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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의 day by day] 높은 성의 친일파, 윤치호 사망 70년

2015-12-09 19:10 |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 이원우 기자

2015년 12월 9일은 윤치호, 혹은 이토 지코(伊東致昊)의 사망 70년이 되는 날이다.

출생은 1865년 충남 아산. 9세에 서울로 올라와 학문을 익혔다. 1881년 유길준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서양학문을 접했다. 윤치호는 평생 영어로 일기를 썼다. 이솝 우화와 걸리버 여행기를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한 것도 그였다.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김옥균을 비롯해 서광범 유길준 등과도 꾸준히 교류했지만 갑신정변에 대한 윤치호의 입장은 부정적이었다. 정변 실패 후 개화파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자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감리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한 번도 신사참배를 한 일이 없다.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일본과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중국을 경험하고, 여기에 기독교 신앙과 서양학문까지 혼합된 윤치호의 내면세계는 동시대 조선의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게 개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조선과 청나라를 ‘미개한 문명’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

“윤치호는 무위도식을 자랑으로 삼는 조선의 양반들에 대해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라곤 세수하는 것과 밥 먹는 것뿐’이며 ‘항상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서 남의 동정을 받으려고만 하고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줄 때는 꼭 던져준다’고 비난했다.” (임용한 ‘시대의 개혁가들’ 中)

"40여 년 전 민영익은 워낙 지체가 높은 나머지 (체면상) 손목시계조차 차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시종 중 하나인 현홍택에게 시계를 차고 다니게 했다. 민비도 시간이 궁금할 때마다 현씨를 불러 시계를 보곤 했다. (1934년 4월 29일 윤치호일기 中)

   
▲ 알고 보면 신사참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일제의 내선일체론을 인정한 일도 없었던 ‘생각하는 친일파’ 윤치호의 인생역정은 그 시대 속에서 그가 했던 고민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조선의 실상을 생각했을 때 윤치호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부분도 적지는 않다. 문제는 그 비판적 인식이 지나친 나머지 전체주의 권력에 대해서는 매우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무솔리니를 “유능하고 정직하고, 상식 있고 정력적인 사람, 그러나 호전적인 민족에게서나 출현 가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윤치호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협동심과 정직성이 요구되는 사업을 함께 경영할 수가 없다”고 혹평했다.

1911년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에 출소한 이후부터 윤치호는 한층 노골적으로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중일전쟁에 청년들이 입대할 것을 권유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한때 창씨개명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해 총독부에 소환되기까지 했던 윤치호였지만 인생 후반부의 그는 윤치호보다는 이토 지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한평생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의 말년에 찾아온 얄궂은 운명은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해방이었다. 사람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윤치호를 비난했다. 유력 정치인들 누구도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개성의 집으로 자객이 찾아와 윤치호를 공격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80대 노인이 되어서도 수많은 비난과 논쟁으로부터 스스로를 항변하는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1945년 초겨울의 어느 날 치과진료를 받고 돌아오던 중 노상에서 졸도, 병상에서 “모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는 삼가라!”라는 말을 남긴 뒤 사망했다.

   
▲ /사진=미국 아마존 스튜디오의 신작 드라마 'The Man in the High Castle' 화면

최근 미국에서는 필립 K. 딕의 원작소설 ‘높은 성의 사내’를 영상화한 ‘The Man in the High Castle’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승리했을 경우를 상상해 전개되는 이 가상역사 드라마에서 주인공 ‘프랭크’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드러내지 못한 채 공장에서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 예술가의 탄생을 시대가 가로막은 셈이다. 역사와 운명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때때로 한 개인의 본질은 힘없이 바스라져 원래의 형태를 알기 어렵게 돼버리곤 한다.

알고 보면 신사참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일제의 내선일체론을 인정한 일도 없었던 ‘생각하는 친일파’ 윤치호의 인생역정은 그 시대 속에서 그가 했던 고민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그가 지금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혹은 조금 일찍 사망했다면 어땠을까.

자기만의 높은 성 속에서 조선을 내려다보며 개화를 꿈꾸었던 그는 끝내 그 성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었다. 인간은 무엇이며 시대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2015년 12월 9일은 그런 날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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