 옭아매고 국민을 둘로 가르며 오로지 집권야욕에 사로잡힌 탐욕의 정치가 판치고 있다. 

정치, 그리고 정치인들이 한 건 오로지 권력욕에 눈 먼 이념 갈라치기로 지난한 싸움을 해온 것 밖에 없다. 법치와 헌정을 농락하며 현실 증거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공인된 범법집단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이 그래도 이 정도로 견디는 건 기업인과 국민들 때문이다. 정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수준에 비추면 아직도 대한민국은 기적의 나라다.

노벨문학상이 나오고 K-문화, K-방산. K-음식까지 세계를 유혹하고 있다. 경제 기적의 나라에서 새로운 희망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을 놀라게 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 2024년 정치는 재난 그 자체다. 정치판만 보면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 국민은 살고 싶다고 몸부림치는데 수취불명 '바보들의 행진' 끝은 어디일까?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자. '같이'의 '가치'를 함께 하며 모두가 기업가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자. 한강의 기적을 만든 기업가의 정신, 금 모으기로 나라 구하기에 나섰던 그 절실함이 절실하다. 2024년 12월의 기막힌 악몽을 깨쳐나갈 주인공은 결국 국민 몫이다.

을사년, 기억하고 싶지 않는 역사의 소환에 현대판 '을사의 적'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뱀은 허물을 벗고 스스로 탈태를 한다. 대한민국이 살길은 정치의 환골탈태다. 경제, 안보, 문화, 사회의 발목을 잡고 갈등을 부추기는 자해의 정치를 내려놓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사는 길은 과거를 버리고 모든 걸 리셋하는 것만이 생존법이다. 그 첫 단추는 정치여야 한다. 더 이상 혼란을 부추기는 비정상의 정치는 청산돼야 한다. 그리고 뱀이 허물을 벗듯 대한민국을 다시 리셋해야 한다. 위선과 거짓의 허물을 벗고 역사 앞에 당당히 서야 한다. 탈피의 고통이 있더라도 가야만 할 길이다.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