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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③]성공하는 일류 기업이 많아야 경제발전

2015-12-08 10:3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봐, 해보기는 했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의 대표적 명언이다. 아산 정주영은 호암 이병철과 더불어 우리나라 기업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기업가다. 아무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상인의 길에 투신하여 돈을 벌고 집념과 불굴의 끈기 하나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집단을 일구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획기적인 발상으로 정면돌파한 우직한 위인이기도 하다.

2015년 올해는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1915년 11월 25일生)이다. 미디어펜은 이를 기리며 좌승희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의 ‘아산 정주영’ 연구논문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3번째 연재다. 좌승희 교수는 KDI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장과 경기개발연구원장을 역임한 기업경제, 경제발전 전문가다. 한국비교경제학회, 한국규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좌 교수는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아산의 기업경영 전략과 인생역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행태를 이해하고자 했다.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은 특정 경제사회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다. 좌 교수는 논문을 통해 “그 제도적 환경의 내용과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 기업이나 기업인의 경영 및 인생행로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신제도경제학으로 보는 한국의 대기업: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3]*

Ⅲ. 경제발전과 기업의 역할

1. “경제적 차별화” 발전론

필자는 오랫동안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나 정치철학 담론으로는 박정희 성공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경제발전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 새로운 경제발전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다1).

경제발전은 “흥하는 문화유전자”의 복제·전파과정이다. 흥하는 이웃을 따라 경제성공과 발전의 노하우를 배워 흥하는 자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문명, 경제, 나아가 기업의 발전과정이 다 이러하다. 위대한 성공선례를 무임승차하여 따라 배우는 과정이 발전의 과정이다. 따라서 흥하는 이웃을 넘치게 하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흥하는 이웃을 청산하거나 폄하하는 사회는 경제 정체를 못 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발전관은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이다. 칼 마르크스는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망한다”고 했는데 이는 세상의 이치를 거꾸로 본 셈이다. 그러니 사회주의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실의 시장은 경제적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함으로써, 즉 흥하고자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이웃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무기로 모두를 흥하는이웃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장치이다. 즉, 시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란 바로 경제적으로 우리 구미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더 많은 구매력(돈)으로 투표함으로써 우수한 경제주체들에게 경제력을 집중시킴과 동시에 이들 모두를 더 열심히 노력하게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시장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시장의 차별화 기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경제발전과정에서는 흥하는 이웃에게는 인기가 모이고 경제적 부가 모이기 마련이며,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은 불균형적 현상일 수밖에 없고, 강한 기업에의 경제력 집중과 개인과 지역발전의 차등은 발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기업과 개인에게 경제력과 자원의 집중과 집적이 없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 성공하는 일류 기업이 많은 경제는 일류 경제가 되고, 기업생태계가 발달하지 못한 경제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아산 정주영이 창업해서 일군 현대그룹은 대한민국을 이끈 성공일류기업이었다./사진=미디어펜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차별화 기능만으로 경제발전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시장이 경제발전의 성공 노하우를 창출하는 흥하는 이웃들을 제대로 보상하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무임승차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위 ‘거래비용’이라는 정보탐색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무임승차를 막지 못하여 흥하는 이웃에 대한 보상이 항상 미흡해 진다는 말이다. 누가 무임승차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단속이 어려워지고, 그러니 우리는 마음 놓고 남의 성공 노하우를 무임승차하면서 사는 셈이 되는데, 무임승차가 많아지면 버스회사가 망하듯이 흥하는 이웃들은 생기지 않게 되고 경제발전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부모와 형제, 스승, 국가 인재들을 무임승차만하고 잘 대접하지 않으면 차후에 그런 훌륭한 분들은 잘 생기지 않는 법이다. 일등 문명, 일등 경제, 일류 기업들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업이라는 장치가 등장하여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잘 대접하고 활용함으로써 흥하는 이웃들을 더 만들어내어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기업들도 무임승차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흥하는기업은 다른모든 기업들의 무임승차대상이 되어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일류 기업들은 그래서 쉽게 잘 자라나지 않는 것이다. 일등 기업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무임승차 현상을 고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 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노력하여 경제에 기여하지만 무임승차 때문에 기여만큼 충분히 보상을 받지 못하는 흥하는 이웃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으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여 사라질 위험에 놓인 우수 기업, 개인들이 각종의 경제제도를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래서 동기를 충분히 부여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 1971년 정주영 회장은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 몇 채가 선 초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배를 수주하러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됐다. 사진은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그래서 경제발전은 시장과, 기업, 정부가 모두 우수한 기업과 경제인, 근로자들을 무임승차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차별적으로 더 대접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무임승차당하는 만큼 사회가 보상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돕는 경제주체들을 제대로 대접하는 정부만이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역으로 시장은 성과에 따라 차별을 하려 하는데 정부가 반대로 모두 평등하게 대접하게 되면 시장은 멈추고 경제도 멈추고 발전은 정지된다. 사회주의 경제의 몰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2. 자본주의 “기업”경제론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기보다 ‘기업경제’이다. 왜냐면 기업은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의 창출을 통해 시장네트워크의 영역을 넓힘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추동하는 기관차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정을 생각해 보자. 산업혁명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생활, 성공과 실패 모두가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얼마나 잘 경작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산업혁명을 기술의 발전과 혁신의 과정으로 설명하지만 사실은 이는 피상적 관찰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과 혁신이 일어나도 이를 값어치 있는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해 내지 못하면 경제적으로는 무용지물이 된다. 바로 이 과정을 이끄는 조직이 기업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주식회사제도는 바로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기업조직이 발명되어 기술혁신을 재화로 전환시키면서 기업은 이제 모든 인간들을 농토에서 빼내 기업이라는 조직 속으로 끌어안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바로 내가 속한 조직, 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달리게 되었다. 이제 국민경제의 성공과 실패도 모두 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달리게 된 것이다. 성공하는 일류 기업이 많은 경제는 일류 경제가 되고, 기업생태계가 발달하지 못한 경제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업의 성장은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필수 전제조건이며, 경제발전은 한마디로 그 나라 기업의 성장과정이다. 경제의 발전수준과 예컨대, 세계 500대, 1000대기업의 보유기업 비중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경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결국은 강한 기업의 다과(多寡)가 국민경제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

