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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②]현대그룹의 성공…경제 환경에 적응한 결과

2015-12-06 09:3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봐, 해보기는 했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의 대표적 명언이다. 아산 정주영은 호암 이병철과 더불어 우리나라 기업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기업가다. 아무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상인의 길에 투신하여 돈을 벌고 집념과 불굴의 끈기 하나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집단을 일구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획기적인 발상으로 정면돌파한 우직한 위인이기도 하다.

2015년 올해는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1915년 11월 25일生)이다. 미디어펜은 이를 기리며 좌승희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의 ‘아산 정주영’ 연구논문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2번째 연재다. 좌승희 교수는 KDI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장과 경기개발연구원장을 역임한 기업경제, 경제발전 전문가다. 한국비교경제학회, 한국규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좌 교수는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아산의 기업경영 전략과 인생역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행태를 이해하고자 했다.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은 특정 경제사회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다. 좌 교수는 논문을 통해 “그 제도적 환경의 내용과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 기업이나 기업인의 경영 및 인생행로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신제도경제학으로 보는 한국의 대기업: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2]*

Ⅱ. 경제제도와 기업행위의 패턴: 이론적 분석 틀

1. 경제제도와 경제행태론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은 개별 경제의 국적성(國籍性)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 즉 경제의 성과는 항상 국적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경제학이 현실 경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근래 개별경제의 제도적 특성을 중시하는 ‘신제도경제학 방법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의 성과는 ‘시장의 경기규칙’인 경제제도 하에서 경제주체들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경기의 최종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시장은 경제제도의 집합에 의해 정의되는데, 제도는 바로 그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어떤 경기규칙은 경기의 성과를 높일 수도 있지만, 어떤 규칙은 오히려 경기력을 떨어뜨리고 경기의 성과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경기규칙인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현실의 시장은 국적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시장을 규정하는 제도, 즉 경기규칙은 그 사회가 선택하기 나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경제와 미국의 시장경제는 다른 것이다. 축구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발로 차는 사카 축구와 손으로 들고튀는 미식 축구가 있다. 왜 서로 다른가? 그 경기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대의 외화를 벌어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을 방문한 (사진왼쪽)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현실의 시장경제는 우선 개인과 개인들의 집단이 구성하는 기업 등 사조직과 정당, 정부 등 공조직이 주요 경제주체이며, 이들은 주어진 시장의 경기규칙인 제도 하에서 인생 성공, 기업, 조직 성공을 위해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그림 1> 참조). 경기규칙을 어기면 퇴장당하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제도에 의해 경기주체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나아가 경기 결과, 즉 경제성과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제도는 그래서 부처님이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손바닥위에서 사랑을 받으려 재롱을 피우는 손오공과 다름 아닌 셈이다. 제도가 선택해 주지 않으면 성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경제제도에는 무엇이 있고,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 경제제도에는 국회나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헌법, 법령, 규칙 등 ‘공식적 법규’가 있고, 다음으로는 공식적 법규는 아니지만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위해 공유하고 지켜야 하는 문화, 관습, 가치관, 정서, 이념 등 ‘비공식적 규칙’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들 규칙들은 엄격히 집행되고 혹은 서로의 감시 하에 엄격히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제도의 집행정도가 제도의 성패를 결정하는 ‘제3의 제도’가 있다. 바로 이런 제도가 각 시장경제의 민얼굴인 셈이다.

   
▲ <그림 1> 신제도경제학이 보는 현실의 시장경제와 주류경제학의 시장

현실 경제에 있어서는 얼마나 부의 창출에 유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적으로 흥하는 사회가 되기도 하고 망하는 사회가 되기도 한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개인과 성장하는 기업들에 불리한 규칙을 만들어 내는 사회는 가난한 사회가 되기 쉽고, 개인 재산권 보호 장치나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 등 부(富)의 창출과 축적에 도움이 되는 제도를 선호하는 사회는 부국의 길로 갈 수 있다.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자조(自助)하는 국민을, 가난한 자를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가난한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기업만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대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주류신고전파경제학은 현실 시장의 제도도 없고 심지어 기업도 없는 소위 ‘진공 속의 개인’만 있는 경제학이다. 진공 속의 개인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해 놓고 그 행동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그림 1> 참조). 그러나 현실 경제 속의 각 경제주체들은 경기규칙, 즉 유인구조가 달라지면 금방 그 행동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경제동물인 셈이다. 그러니 주류경제학이 보는 관점으로는 왜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행태가 다른지 설명하기가 도통 어렵게 된다. 예컨대, 왜 미국기업들은 공을 들고튀는데, 한국기업들은 어렵게 발로 차려하는지를 모르고, 한국기업들을 비판하는 꼴이 벌어진다. 사회의 문화, 전통, 이념과 정부규제 행태, 법령 등 한국기업 시장규칙이 미국과 다름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고치려하기 보다는 무조건 규제하면 된다는 규범경제학적 발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경제인들은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어진 제도, 즉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신제도경제학의 도움 없이 경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 아시아 2번째,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포니 개발성공이후 1985년 첫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의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2. 기업행태에 대한 몇 가지 명제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란 ‘각 나라의 문화, 전통 이념, 그리고 실정법으로 구성되는 개별경제 특유의 제도 속에서 형성되는 국적성이 강한 경제주체’이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기업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기업생태계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명제 1> 성공기업은 그 경제·사회의 적자선택의 결과이다.

