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업 부분과 달리 금융업은 낮은 생산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사방식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세계경제포럼(WEF)가 87위로 평가한 금융시장 성숙도는 분명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금융개혁은 정권마다 반복된 구호이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금융부분의 경쟁력은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 정부는 금융감독쇄신, 자율문화정착, 기술금융확충, 자본시장 기능강화, 핀테크 육성, 금융규제의 큰 틀 전환 등을 주요 금융개혁 과제로 제시했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관치부터 버려야 금융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정부의 금융개혁의 주요과제들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토론회를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소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아래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금융개혁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나’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부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부 교수 |
은행 소유를 분명히 해야 관치금융 해소된다
우리나라 금융 개혁의 핵심은 관치금융 청산에 있다. 관치금융은 정부가 은행의 소유를 제한하고 금융에 대해 전반적인 규제를 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융부문 등록 규제가 1,107개에 달하고, 창구지도와 같은 행정 규제가 534건에 이른다.
주인이 없는 은행에 수많은 규제를 가하면서 정부는 은행에 대해 사실상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은행 CEO와 임원들의 임면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임원들이 시장의 변화보다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동향을 관찰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러다보니 금융산업이 발전하기보다는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한다.
은행의 소유를 제한하고 금융에 대해 수많은 규제에 대한 논거로 금융의 공공성을 든다. 금융이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금융에 대해 간섭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금융의 공공성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이 정부기관의 기능을 한 데서 연유했다. 그 근원은 1694년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이다.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심각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잉글랜드은행을 인가할 때 영국 정부가 각종 특혜를 주면서 잉글랜드은행으로 하여금 영국정부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은행이 사실상 정부기관의 기능을 하였다. 그 후 잉글랜드은행은 각국의 은행 인가의 기본모형이 되었다. 민간은행으로 하여금 정부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인가하면서 정부는 지원하고 보호하는 한편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이 더 이상 정부기관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되면서 금융의 공공성 개념은 금융제도의 안정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대에 와서 금융제도의 안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정부가 금융기관을 규제하고 있다. 그 논리는 시장실패(정보의 비대치성과 외부성)에 그 바탕을 둔다.
▲ 지난 6월 25일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의 역동성 제고를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사진=미디어펜 |
그러나 정부가 개입할 때보다는 시장에 맡겨졌을 때 금융시장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는 증거들이 대단히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에서 정부가 개입하며 안정망을 도입 한 뒤 오히려 파산 은행이 늘어난 사례가 많았다. 정부 규제는 금융기관의 파산을 증가시켜 예금자에게 더 많은 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그 파산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에 정보의 비대칭과 외부성 문제로 인하여 정부가 금융에 대해 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융 규제는 너무 지나치다. 수많은 규제가 씨줄과 날줄처럼 겹겹이 얽혀 있다.
소유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규제를 많이 하면서 정부가 금융산업을 통제하는 환경에서 금융산업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관치금융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결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나올 수 없다. 오늘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소유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한 소유자가 투자와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혼신을 기울여 노력한 기업가 정신의 결과다. 실질적인 소유자가 없고 수많은 규제를 바탕으로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금융산업에서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발전시켜 선진화하려면 먼저 은행에 실질적인 주인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수많은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정부가 각종 규제와 감독을 명분으로 행지는 관치금융을 청산해야만 가능하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부 교수
▲ 시장경제창달 인터넷 정론지 미디어펜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한 ‘혁신 속 창조경제 핀테크(Fin-Tech)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2015 크리에이티브 비전 포럼에서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핀테크는 기술보다 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사진=미디어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