3. 기업의 본질: 왜 기업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가?

<명제 7> 기업은 비민주적 의사결정체계이며 민주화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은 높은 거래비용 때문에 무임승차당하여 사라질 위험에 처하는 우수한 경제주체들을 내부화하여 충분한 보상을 지불함으로써 사보타지를 막아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함으로써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여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장치이다. 기업의 성공조건은 바로 내부 자원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보장하여 동기부여를 최대화하는데 있다.

그런데 기업이 거래비용을 회피하여 시장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이유는 명령적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장거래는 쌍방 간 거래조건에 100%합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과 합의 등 복잡한 과정이 따르게 되고, 이에 수반하는 거래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수직적 명령조직으로 기업내부의 모든 의사결정은 CEO의 명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부 자원이용에 있어 협상은 필요 없다. 따라서 기업의 내부거래에서는 거래비용을 피할 수 있다. 바로 이점이 기업으로 하여금 시장의 실패를 치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훌륭한 인재를 골라 그에 합당한 보상을 결정하는 것은 CEO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이루진다. 물론 이를 잘하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내부의사 결정과정을 민주화한다는 주장들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기업의 본질을 모른 소치이다. 만일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를 쌍방 간의 100% 합의를 바탕으로 하도록 규정해서 기업을 진정 시장처럼 민주화된 조직으로 바꾸면 그 기업은 너무 높은 거래비용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다.

   
▲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명제 8> 기업의 내부 경영활동은 시장처럼 투명할 수 없다.

높은 시장거래비용의 원천은 거래조건의 ‘불투명성’이며 이를 내부화하는 기업은 불투명한 거래의 집합으로 시장처럼 투명할 수 없다. 기업은 수직적 명령체계라는 조직상의 특성으로 높은 거래비용을 수반하는 거래활동을 내부화해서 살려낼 수 있지만 해당 거래의 기술적 불투명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무임승차를 초래하는 재화의 복잡한 성격을 바꿀 수는 없으며 그냥 안고 갈 뿐이다. 단지 CEO의 판단과 비타협적 의사결정을 통해 거래비용을 회피할 뿐이다.

만일 기업 내의 임금수준과 체계에 대해 외부에서 그 객관적 근거를 대라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단지 CEO의 내부 직원들에 대한 생산성과 동기부여 목적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지 객관적 근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모든 직원들 간의 상호 무임승차를 극대화시키되 보상은 CEO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하는 체제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영활동은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소위 ‘시장거래’처럼 투명화할 수는 없다. 만일 이를 규제하면 기업이 설 땅은 없어진다. 물론 실제 기업의 투명성 정도는 이러한 기업의 상대적 불투명성 본질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자자를 포함하는 시장참여자들의 투명성 요구가 적절히 반영되는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1) 새로운 이론의 보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에 열거한 필자의 저술들(2006, 2008, 2012, 2015)을 참고하기 바란다.

 

*아래는 본고 전문의 목차. 위 글은 이 중 3번째 장이다.

Ⅰ. 들어가는 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2·제3의 아산 정주영이 필요한 한국경제
Ⅱ. 경제제도와 기업행위의 패턴; 이론적 분석 틀
Ⅲ. 경제발전과 기업의 역할
Ⅳ. 기업 지배구조와 다각화·전문화 이론
Ⅴ. 아산시대 한국경제의 제도적·정책적 환경
Ⅵ. 한국 기업가 정신의 특질: 사업보국 이념
Ⅶ. 아산 선택의 성공과 실패, 어디서 왔는가?
Ⅷ. 결어: 박정희 시대가 아산을 만들고, 아산의 선택이 한강의 기적을 이끌다.

원고 출처: 한국제도경제학회. 『제도와 경제』 제9권 제3호(2015.11.) 1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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