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최근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제목은 ‘마션’(The Martian), 그러니까 화성인이다. 화성탐사 도중 모래폭풍을 만나 혼자 남게 된 미 항공우주국(NASA) 아레스3 탐사대의 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 개봉 2주 만에 관객 3백만을 돌파했다. 성급한 사람들은 지난해 1027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인터스텔라’의 기록이 깨질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인터스텔라’와 ‘마션’은 우주과학을 다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설정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는 위기에 처한 지구인들 전체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서지만 ‘마션’은 다르다. 이것은 마크 와트니 1인의 불행이다. 그가 없어도 지구는 잘만 돌아간다. 아레스3 탐사대원들이 그를 두고 간 이유는 마크가 모래폭풍에 휩싸여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선 마크의 장례식까지 치러졌지만, 기적처럼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온 지구가 들썩인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NASA의 구성원들은 엄청난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며 ‘마크 와트니 구출작전’에 나선다.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정부까지 이 프로젝트에 협조적으로 응한다.

원작소설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는 작품 말미에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마션’이 그리고 있는 세계 속에서는 분명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는 작품 말미에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마션’이 그리고 있는 세계 속에서는 분명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사진=영화 '마션' 포스터

화성보다 가까이에 있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돕기는커녕 해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더 암울한 사실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잦다는 점이다. 솜방망이 처벌은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누구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피해자와 함께 암매장된 ‘정의’

2015년 10월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층에서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엄상필) 심리로 개최된 피고인 이모(25)씨에 대한 선고공판장에는 조금 특별한 긴장감이 떠돌았다. 이 씨의 혐의는 살인과 사체유기 및 상해. 그는 지난 5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시멘트 암매장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다.

여자친구였던 김 모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휘두르던 이 씨는 결국 5월 2일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충북 제천의 야산에 시멘트 암매장 했다. 그리고 김 씨의 말투를 흉내 내 그녀의 가족들과 문자 메시지를 교환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유족들이 통화를 재촉하자 그제야 자살시도를 한 뒤 자수했다.

검찰은 이 씨의 범행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997년 12월 이후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 대한민국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었다. 방청객석 맨 앞줄을 채운 피해자의 유족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1심 사법부의 판결을 기다렸다.

선고된 형량은 유족 입장에서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징역 18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청구 기각. ‘징역 18년’이라는 판사의 선고가 끝나자마자 방청객석에 앉아있던 유족의 어머니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실신했다. 법정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의 남동생과 아버지, 그 밖의 친구와 친척들은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지 얄궂은 건,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에서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 1심 재판이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물경 3조 원의 피해액이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재판정은 모뉴엘 박홍석 대표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사람을 죽이고 시멘트로 암매장한 범인보다 5년이나 무거운 형벌이 선고된 것이다.

징역 18년, 그리고 징역 23년

사람을 죽인 범죄자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 받은 경제사범. 경제사범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 받은 살인자. 두 개의 판결이 자아낸 기이한 아이러니는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목숨의 무게에 대해 불경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 목숨의 무게가 사기사건으로 발생한 3조원보다 가벼웠다고 누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 사람을 죽인 범죄자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 받은 경제사범. 경제사범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 받은 살인자. 두 개의 판결이 자아낸 기이한 아이러니는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목숨의 무게에 대해 불경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쳐

이 말은 박홍석 대표에 대한 징역 23년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3조원이면 대한민국 1년 국가예산의 10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런 사건이 100개만 발생하면 대한민국이 결단날 수도 있는 스케일이다.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해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은 모뉴엘 사건에 대해서 징역 23년형은 오히려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은 형편이다.

문제는 살인사건에 대한 형량이 바로 이런 경제사범보다도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판사 한두 명의 문제도 아니다. 대법원이 정한 양형 기준 자체가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살인죄를 ①참작 동기 살인 ②보통 동기 살인 ③비난 동기 살인 ④중대범죄 결합 살인 ⑤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등 다섯 개 유형으로 나누고 있으며 각각의 유형에 대해 ①4~6년 ②10~16년 ③15~20년 ④20년 이상, 무기 ⑤23년 이상, 무기 등의 기본양형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물론 이 기준에서 형량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대로 좋은가

시계를 1997년으로 돌려보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집행일’로 남아있는 1997년 12월 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수감자는 총 23명이었다. 이 중에는 승용차로 여의도광장을 질주해 ‘묻지마 살인’을 감행한 김용제, 경찰관 총기난동사건의 범인 김준영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함께 사형된 임상철의 경우는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당했다. 강순철의 경우 만취 상태에서 친구와 함께 어느 봉제공장에 들어가 여직원들을 때리고 불을 질러 직원 한 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돼 결국 사형됐다. 강순철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방화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외 내연의 남자와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 임영자, 강도살인 혐의의 김선자 등에 대한 사형이 함께 집행됐다.

사형제는 전 세계적으로 첨예한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이며, 이 글에서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못을 박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건 1997년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단호하게 사형을 집행했던 대한민국의 재판부가 그 이후로는 역으로 이상하리만치 가해자에게 관대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향 전환의 낙차가 너무 커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조차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김점덕, 오원춘 등 1997년이었다면 당연히 사형대에 올랐을 법한 파렴치 범죄자들에 대해서도 현재 법원은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하지 않고 있다. 상한선에 유리천장이 생기다 보니 그 나비효과로 이제는 살인범이 경제사범보다 낮은 형량을 받는 풍경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오원춘이나 돼야 받을 수 있는 게 무기징역이라면 한두 명 정도 죽인 걸로는 누구도 무기징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 풍경이 과연 한국인들에게 ‘일반적인 것’으로 납득될 수 있을까.

20대 중반인 시멘트 암매장 살인사건의 범인 이 씨는 감옥에서 18년을 살아도 40대 초중반의 나이로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그 이전에 사면•복권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신 후 정신을 회복한 피해자 김 씨의 어머니는 이렇게 절규했다. “판사님. 차라리 무죄를 선고해 주세요. 범인을 죽이고 저도 함께 죽겠습니다.”

이 절망감을 온전히 해소해주지 못하는 사법부라면 앞으로도 상황은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람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우주선까지 띄우는 영화 속 얘기까지는 힘들더라도, 지금의 풍경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