이에 따르면 예컨대 아산 정주영의 성공이나 호암 이병철의 성공처럼, 개발연대 성공한 한국기업들은 모두 당시 한국의 경제·제도적 환경이 선택한 결과이다. 혹은 이들 기업들은 당시의 경제·제도적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기업들이다.

<명제 2> 기업경영은 국적이 있다. 경영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대단히 제한적 의미를 갖는다.

이에 따르면 아무리 글로벌화된 경제 환경이라 하더라도 경제마다 다른 제도를 갖고 있는 한 - 사실 이 제약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 기업경영은 국적성을 탈피하기 어렵다. 다국적 기업은 진출한 경제에 따라 차별화된 경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더드 개념은 전 세계 단일의 공통 문화, 전통, 이념, 공식적 제도, 심지어 공통의 정치를 상정하지 못하는 한 이상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명제 3> 성공하는 기업의 경영전략만이 성공전략이다. 보편타당한 불변의 기업성공의 일반원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경영학은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처럼 일반적 기업성공전략을 찾고 있지만 기업은 진공이 아닌 현실제도 속의 특수한 질서이다. 기업지배 구조를 포함하여 가장 성공하는 기업전략이란 그 경제에서 성공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등 경영전략을 떠나 정의 할 수 없다.

   
▲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명제 4> 기업은 자기생존의 극대화를 위해 경영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제도와 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고자 노력한다. 기업이나 기업인은 재산권행사에 장애가 되는 외부환경을 내부화해서 재산권에 대한 위해(危害) 요소를 제거하려 한다.

기업은 자신을 둘러싼 자신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되는 거래비용을 높이는 제도와 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재산권 제도를 포한 자신의 재산에 대한 위해(危害)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제도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와 행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혹은 그 위해 정도를 낮추기 위해 정경유착, 뇌물, 혹은 제도와 정책 변경을 위한 로비를 적극 활용한다. 때로는 불법적 행위까지 불사한다. 정치권이나 행정부로 부터의 재산권 위해 위협이 과도하게 되어 생존이 어려워지면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부처님을 내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부처님이 되어 제도자체를 바꾸는 일까지 시도할 수 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대통령에 출마하는 미국의 기업인들, 정주영 등도 그 예가 될 것이다. 관치경제 발전정책 하에서 정치와 행정부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며, 기업인은 손오공이나 다름없지만 손오공이 부처님이 되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명제 5>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확실하고 투명한 사적 재산권 보호제도가 그 전제이다. 기업이나 기업가들에게 있어 최악의 위협은 개인 재산권에 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이나 군부에 의한 재산권 위해, 침탈 가능성이 상존하는 경제에서 기업인의 대(對) 정부, 정치, 군부에 대한 거의 모든 행동은 바로 재산권 방어와 확대를 그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제도경제학은 사적 재산권 제도를 시장경제의 전제로 본다. 이것이 없이 경제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 재산권 제도가 취약한 경우에도 차별적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면 그 분야로의 투자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명제 6> 사적 재산권 보호가 취약한 경제는 재산권 보호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지나친 거래비용 때문에 대규모 장기투자를 요하는 대형 제조업보다 영세 서비스업과 소매상, 암시장이 더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 장기투자는 장기 고정투자 자산의 재산권 보호에 대한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기피하게 되고, 단기에 수익을 올리고 사업을 접을 수 있는 투기성이 있는 서비스업 등을 선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대기업, 재벌의 성장은, 만일 당시 재산권보호가 미흡했을 것이라는 통념으로 보면 돌연변이에 가깝다. 아니면, 박정희 체제가 국가시책에 부응하는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보장이 미흡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아래는 본고 전문의 목차. 위 글은 이 중 2번째 장이다.

Ⅰ. 들어가는 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2·제3의 아산 정주영이 필요한 한국경제
Ⅱ. 경제제도와 기업행위의 패턴; 이론적 분석 틀
Ⅲ. 경제발전과 기업의 역할
Ⅳ. 기업 지배구조와 다각화·전문화 이론
Ⅴ. 아산시대 한국경제의 제도적·정책적 환경
Ⅵ. 한국 기업가 정신의 특질: 사업보국 이념
Ⅶ. 아산 선택의 성공과 실패, 어디서 왔는가?
Ⅷ. 결어: 박정희 시대가 아산을 만들고, 아산의 선택이 한강의 기적을 이끌다.

원고 출처: 한국제도경제학회. 『제도와 경제』 제9권 제3호(2015.11.) 1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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