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된 후 민중사관에 점령당한 국사학계에 대한 바른 역사 투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하여 반대 움직임 또한 거세지고 있다. 시민단체 교육단체 등 좌우 갈등이 야기되는 가운데 여당은 정부의 국정화 추진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나섰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벌이는 등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슈의 한복판에 서있다. 미디어펜은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시발점이 된 교학사 교과서 파동에 대하여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파동의 전개과정과 역사교육의 문제’(정영순 강규형 공저) 논문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마지막 세 번째 연재다. 원문은 ‘시대정신 2013년 가을호’에 실렸다. 정영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 교수가 제1저자로, 강규형 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가 교신저자로 기술했다. [편집자주] |
[역사교육의 문제③] 계급투쟁만이 역사의 진보다?
3. 역사교육의 방향성: 결론에 대신하여
역사교육의 기본 목적은 학생들이 자신과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경쟁력있는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사실적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수집된 정보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이 확장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교육의 가치는 단순히 많은 역사적 사실을 획득하는 것보다 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시각을 가지고 세계를 관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그리고 역사교육의 목적은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인류의 집단적 경험을 되살려 과거 인간의 잘못된 과오를 반성함으로써 현재나 미래의 활동과 생활에서 도움을 얻는 것이다.35)
오늘날에는 교육이 일반화되고 교육 대상인 대중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교과서도 다양해진 교육환경에 대응하고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36)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세계적으로 교과서의 내용에 관한 문제제기를 한 수많은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유지하며 자극할 우려가 있는 민족적·계급적 편견이나 고착화된 표현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였다.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세계평화회의에서는 민족 간 오해의 원인을 일으키는 교과서가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과서 집필자와 출판인에게 무력의 역사에 할애하는 지면을 줄일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 몇몇 미미한 시도에서 그치고 말았다.37)
제1차 대전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중단되었다가 다시 세계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1919년과 1933년 사이 거대한 교과서 재검토 운동이 국가기구와 국제적 민간기구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이 운동은 일차적으로 역사교과서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 외에도 문집, 독해 교과서, 도덕, 지리 교과서로 확장되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스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이러한 협력운동은 일시 중단되었고 전쟁이후 유네스코, 유럽이사회와 역사가 모임의 주창에 따라 운동은 다시 재개되었다.38) 이와 같은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강하게 확산되어 양차 대전 사이의 축적된 경험을 충분히 활용하였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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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가 16일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서 주최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2014년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독으로 채택했던 부산 부성고등학교의 전 교장, 심현철 회원이 교학사 교과서 등 출판사별 주요내용을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
세계사적인 이러한 경험들은 한국사 교육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세계사 속에서의 한국사 발전 과정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계급투쟁만을 역사의 진보라고 서술할 것이 아니라 현대 시기에 급성장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남북한의 분단 극복과 북한 체제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건강한 세계시민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자국사에서 민족주의 중심의 역사서술과 교육을 하였을 때 인류는 전쟁의 비극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한국의 역사교육도 민족주의적 요소를 지양하고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이 최근 체제위기를 맞이하자 민족주의를 내세워 남한 정권을 타도하고 김일성민족이 중심되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하자는 대남전략에 남한의 역사교육이 이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위에 언급한 국제표준을 맞추려 노력한 시도로서 평가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가 검인정 통과가 됐다는 사실을 접한 일부 국사학계와 좌파언론들, 심지어는 민주당과 일부 교육감들이 내용이 공개도 안 된 교학사 교과서를 공격하며 검인정 취소 혹은 보이콧 운동에 준하는 행동을 한 것은 지적인 파산이며 정신적 폭력이라 할만하다.
조선일보 이선민 선임기자는 〈국사 교육 독점하더니 '甲질' 하는 左派〉라는 칼럼에서
아직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좌파의 대대적 공격을 보면서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어떻게 같은 사안에 대해 그동안 주장했던 논리와 행동에서 그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04년과 2008년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좌(左) 편향 논란에 휩싸였을 때 그들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 수정 요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학부모와 시민들이 교과서 필자들과 출판사에 항의하자 "겁을 줘서 책 내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검정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교과서를 수정도 아니고 심사에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압력을 넣고 있다. 출판사에 대한 거센 전화 공세는 물론 교학사 출판물 전체에 대한 '불매(不買)운동'까지 대두됐다.
