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사관의 몸통 탈바꿈 해야 좌경화된 국정 막을 수 있어

   
▲ 조우석 주필
취임 이후 기회주의 성향 보여온 김정배 위원장이 문제

국민통합 역사교과서의 등장이란 하고, 하지 않고의 선택사항이 더 이상 아니다. 지금 국면은 교육부 행정예고에 따라 여론수렴을 위한 기간이며, 일주일 뒤 최종 고시(11월2일) 절차를 밟게 된다. ‘단일교과서란 이름의 열차’는 2017년 새학기 배포를 목표로 달리게 되는데, 물론 일부 변수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27일(화요일) 국회 시정연설이 그 하나인데, 예측대로라면 그는 교과서 문제를 언급할 것이다. 내용도 “나라는 몸과 같으며, 역사는 혼(魂)이다.”라는, 최근의 확 달라진 결연한 발언처럼 호소력을 앞세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건 아마도“국민 여러분, 아들딸의 교과서를 살펴보셨는지요? 미래세대를 이렇게 놔두는 건 우리 모두의 무책임입니다.”하는 식의 부모 마음잡기일 것이다. 이게 썩 잘 통한다면, 여론 흐름의 반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정화 반대(52.7%)가 찬성(41.7%) 견해보다 높다고 한 여론조사 기관이 전했지만, 그런 걸 돌려세우는 건 문제도 아니다.

   
▲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공용브리핑룸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편은 과연 ‘내부의 적’인가?

야당이 벌이는 반대 서명운동은 빠르게 추진동력을 잃을 것이고, 전교조의 거리 투쟁도 뻘쭘해지길 나는 기대한다. “단일교과서가 친일 미화, 독재 찬양의 역사책이 될 것”이라는 공당의 대표답지 못한 문재인 류(類)의 발언도 정리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밝히지만 지금 내 관심은 그런 주변환경이 아니고, ‘내부의 문제’다. 단일교과서 집필의 전 과정을 관장할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 위원장 김정배)가 과연 새 역사교과서를 감당할만한 지적-이념적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악의 경우 ‘좌편향화된 단일교과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인데, 그게 괜한 소리가 아니란 판단 때문이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게 지금인데, 왜 그럴까?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국사학계와 국편은 샴쌍둥이 관계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국사학계가 이익의 카르텔을 통해 북한 전체주의를 비호하는 교과서를 만들었다면, 국편 역시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발족한 시민단체 ‘좋은교과서만들기시민연대’가 “나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온 최종 책임자가 국편”이라고 콕 찍은 것도 그런 배경이다. 시민연대는 국편의 재정비를 요구하면서 ▲김정배 위원장의 대오각성 내지 용퇴 ▲주요 보직자들의 환골탈태란 가시적 조치 없이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교과서는 나오지 못한다고 새삼 강조했다.

왜 이런 지적이 나오는가? 과민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집필진에서 극우를 배제한다”는 10월 12일 김정배 위원장의 발언부터 실은 마음에 걸렸다. 이틀 뒤 그는 자기 의중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서 배제한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아무도 말리지 않은‘공청회장 기습 성명서 사건’

다시 이틀 뒤 국편 2인자 진재관 편사부장이 아예 블랙리스트를 들고 나왔다. 그는“권희영-이명희 두 교수는 배제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김정배 체제의 국편은 ‘좌우합작 교과서’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정치적으로 중립이고, 올바른 교과서의 등장이라고 저들은 굳게 믿고 있는 셈이다.

그건 위원장을 비롯한 국편의 핵심 스텝들이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심각하고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또 국편이 단일교과서 제작에 부적합한 기관임을 드러낸 사건에 다름 아닌데, 실은 이 기관의 전체 분위기가 그러하다.

그걸 새삼 드러낸 게 지난 9월 11일‘공청회장 기습 성명서 사건’이다. 당시는 교과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직전 상황이었는데, 그날은 경기도 과천 국편 강당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과 편찬 준거 개발 시안 공청회’를 열렸다. 놀라운 것은 국편의 의뢰에 따라 집필기준 작성에 참여하고 있던 이화여대 김수자 교수 등 8명의 연구진이 공청회 중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선언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낭독했다는 점이다. 정부 시책에 대한 항거하는 집단행동이었는데. 김정배 위원장은 이를 알고도 애써 모른 채 했다.

이후 이렇다 할 후속조치도 취한 바도 없고, 감독관청인 교육부도 이를 눈 감아줬다. 이 점은 청와대도 마찬가지인데, 알고도 그랬다면 직무유기이고, 몰랐더라면 역사전쟁을 지휘할 능력과 책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분명한 것은 국편이 ‘내부의 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지난 3월 취임했던 김정배 위원장은 실로 모호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한 학자에 따르면 “그는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국편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단일교과서 방침을 정확하게 천명한 바 없다”고 귀띔했다. 이 기막힌 사실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교조 회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좌우합작 교과서’는 올바른 국사책 아니다

자명하다. 임명권자의 뜻을 뭉개고 있는 국편위원장, 정부방침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벌이는 직원들은 사실상 한통속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의 국편은 책임있는 국가기관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국편 자체가 민중사관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모면키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이런 실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가?, 그건 국내 언론의 ‘물 타기 보도태도’ 탓이라고 나는 본다. 단일교과서를 발표하기로 한 그 날 아침에 배달된 조선일보 1면 제목이 “국사교과서 좌우 아우르는 필진 뽑는다”였음을 기억하라. 이틀 뒤 이 신문의 1면 사이드 제목도 가관이었다. “우편향 우려 해소하는 게 국사교과서 개편의 관건”.

이런 지면이야말로 기회주의적 중도노선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단일교과서 제작을 책임질 국가기관 국편과, 1등 신문 조선일보가 중도노선의 덫에 함께 빠져있는 셈이다. 그래서 걱정된다. 아니 아찔하다. 지금의 이런 안팎의 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좌편향화된 단일교과서’가 탄생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미처 모르는 건 ‘정치적 중립’과 ‘이념의 중립’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 사이에 어중간한 제3의 중간지대란 없으며, 때문에 이념의 중립 어쩌구하는 말 자체가 거대한 모순이다.

극우-극좌의 양극단을 배제하면 그게 중도 내지 균형 잡힌 중용의 태도라고 저들은 집단적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가리켜 한국사회 좌편향의 또 다른 모습이자, 우리가 함께 빠져 있는 속물적 리버럴리즘의 늪이라고 나는 반복해 지적해왔다.

총리실 산하 제3의 독립기구 신설이 정답?

재확인하지만, 겨우‘국정화된 좌편향 교과서’를 만들자고 이 정부가 이 어려운 국면에서 개혁의 큰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애물단지를 넘어 내부의 적으로 규명된 국편, 반(反)헌법기관으로 추락한 국편의 모습은 “나라는 몸과 같으며, 역사는 혼(魂)이다.”라는 박 대통령의 뜻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해둔다.

고민은 그래서 더욱 커진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인데, 지금의 혼동되고 어려운 환경을 딛고 올바른 교과서, 좋은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일부의 주장대로 국편을 단일교과서 제작의 책임기관 위치에서 격하시키고, 총리실 산하 제3의 독립기구를 신설하는 게 효과적인 방안일까?

아니면 부적격자임이 이미 드러난 김정배 위원장을 조기 경질하는 게 최선의 방안일까? 그 경우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하는 어리석은 행동이 되지 않을까? 정해진 답이 없다. 너무도 중요한 후속 논의는 다음 회에 다시 지혜를 모아 독자들 앞에 정리할 생각이다. 많은 조언 바란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