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홍샛별 기자] "지금 안 사면 나만 벼락거지 된다." 대한민국 증시가 '코스피 5000·코스닥 1000'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진입하자 시장은 이성보다 탐욕이 지배하는 거대한 도박판으로 변질됐다. '포모(FOMO·소외 공포감)'에 휩싸인 개인 투자자들이 빚을 내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29조원을 돌파하며 30조원 시대를 눈앞에 뒀다. 지수가 삐끗하는 순간 반대매매(강제 청산) 물량이 쏟아지며 시장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폭탄 돌리기'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포모(FOMO·소외 공포감)'에 휩싸인 개인 투자자들이 빚을 내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29조원을 돌파하며 30조원 시대를 눈앞에 뒀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9조55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1일 29조821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29조원이라는 위험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27조원 수준이던 빚투 규모는 새해 들어 코스피가 폭등하자 불과 3주 만에 1조6000억원 넘게 불어났다.
문제는 증시 기초체력인 '현금'은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21일 96조3317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3일 93조8095억원으로 이틀 만에 2조5000억원 넘게 증발했다. 스마트머니는 차익을 실현하고 떠나는데, 뒤늦게 뛰어든 개미들의 빚만 고점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불에 기름을 붓는 건 증권사들이다. 증권사들은 표면적으로 "변동성 확대에 유의하라"고 경고하면서도, 뒤로는 파격적인 금리 할인을 앞세워 '빚투'를 부추기고 있다. 하나증권과 한화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은 약속이나 한 듯 오는 3월 말(우리투자는 연말)까지 신용거래 이자율을 연 3.9%로 낮추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메리츠증권 역시 7일 이하 단기 구간 이자율을 기존 5.9%에서 4.9%로 1%포인트 인하하며 '단타족'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자금들이 펀더멘털이 튼튼한 우량주가 아니라, 하루에도 20~30%씩 등락하는 2차전지나 테마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가 상승할 때는 '레버리지 효과'로 수익이 극대화되지만, 조정장에 진입하면 담보 부족으로 주식이 헐값에 강제 처분되는 '깡통 계좌'가 속출하게 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과열 징후가 뚜렷하다. 일부 증권사 지점에서는 "신용 한도가 꽉 차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 부서는 특정 테마주에 대한 증거금률을 기습 상향하는 등 '브레이크'를 걸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신용거래 규모가 과도하게 커진 상황에서 주가가 급락할 경우,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지며 하락 폭을 키우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예탁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신용잔고가 29조원대에 고착화된 현 상황을 심각한 '고점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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