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②]경영 의지 꺾는 세금...코리아 디스카운트 '주범'
2025-03-13 16:08:05 | 김견희 기자 | peki@mediapen.com
상속세율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
"단순 상속과 가업 승계 달리 봐야"
재원 확보와 경영권 유지에 골머리
"단순 상속과 가업 승계 달리 봐야"
재원 확보와 경영권 유지에 골머리
[미디어펜=김견희 김연지 기자]상속세 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상속세 부담을 완화시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경영권에 지장을 줄 만큼 높은 세율이 가업 승계는 물론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안정적인 유지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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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일대.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고 50%로, 최대주주 할증 과세 20%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60%에 달한다. 최근 여야가 상속세 개편에 일부 합의하며 속도를 내는 듯 하지만, 재계와 산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최고세율 인하(50%→40%)와 최대주주 할증(최대 60%) 폐지는 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에 막혔다.
이처럼 높은 상속세율은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2020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타계한 이후 2021년부터 5년 간 6회에 걸쳐 12조 원대에 이르는 상속세를 분납하고 있다. 2021년 4월 첫 납부를 시작해 현재 4조 원의 상속세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세금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이다. 오너 일가 대부분은 현금이 아닌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막대한 세금을 마련하는 것이 힘들다.
삼성 오너 일가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을 통해 받는 배당금을 활용하거나 지분 일부를 매각 혹은 주식담보 대출 등을 활용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약화 위험을 무릅쓰고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상속세를 마련하면서도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유지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해내야 한다.
업계 일각에선 최근 불거진 '삼성 위기론'에 상속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 부당합병 의혹 관련 사법리스크로 오너의 부재가 장기간 이어진 데다가 상속세 부담까지 겹치며 오너십을 발휘해야 할 적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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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0년 5월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준법감시위 설치와 4세 경영 승계 포기 의사를 밝혔다./사진=삼성전자 제공 |
◆ "과도한 상속세, 기업 활동 저해 요인"
과도한 상속세는 창업 1~2세대에서 3~4세대로 넘어오면서 최대주주 우호지분율을 낮춰 경영권을 보장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해외 행동주의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은 물론 해외 사모투자펀드(PE) 매각이나 기업의 해외 이전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보다 과도한 상속세로 경영 활동에 족쇄를 채운 형국이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 삼성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를 기준으로 오너 일가가 총 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재용 회장 18.90%, 이서현 이사장 6.51%, 이부진 사장 5.83%, 홍라희 여사 0.97%로 구성된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직전 분기인 3분기 대비 약 0.6% 떨어졌다.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준법감시위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자녀들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당시 "경영환경도 녹록히 않고, 제 자신의 입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승계를 논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면서 4세 경영을 포기했다.
직접 4세 경영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4세 경영에 들어갈 경우 추가적인 상속세 납부 가능성 여부를 살펴볼 때, 경영권 유지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너 경영으로 한국 경제가 부흥했고 기업이 성장했지만, 사실상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을 시작으로 오너 경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과도한 상속세를 두고 경제 6단체(한국중견기업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도 기업 경영 활동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단체는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전향적인 상속·증여세제 개편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승계는 현금이나 부동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단순 상속과 다르게 봐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로 국가 경제와 경쟁력에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별도의 과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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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경기도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2025년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제공 |
◆ 현대차그룹도 피해가지 못한다...상속세, 단순 계산으로도 2조6000억 원
현대차그룹 역시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몽구 명예회장(86)이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보유한 지분은 여전히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정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차(5.44%), 현대모비스(7.29%), 현대제철(11.81%), 현대엔지니어링(4.68%) 등 지분 가치는 약 4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정 회장이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 명예회장의 지분 승계가 필수 과제다.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3%로 정 명예회장이 보유한 7.24%에 한참 못 미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각 계열사가 서로 지배하는 형태로 순환출자 구조의 중심에 있는 기업은 현대모비스다. 정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비중을 늘려야 한다.
정 회장은 현대차 2.67%, 기아 1.77%, 현대모비스 0.33%, 현대글로비스 20.00%, 현대위아 1.95%, 현대엔지니어링 11.72%, 현대오토에버 7.33%, 이노션 2.00% 등 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승계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와 상속세 재원 마련으로만 10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지분 매각 또는 차입이 불가피해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업 오너들이 정상적으로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배당밖에 없다. 전 세계적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판 치는 정세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모순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지속적인 경영을 위해 최대세율 인하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며 "이번 개편안에서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 폐지 등이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