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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적합업종·유통산업발전법과 규제의 함정

2015-11-26 11:2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지난 20일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대한민국 구조개혁, 원칙을 세우다’ 정책심포지엄이 열렸다.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의 개회사로 열린 정책심포지엄은 제 1세션 ‘노동 교육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와 제 2세션 ‘금융 규제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 제 3세션 ‘공공 정치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노동개혁 성공의 필수 조건, 교육개혁의 원칙, 금융개혁의 대상 및 방향, 경제규제의 현실과 그 과제, 공공기관 재정건전성을 중심으로 한 공공개혁 원칙,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안에 관하여 심도 있는 토의를 나눴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하이에크, 미제스, 밀턴 프리드먼 등 자유주의 사상 및 시장경제에 관한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자유주의 고양과 시장경제 창달을 설립 취지로 하는 학회다. 1999년 설립된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이를 위해 경제학은 물론 철학,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모든 학제를 종합하여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교육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 글은 20일 열린 정책심포지엄 제 2세션에서 패널로 나선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규제의 현실과 개혁과제”, 한국적 현실에서 규제에 대한 다면적 이해, 특히 규제의 지대추구적 속성에 대해 심층적 이해를 돕는 잘 정리된 발제논문이다. 대학원생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규제 해설논문은 없을 것이다.

김영용 교수의 발제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공익설은 이른바 시장의 실패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가 이를 규제함으로써 교정할 수 있는가라는 이론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공익설은 그러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시장실패의 기준으로 삼는 완전경쟁시장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세상의 불완전성과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익설에 의하면 경제규제는 소규모 이익 집단이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진 정부와 정당을 포획하여 생기는데, 이는 여러 경제주체 간에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또한 규제 판매자인 정부나 정당은 규제 판매의 대가로 재분배되는 소득과 부의 일부를 얻는다. 사익설에 더하여 경제 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무지로 말미암아 경제규제가 생기고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
사익설에 따른 규제에 대한 원론적 개혁 방안은 정부가 가진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줄이는 것이며, 경제학 지식에 대한 오해나 무지 등으로 연유하는 규제의 개혁을 위해서는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경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만 일단 발효된 규제로 이해가 크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규제가 철폐되거나 완화된 시장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간을 두고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중략)"

발제문에 나와 있듯이, Stigler는 “A Theory”가 아닌 “The Theory”로 자신의 논문을 표시했다. 규제에 대해 더 논의할 것이 없는 ‘완전한 논문’으로 ‘The’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지만, 당시 ‘규제의 공익설’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 일수 밖에 없는 ‘규제의 사익설’을 제기한 자신의 연구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The Theory’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규제는 ‘국가개입주의의 인습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국가개입주의 기저에는 일반대중의 “개인의 자유보다 전체나 국가의 의지를 더 중시하는 이념”에의 매료가 자리 잡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국가는 ‘자의식을 가진 도덕적 실체’이다. 따라서 국가를 ‘야경꾼’의 위치로 떨어뜨리는 것은 불경한 짓이다.

규제는 공익을 목적으로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간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중립적 권력실체’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정부가 민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규제는 행정목적을 위해서는 사적 자치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발전국가모델’의 유산일 수 있다. 규제는 이처럼 ‘당연 선(善)’으로 여겨졌다. 규제는 범람하게 되고, 시장은 질식하게 된다.1)

   
▲ 규제가 실패하는 것은 개입의 적정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규제가 ‘과잉’으로 치닫는 것은 인간행동이 어떤 유인에 의해 지배되는지를 모르고 규범적으로 처방하기 때문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규제 일변도의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이 같은 지적 풍토에서 국가의 자원배분에 관한 조정권(규제권)을 정치시장에서 사고판다는 ‘규제의 사익설’은 들어내놓고 논의하기엔 민망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간다. Stigler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규제이론에 대한 그의 도발적인 기여, 즉 규제이론에 대한 (정치시장으로의) 지평 확대가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1. 유도된 인식오류: 시장의 의인화

국가개입주주의자(규제옹호론자)들은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장의 불완전성을 과장한다. ‘시장의 의인화’가 바로 그것이다.

1) 시장의 탐욕

시장은 ‘교환의 場’으로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시장에서 마약은 물론 장기가 매매된다. 이는 시장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은 윤리적 또는 비윤리적 존재가 아니다. ‘탐욕’스럽다면, 인간의 마음이 그럴 뿐이다.

2) 시장의 실패

시장은 ‘시장실패’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시장에서 실패가 ‘목도’되는 것이다. 시장실패는 오히려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징표로 봐야 한다. 시장실패는 대부분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발(發) 금융위기’가 전형이다. 자가(自家)소유사회(ownership society)라는 정치적 인기영합, 금융자원의 이동을 막은 지역재투자법, 저금리, 파생상품 건전성 감독부재가 가져온 정책실패이다.

3) 시장의 권력

‘시장의 권력’은 의인화의 절정을 이룬다. 시장권력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권력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부여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고 투자자가 자금을 대는 것은 그 기업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권력은 ‘경쟁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권력에는 임기가 없다. 경합관계에 있는 경쟁자를 이기지 못하면 언제라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노키아와 소니의 몰락은 기업의 경쟁력이 ‘상수(常數)’가 아님을 보여준 사례이다.

시장의 의인화는 ‘정부개입(규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자체가 ‘반(反)시장’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인격적(impersonal)’인 시장이 ‘재량적’인 국가권력보다 더 효율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다. 시장과 싸우는 것이 정책일 수는 없다. 존재하지 않는 적(敵)을 공격하는 것만큼 허구는 없다.

