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익령, '옥씨부인전' 송씨부인 삼킨 여배우의 감회
2025-01-27 08:00:00 | 이동건 기자 | ldg@mediapen.com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2001년 MBC 30기 공채 탤런트로 시작해 차근차근, 누구보다도 꾸준히 존재감을 입증해온 마라토너다. 24년의 세월 동안 한 치의 곁눈질 없이 걸어온 그녀는 가랑비에 옷 적시듯 대중의 뇌리에 존재감을 천천히 각인시켰다. '옥씨부인전'의 송씨부인, 배우 전익령의 이야기다.
"사실 악역을 처음 한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반응이 많이 온 작품이에요. 주변분들은 성격이랑 너무 다르다고 하면서도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욕도 많이 먹어봤고.(웃음)"
'옥씨부인전' 종영을 맞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전익령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고른 웃음소리를 내는 전익령의 모습은 시종일관 화사한 매력으로 극 중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했다. 풍부한 연기 열정으로 요동치는 에너지가 싱그러운 향기를 냈다.
▲ '옥씨부인전'의 배우 전익령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누아엔터테인먼트 |
"남들은 나쁘게 보는 악역일지라도 전 그 인물을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잖아요. 또 처음 송씨부인이 등장했을 때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등장했을 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하니, 그 부분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첫 등장 때는 악인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멀쩡하고 낭창한, 유머 코드도 조금 있고, 자신에겐 이게 그냥 너무 일상인 느낌. 후에 등장했을 땐 더 다른 감정이잖아요. 그 둘의 차이를 두고 싶었어요."
청수현 별감 백남기(백승현)의 부인이자 백도광(김선빈)의 어머니로 분해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인 전익령. 교양과 품위가 부족해 막말을 일삼는가 하면, 노비들을 짐승 취급하며 저지르는 만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송씨부인이 되기 위해, 캐릭터를 이해하고 인물의 명분을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시대상에서 보면 노비가 내 아들을 망치는 건 못 보는 거지. 물론 안 좋은 일을 하지만, 용납이 안 되니까... 노비가 소·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시대니까. 이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인간성이 좋은 여자면 따뜻하게 대했을 텐데, 그건 결여된 거죠. 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억울한 느낌."
▲ '옥씨부인전' 스틸컷. /사진=SLL, 코퍼스코리아 |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표독스러운 민낯부터 비뚤어진 모성애 연기까지, 잔악무도한 열연 퍼레이드에 실시간 댓글창이 들썩였고 악플까지 더러 올라왔다. 현장에서 연기를 지켜봤던 매니저마저 방송을 보며 욕설을 뱉었을 정도니, 배우의 입장에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다만 적절한 표현의 수위를 찾는 작업이 그녀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연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을 때 임한 작품 중 하나예요. 제가 모니터를 보면서도 '어? 내가 느낌이 달랐구나' 저만이 느낄 수 있는… (연기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잖아요. '짤'의 시대니까. 전 작품에서 제 롤과 임무를 생각해서 배분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모든 신에서 감정을 최대치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것에 대한 고민이 생긴 작품이기도 해요.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건가. 뭐가 더 맞는지는 잘 모르겠고, 시대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으니 나도 변화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옥씨부인전'은 24년간 치밀하게 쌓인 전익령의 내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발전'과 '성찰'을 들며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뚜렷한 내면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드라마가 됐든, 무대가 됐든, 영화가 됐든 제가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뭔가 방식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변화를 가져야 되나… 제 것만 고수하고 살 순 없는 거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나 늘 돌아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발전도 없으니까."
▲ '옥씨부인전'의 배우 전익령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누아엔터테인먼트 |
연기에 대해 꼬박 한 시간을 이야기해도 모자란 배우의 말투는 차근차근 쌓아올린 필모그래피처럼 촘촘하고 정갈했다. "기억이 안 날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다"는 그녀는 이화여고 연극부, 중앙대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사실 제가 뭘 꾸준히 오래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꾸준히 하고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했을 땐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힘들지만 재밌고. 늘 새롭고…"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연출한 스티븐 돌드리 감독과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감독의 정서를 사랑하는 전익령.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과 건강한 품격이 가슴 한켠을 따뜻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옥씨부인전'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많은 욕 감사드립니다. 욕 먹으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옥씨부인전'의 배우 전익령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누아엔터테인먼트 |
▲ '옥씨부인전'의 배우 전익령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누아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