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홍콩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를 두고 투자자와 은행 간 대립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투자자들이 은행권을 상대로 제기한 법원 소송에서 패소했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이었는데, 법원이 투자자 책임도 인정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2조원대의 과징금을 사전 통지한 바 있는데, 법원의 판결로 부담이 커지게 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홍콩ELS 사태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제재방식과 검사 관행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은행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규탄하고 나섰다.
금융노조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앞에서 'ELS 사태 해결 촉구 및 폭압적 검사 금감원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금융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 ELS 사태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제재 방식과 금감원의 검사 관행이 궁극적으로 현장 실무 은행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홍콩ELS 사태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제재방식과 검사 관행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은행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규탄하고 나섰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금감원은 금융산업의 최종 수호자여야 하지만, 현재 현장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면서 "감독에도 공포가 지배하는 현장을 만들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홍콩ELS 과징금에 대해서는 산정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보호는 원칙으로 하되, 제재와 감독은 기준과 절차의 정당성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위원장은 "과징금은 원래 법과 원칙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이해될 수 있게 과징돼야 한다"면서도 "지금 적용되는 기준은 법의 취지와 비례성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책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왜곡된 기준이 관행처럼 적용될 경우 금융산업 전반을 위축하고 소비자 선택권 축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는 지난 16일 홍콩ELS 상품 투자자가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1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과거 20년 지수 변동자료 및 수익률 모의실험 미제공만으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장래 지수 변동에 따른 손익 판단은 원칙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은행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는 금감원의 기조와 대치되는 셈이다.
앞서 금감원은 은행이 투자자에게 손실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대표 판매 5개사(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에 약 2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사전 통지한 바 있다.
홍콩ELS는 지난 2023년 홍콩 H지수의 급락으로 투자 피해액이 커지며,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불거졌다. 은행권은 2020년부터 해당 상품을 대거 판매했는데, 판매액은 누적 약 16조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약 4조 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손해를 본 투자자 중 일부가 은행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에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는 과거 10차례 이상 ELS를 투자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은행 권유로 첫 ELS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판결과 별개로 금융노조는 판매사로서의 책임이 있는 만큼, 당국의 적합한 과징금 조치를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ELS 제재심 과정에서 과징금 산정 기준의 오류가 확인된 만큼, 금감원이 과징금 규모를 원점에서 재산정하고 제재 기준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게 금융노조 측의 주장이다.
이 상품 대표 판매사인 SC제일은행의 문성찬 노조위원장은 "과도한 과징금은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이 한국 내 소매금융 철수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자극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며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징벌적 과징금은 4천여 SC제일은행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국내 금융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는 국가적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표적수사식 은행권 검사 장기화 '고압적'
금융노조는 금감원의 은행지주사 대상 현장검사에 대해서도 '짜맞추기식' '인권침해적' 검사로 규정하며, 이날 강력 규탄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열린 금융당국 업무보고에서 금융권의 '부패한 이너서클'을 지적하면서, 금감원은 전 은행지주사를 상대로 지배구조 관련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BNK금융지주와 부산은행이 당국의 표적망에 오르면서, 검사도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해 당국은 BNK금융을 상대로 총 세 차례(38영업일) 정기검사를 벌인 바 있는데, 올해는 지난달 말부터 수시검사를 시작해 수사 장기화로 벌써 20여일 이상 수사를 벌이고 있다. 오는 30일 검사를 마무리한다고 가정하면 총 27영업일을 허비한 셈이다. 금감원은 지난달 22일부터 본격 현장검사를 진행했는데, 당초 이달 9일 종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배구조 발언 파급효과가 커지면서 검사 종료일은 16일로, 23일로 각각 미뤄졌고, 결국 이달 말까지 검사를 마무리하기로 재결정했다는 후문이다.
투입 인력도 타 지주사 대비 상대적으로 많다.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BNK금융 현장검사에 10명을 배정했다. 현재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지배구조 특별점검에 5명, 경쟁사인 iM금융과 JB금융에 4명을 투입한 것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검사 과정에서 은행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표적 검사가 장기화되면서 직원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를 두고 '짜맞추기식 조사' '과도한 압박' '인권 침해적 검사'로 규정하고, 당국의 검사 방식을 폭압적이라고 규탄했다.
금융노조가 금융감독원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가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윤 위원장은 시중은행 조합원들과의 면담 사례를 언급하며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감독이 아니라 위압과 공포에 가깝다"며 "고압적 조사와 심리적 압박은 감독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금감원 조사단이 현장 영업인력에게 고성과 위협을 주는 한편, 모욕적 언행을 일삼고 개인 민감정보 동의를 강요했다고도 부연했다.
이어 "감독권은 절차와 비례성, 인간의 존엄 위에서 정당하게 행해야 한다"며 "은행과 피감기관 관련 검사 과정에서 인권 문제까지 제기될 정도의 도를 넘은 검사 과정을 즉각 점검하고, 법령의 한계를 넘어선 검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