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23일(현지시간) 공개한 국방전략(NDS)을 통해 앞으로 북한의 재래식 전력 위협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이는 미국이 ‘핵우산(확장억제)’을 통한 대북 핵 억제와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은 재래식 방어를 전담하는 형태의 ‘안보 분업’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운용 태세도 기존 대북 방어 중심에서 중국 등 역내 다른 위협까지 대응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이날 발표한 NDS 공개본은 미국이 그동안 한국 방위를 위해 제공해온 지원을 "더 제한적인" 수준으로 줄이더라도, 한국이 "대북 억제에서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되, 한국이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대해서는 미국이 계속해서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방향성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5월 NDS 수립을 시작할 때부터 예견됐던 바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후속 조치와 12월 핵협의그룹(NCG) 공동언론성명 등을 통해 이미 이러한 역할 조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재래식 방위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주한미군의 규모와 구성 등 ‘태세(Posture)’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NDS는 "이런 균형 조정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태세를 업데이트(Update)하는 데 있어 미국의 이익과 부합한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미 국방 당국자들은 "숫자가 아니라 역량이 중요하다"며 대북 억제력이 약화되지 않는 선에서 태세 조정이 가능함을 시사해왔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유사시 북한 장사정포 등의 쉬운 표적이 될 수 있는 지상군 전력을 줄이는 대신, 중국을 상대하는 데 유용한 공군·해군 전력이나 장거리 타격 능력을 확충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만 침공 등 역내 타 분쟁에도 투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오랫동안 갈구해왔다. 한국이 휴전선 일대의 대북 억제를 더 많이 책임지게 되면,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묶여있던 전력을 빼내 남중국해 등 다른 지역에 투입할 여력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아시아 최우선 순위로 ‘대만 분쟁 억제’를 꼽은 바 있다.
미국의 이러한 기조에 따라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독자적 방위 역량 확보를 지지하고 있어, 전작권 전환 조건 달성을 지원하는 데 이전보다 훨씬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주한미군 철수’나 ‘대규모 감축’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반보다는 낮아진 상태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주한미군을 2만 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또한 NDS는 한국을 미국의 국방비 지출 인상 요구에 부응한 "모범 동맹"이라고 치켜세웠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엘브리지 콜비 국방정책차관 역시 한국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국방비 분담을 둘러싼 갈등도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와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주한미군의 성격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규모 면에서도 일정한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NDS 작성을 주도한 콜비 차관이 조만간 방한하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구상이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NDS는 중국, 러시아, 이란과 함께 북한을 주요 위협으로 명시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도 "분명하고 현존하는 핵 공격 위험"이 있다고 적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외교·국방적 노력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