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된 후 민중사관에 점령당한 국사학계에 대한 바른 역사 투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하여 반대 움직임 또한 거세지고 있다. 시민단체 교육단체 등 좌우 갈등이 야기되는 가운데 여당은 정부의 국정화 추진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나섰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벌이는 등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슈의 한복판에 서있다.
미디어펜은 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하여 기존 검인정 체제의 한국사 교과서 서술이 어떻게 편향적으로 이루어졌는지 ‘2013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분석 - 교육부의 수정 과정을 중심으로’ 논문 연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논문은 5회에 걸쳐 연재되며 아래 글은 마지막 다섯 번째 연재다. 원문은 ‘Social Studies Education 2015, 54(1), pp.109~128’에 실렸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가 주저자로,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교신저자로 기술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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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교과서 분석⑤] 사실 누락, 북한 주장은 그대로?
2013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분석
- 교육부의 수정 과정을 중심으로 -
3. 북한 정권 수립에 관한 서술
앞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부정하는 서술이 7차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북한 정권 수립에 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북한 정권 수립에 관한 별도의 서술 항목을 마련하지 않은 지학사와 리베르스쿨을 제외한 나머지 6종 교과서의 해당 서술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25)
먼저 해당 소주제의 제목을 보면, 교학사 교과서만 <북한에서의 정권 수립 과정>이라고 서술하여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반해, 다른 5종(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은 모두 북한이 ‘정부’를 수립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더군다나 6종의 교과서(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교학사, 지학사)는 본문에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이란 표현을 써서 북한에선 국가가 수립되고 남한에서는 정부가 수립됐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소주제 제목은 본문에서 자연스레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서술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5종 중 금성, 미래엔, 천재교육의 3종은 남과 북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명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금성은 절 제목을 아예 <한반도에 두개의 정부가 수립되다>로 서술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수정 권고를 받았다.26) 북한정권에 대한 서술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교학사 교과서만 북한 정권이 공산당에 의해 수립되었음을 정확히 명시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교과서는 북한 정권을 정당한 절차에 의해 수립된 정권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정영순, 2013: 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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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4> 2009개정 한국사, 북한 정권에 관한 서술 |
교학사는 소련의 지시로 공산당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북한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분단의 책임이 북한에 있으며, 북한 정권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해 정통성이 없는 정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의 5종 교과서는 북한 정권 수립에 대해 서술하면서 공산당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5종은 모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북한이 마치 제대로 된 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적인 정권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을 하고 있는 5종 가운데 특히 문제가 많은 것은 두산동아 교과서이다. 해당 서술을 보자.
북한, 정부를 수립하다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 곧바로정부 수립에 나섰다. 8월 25일에는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하였다.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1948년 9월 최고 인민 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하였다. 9월 9일에는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를 승인하였다. ▣남한에서의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선거 남한에서는 공개적으로 선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실시되었다.” (두산동아. p.273) |
이 교과서는 북한이 남북한 인구비례에 따른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수립된 국가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거는 노동당이 지명한 단일후보에 대한 찬반투표로 진행되므로, 보통·평등·직접·비밀 투표인 민주주의 선거와는 거리가 멀다. 두산동아를 비롯한 5종은 모두 8월 25일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만 5종 가운데 어느 것도 이 선거가 이른바 ‘흑백 투표함’에 의한 찬반 공개 투표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두산동아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5·10 총선거에 대해서는 “남한만의 총선거” 라고 두 차례나 폄훼하면서(p.269, p.270), 북한의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선거는 남북한 전체에서 이루어진 선거로 서술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만의 총선거”를 통해서 수립되었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남북한 전체에서 이루어진 선거로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만의 선거를 통해 남한에는 ‘정부’가 수립되고, 북한에는 남북한 전체의 선거를 통해 ‘국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이 아닌 북한에 우리 민족 국가의 정통성이 있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는 서술이다. 즉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극도로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서술인 것이다.
또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를 승인하였다.”는 두산동아의 마지막 구절은 “하지만 북한 정권은 유엔의 승인을 받을 수 없었다.”는 교학사 교과서의 관련 서술과 확연히 대비된다(p.307).
IV. 맺음말
본 논문에서는 2013년 8월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8종을 대상으로 한 교육부의 수정 과정에서 드러난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가 어떠한 서술상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2013년 10월부터 11월까지 이루어진 교육부의 수정과정에서 드러난 현행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교과서 중 일부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경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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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등 이들 5종 교과서는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서술을 해서 교육부로부터 수정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수정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원문유지 입장을 고수하면서 수정을 거부했고, 그 결과 오늘날 북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교과서라는 한계를 드러낸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서술한 교과서는 교학사 교과서 하나뿐이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사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정통성을 폄훼하는 역사학계 일각의 주장이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7차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였다. 6차까지의 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2002년에 7차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6종이 검정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이를 ‘정부 수립’으로 격하시키는 서술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7차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6종 및 2007개정 『한국사』교과서 6종 중 절반가량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내용이 없다. 7차 이후, ‘정부 수립’으로 격하시키는 해석이 마치 정통해석인 양 교과서에 버젓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교과서의 서술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서술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 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현행 한국사 가운데 3종(두산동아. 미래엔, 천재)은 유엔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대한민국이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내에서” 또는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서술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수정 권고를 받았다. 이처럼 유엔 총회의 결의를 왜곡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서술도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서술과 마찬가지로 7차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 교과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유엔의 승인을 얻었어도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가 아니라 한반도에 세워진 두 개의 “정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보는 서술, 즉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을 대등한 “정부”로 서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부정하는 서술은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계속된다. 8종 가운데 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의 5종은 모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거론하면서 북한이 마치 제대로 된 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적인 정권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하는 서술을 하고 있는 이 5종의 교과서는, 북한에 불리한 사실은 누락시키거나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서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바로 그 5종 교과서이다. 한국 근·현대사 서술에서 보이는 친북 성향과 반(反)대한민국 성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5종의 교과서는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서술을 하는 바람에 북한과 관련된 상당수의 서술에서 교육부로부터 수정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수정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또는 ‘원문유지’ 입장을 고수하면서 수정을 거부했고,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교과서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주저자), 강규형 명지대 교수(교신저자)
25) 지학사와 리베르스쿨은 북한 정권 수립을 별도의 소주제로 다루지 않고, 다른 단원에서 소략하게 다룬다.
26) 금성의 이러한 서술에 대해 교육부는, 단원 제목에 남·북한을 동격으로 서술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당시 UN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 유일한 점에 유의하여 제목을 수정하라고 권고했다(교육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수정·보완 사항」: 19). 이후 금성은 이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다>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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