2. 인기에 영합하는 규제

규제 사익설의 본질은 ‘포획’이다. 규제당국이 이익집단의 로비에 포획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년의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 예컨대 골목상권을 위한 대형유통업체 영업규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들이 자신의 이익보호를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골목상권을 구성하는 상인들은 영세성으로 자신들을 조직하는 것조차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규제의 사익설’을 경제민주화법안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 ‘자신의 득표극대화’를 위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즉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이익에 ‘스스로’ 포획된 것이다.

1) 유통산업발전법

풍선을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푼다. 대기업을 누르면 소비자가 재래시장을 선택할 것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소비자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대형유통업체가 골목상권을 죽인 것이 아니다. 골목상권 문제의 본질은 ‘밀집’이다. 골목상권은 도리어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골목상권을 보호해주겠다는 것은 “300명 정원의 배에 500명을 태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법’ 등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제로 넘쳐나고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특정산업에의 대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는 ‘별도의 조치’인 셈이다. 대기업은 맹수이고, 중소기업은 초식동물인가?/사진=미디어펜

2) 하도급법 공정화에 관한 법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부당한 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 부당 반품’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해행위로 그 자체를 숨기거나 은폐할 개연성”이 높을 때만 정당화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도급 거래는 그 자체가 은폐되지 않는다. 원론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납품단가 인상이 정당하다면, 재화가격 하락에 따른 납품단가 하락도 정당하다. 상업세계에서는 늘 위험이 수반된다. 이를 규제를 통해 타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납품가격 인하의 ‘부당성’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부당성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납품가격 인하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하도급 거래 자체가 축소된다. 대기업이 필요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상대적으로 분쟁 가능성이 적은 해외 조달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소기업에 ‘안정적 공급처’를 제공해주었던 대기업의 납품기회를 빼앗는 셈이다. 협력업체가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맺는 이유는 ‘안정적 납품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3) 적합업종제도의 내재적 논리모순

적합업종제도는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2분법적 구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적합업종제도에서는 논리적으로 ‘중소기업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경쟁은 어떤 경우에도 ‘개체’ 간의 경쟁이지 ‘집단’ 간의 경쟁일 수 없다. 적합업종지정으로 ‘자연선택 과정’(경쟁을 통한 선택과정)은 “개체 간의 경쟁에서 종(種) 간의 경쟁”으로 왜곡됐다. 그렇게 되면 개체는 ‘종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해야한다. 예컨대 개별 중소기업은 소비자에게 자신의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된다. 이는 동종의 여타 중소기업의 시장기회를 뺏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의 기본단위는 ‘개별기업’이다. 중소기업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합업종제도는 태생적으로 논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지식의 문제’를 자초하고 있다. 어떤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인지 여부를 ‘경쟁을 통하지 않고는’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업종이 진정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하다면,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굳이 시장에 개입해 “누구는 나가고 누구는 시장에 남으라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다.

대기업의 진입규제는 소프트웨어(SW) 및 IT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SW산업진흥법은 2004년 이후 사업규모에 따라 대기업의 진입을 순차적으로 제한했다. 2013년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대기업은 아예 공공시장 진입자체가 제한됐다. 공공정보화 시장 참여가 불가능해진 대기업들이 관련 조직을 축소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전문인력 등 인프라는 크게 손상됐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법’ 등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제로 넘쳐나고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특정산업에의 대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는 ‘별도의 조치’인 셈이다. 대기업은 맹수이고, 중소기업은 초식동물인가? 그렇다면 초식동물로 생태계의 ‘강건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경쟁은 자신의 경쟁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끔 하는 ‘처소’를 찾는 ‘발견과정’이다. 경쟁은 궁극적으로 협력을 낳는다.

3. 숨은 규제

“규제총량= 등록+행정규제기본법상 적용제외+미등록+유사+탈법규제”로 정의된다. 규제총량은 등록된 규제를 훨씬 웃돈다. 따라서 ‘숨은 규제’를 찾아 이를 정리해야 한다. 상법, 조세, 형법, 국방 등 분야의 규제는 행정규제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들 ‘적용제외규제’가 대표적인 ‘숨은 규제’다. ‘유사규제’는 행정관청이 아닌 공공기관이 부과하는 제약과 의무를 의미한다. 금융공공기관의 모범규준, 가이드라인, 상품개발 제한 등이 그 사례이다. ‘탈법규제’는 근거 없이 실시되는 행정지도, 단속, 감독 등을 의미한다. 금감원의 보험료 통제, 텔레마케팅 영업제한 등이 그 사례이다.

4. 규제는 ‘지식의 문제’에 직면

규제의 금언(金言)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규제가 실패하는 것은 개입의 적정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규제가 ‘과잉’으로 치닫는 것은 인간행동이 어떤 유인에 의해 지배되는지를 모르고 규범적으로 처방하기 때문이다. 규제의 또 다른 금언은 “호랑이는 그려도 뼈다귀는 못 그린다”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그 첫 단추이다. 규제는 ‘지식의 문제’에 직면해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 경제행위를 재단하는 것 자체를 최소화해야 한다.

5. 지대추구 규제의 함정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자유를 보호하고자 세운 정부가 그 자유를 파괴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설파했다. “권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자유는 언제나 위협”받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고 고뇌였다. 자유의 반대는 통제와 규제다. 아무리 선의(善意)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통제와 규제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침해한다. 통제와 규제가 생겨나는 과정은 간단하다. 민주주의 자체에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주권을 표현한다. 어떤 정치지도자가 나타나 “A가 이런 사업을 못하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고 가정하자. 특정 규제를 약속한 후보자가 당선되면 다음 선거에서 경쟁자는 더 많은 규제를 내놓는다. 대중정치 체제하에서 규제는 ‘자기증식’된다.

정부와 의회 권력은 공공성을 표방하지만 실은 ‘공익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관료도 자기 이익이 극대화되는 정책을 선호한다. 규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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