좌파의 이런 태도는 그동안 자기들이 줄곧 내세워온 '역사 교과서의 다양화'라는 명분에도 어긋난다. ... 그러더니 막상 자기들과 사관(史觀)이 다른 교과서가 나오려니까 "그런 교과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논리와 명분을 중시한다는 좌파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사 교육 현장의 독과점(獨寡占)이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한국근현대사'가 고교의 독립 과목이었을 때 검인정 교과서 6종의 사관은 중도파에서 좌파에 걸쳐 있었고, 우파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왼쪽에 있다고 평가된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절반 넘게 채택됐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좌파 역사 교수와 교사들이 서로 밀어주며 철옹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파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처음으로 교과서를 집필해서 그 성(城)에 구멍이 날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못 들어오게 막거나 결정적 흠집을 내려는 것이다.40) |
라고 기존 국사학계의 이중성과 위선을 맹비판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학사교과서의 저자인 권희영교수와 저자가 속한 학회(한국현대사학회)임원인 정영순교수에 대해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표적 감사를 감행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을 감수해야할 暴擧였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학)는 이 사건에 대해 문화일보 칼럼에서
최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 공개’ 등 굵직굵직한 정치 사안들에 묻혀 크게 의제화되지는 못했으나 필자에게는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자로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학자로서 이 못잖게 우려스러운 사안이 있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다. 바로 이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그토록 민주화를 열망한 것 아닌가? ... 이것이야말로 민주당 선배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쟁취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며 절대로 정략이나 진영논리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지난 4일 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정영순 교수에 대한 특별감사를 위해 관련 자료 제출을 연구원에 요청했다. 두 교수는 모두 보수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임원으로 ... 김 의원이 요구한 자료에는 두 교수의 개설강좌·강의계획서·강의시수·수강가능인원·수강신청인원·강의평가와 각 개설 강좌에 대한 휴강 및 보강 실시 내역, 원내 연구과제·수탁과제 목록, 연도별 연구비 및 수당과 해외출장 내역서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핵심 쟁점은 이 정보가 얼마나 민감한 개인 정보냐가 아니다. 정보 요청이 해당 학자의 학문의 자유를 구속하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것이 문제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토론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다양한 시각에서 집필된 역사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 또한 건강한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유권자는 민주당 일부 의원이 공유하는 역사관을 우월한 역사관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지난 대선 결과와 현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말해준다. 그동안 많은 역사 교과서에 대해 진보 편향성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러나 어느 국회의원도 특감(特監)을 위해 그 교과서들의 저자에 대한 신상 정보를 요청한 적이 없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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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一喝했다.
그런 의미에서 교학사교과서의 검인정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은 한국사회와 정치계, 그리고 일부 국사학계와 언론의 저급성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영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 교수(제1저자), 강규형 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교신저자)
35) 정영순, 앞의 글, 188쪽
36) Alain Choppin. “서양에서의 교과서와 교과서 연구”. 『국가간 상호이해 증진을 위하한 교과서 개선』. 한국교육개발원. 2002, 19쪽
37)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발생한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Scherder, Carl-August; Die Schulbuchverbesserung druch internationale geistige Zusammenarbeit, Geschichte, Ar beitsformen, Rechtsprobleme, Braunschweig, Westermann, 1961, 41-48쪽 참조
38) 교과서 개정에 대한 세계적 움직임의 역사에 대해서는 풍부한 참고도서가 독일의 게오르그 에케르트 국제교과서연구소에 상당수 비치되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George Eckert, Internationale Schulbuchrevision, Internationale Zeitschrift fuer Erziehungswissenschaft II. 6, (1960) 이 있다.
39) Alain Choppin, 앞의 글, 20쪽
40) 이선민, “‘국사 교육 독점하더니 '甲질' 하는 左派” 『조선일보』, 2013.6.10.
41) 한규섭, “민주당, 급할수록 基本 존중해야” 『문화일보』, 201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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