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방송협회가 오늘 오전 비대위를 열고 지상파재전송 전면중단을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지난해 11월 21일 서울대 홍종윤박사가 발표한 재송신댓가 관련 연구보고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홍종윤박사(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21사업단 책임연구자)는 ‘지상파 재송신 저작권 및 대가 제도’ 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지상파방송의 권역내 동시 재송신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저작권을 면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상파 동시 재송신 저작권료 면제
미국의 케이블SO들과 위성방송사업자들은 각각 저작권법 111조 및 122조에 근거하여 권역내 지상파 재송신에 대해서는 저작권 강제허락(royalty free permanent compulsory copyright license)에 따라 저작권료를 면제받고 있다. 권역내 재송신의 경우, 원래부터 지상파 방송 신호가 공중 송신을 통해 무료로 시청자에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권역 내 지상파 재송신으로 저작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편, 공영방송 체제를 가진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들 역시 플랫폼사업자의 지상파 재송신과 관련한 저작권이나 저작인접권에 대한 보상 조항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 이는 저작권법 상의 ‘서비스 지역 원칙’(service area principle)과 ‘이중 보상(double payment) 방지’ 등의 논리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비스 지역 원칙’이란 최초 방송되는 지상파 방송의 방송권역(service area) 내에서 신호 내용을 변경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재송신 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자의 동의나 저작권 보상을 요하지 않는다는 저작권법 상의 해석을 말한다.
‘이중 보상 방지’란 공영방송 서비스의 경우 수신료의 형태로, 상업방송 서비스의 경우 광고 시청의 형태로 이미 비용을 지불한 시청자들이 플랫폼사업자를 통한 지상파 시청에 또다시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말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이 저작권을 이유로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권역 내 동시재송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방송법이나 저작권법의 개정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최근 지상파 방송의 저작인접권을 인정한 지상파-케이블 재송신 판결에 대해 재송신 관련 저작권법 및 방송법의 법적 미비 상황으로 인해 ‘서비스 지역 원칙’이나 ‘이중 보상 방지’ 같은 저작권 기준들이 고려되지 않았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판결과는 반대로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권역내 동시 재송신에 대해 저작권료를 면제하는 법 규정이나 판례들을 지니고 있다.
▲ 대가는 재송신 정책목표에 근거, 국가마다 달라
연구보고서는 또한 저작권료와는 별개로 지상파 재송신 대가 관련 정책이 수립되어야 함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해외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경우 지상파 재송신의 저작권이 면제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대가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재송신 동의’ 제도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1992년 미국 의회가 재송신 동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당시 케이블SO가 방송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성장함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재송신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간의 시장 지배력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케이블SO 이외에 다채널 방송사업자들(위성방송, 통신사업자)이 등장하면서 지상파 방송과 다채널방송사업자 간의 협상 구도에 변화가 발생했다. 위성방송이나 통신사업자 등 신규 사업자들이 케이블SO와의 경쟁을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프로그램 경쟁력을 지닌 지상파 방송과 재송신 동의 협상을 체결하기 시작했고, 2005년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이 상당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지상파 방송과 다채널 방송사업자 간의 갈등과 분쟁이 심화되어 지상파 방송사들이 재송신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재송신 대가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 의회와 FCC는 시장의 자율 협상에 맡긴다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규제 개입을 자제해왔으나, 최근 들어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수퍼볼 같은 국민적 관심 프로그램의 재송신 중단 위기가 자주 발생하자 재송신 동의 규칙에 대한 개정에 착수한 상태다.
한편, 공공서비스방송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경우 미국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플랫폼 사업자들이 재송신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상파로부터 받거나 플랫폼 사업자와 지상파 간에 재송신에 대한 대가 거래가 없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표1 > 지상파 재송신 대가 사례 : 플랫폼사업자가 대가를 받는 경우
국가
|
대가 지불 규정
|
대가 산정 방식
|
영국
|
지상파방송(PSB)사업자가 유료플랫폼사업자(Sky)에게 재송신비용을 지불함
|
유료플랫폼사업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비용을 제시하도록 함
|
독일
|
대형 케이블SO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비용을 요금표에 따라 받음
|
계약에 따른 협정
|
프랑스
|
의무재송신 채널이 아닌 상업지상파 방송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들이 재송신 대가를 받음
|
방송사업자 간 계약에 의하되, 플랫폼사업자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공정하고 비차별적이어야 함
|
벨기에
|
지역방송은 무료로 재송신되며, 전국 지상파채널들에 대해서는 지상파방송사들로부터 대가를 받음
|
케이블SO들과 지상파 방송사들 간의 계약
|
오스트리아
|
케이블SO들이 지상파 방송사에게재송신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음.
|
합리적 대가(resonable price) 산정 원칙을 적용하며, 분쟁 발생시 방송위원회(KommAustria)가 결정
|
<표2 > 지상파 재송신 대가 사례 : 대가 거래가 없는 경우
국가
|
재송신 대가 관련 규정
|
핀란드
|
커뮤니케이션 시장법 134조에 따라, 케이블SO들이 무료로 지상파(PSB, 상업)방송을 재송신함
|
폴란드
|
방송법 43조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나 플랫폼사업자에게 대가 지불 의무를 부여하지 않음
|
헝가리
|
방송법 117조 2항에 따라, 대가가 지불되지 않음
|
리투아니아
|
방송법 제33조 3항에 따라 “플랫폼사업자는 의무재송신 채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음”
|
라트비아
|
정보제공법 33조 3항에 “재송신하는 사업자는 재송신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지상파 방송에게 재송신 대가 거래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명시
|
스페인
|
방송법 상에 지불 주체 및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양측이 보상에 대해 협의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 대가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
|
네덜란드
|
재송신 대가 거래 없음
|
아일랜드
|
재송신 대가 거래 없음
|
체코
|
재송신 대가 거래 없음
|
슬로바키아
|
재송신 대가 거래 없음
|
▲대가 산정 방식 논쟁보다 관련 법 개정과 정책방안 정비 선행 필요
연구보고서는 한국이 유럽식 공공서비스방송 체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분쟁의 소지가 많은 미국식 지상파 재송신 대가 모델을 따라감으로써 우리 방송체제에 걸맞는 지상파 재송신 정책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지상파 재송신은 보편적 시청권 확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 미국의 경우 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방안으로 정립되어 왔다. 더구나 현재 미국 역시 지상파 재송신 분쟁을 더 이상 사업자간 계약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재송신 동의 규칙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2002년 위성방송의 등장 이후 지상파 재송신 관련 논쟁이 본격화되었음에도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입법기관인 국회 등이 정책 목표에 따른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지 못한 까닭에 혼란과 분쟁만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저작권법과 방송법 개정을 통해 지상파의 권역내 동시 재송신에 대한 저작권료 면제를 명확히 하고 한국의 방송체제와 시장 경쟁 상황에 맞는 재송신 정책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송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제도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며, 대가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 논의에 앞서 지상파 재송신의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의무재송신과 의무제공 등 재송신 정책 방안을 우선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규제기관이 사업자간 분쟁의 법제도적 원인과 문제점을 진단하지 않고 대가 산정 방식과 같은 미시적 논쟁에만 매몰될 경우 현 지상파 재송신 논란의 근본적 해결을 오히려 요원하게 만들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