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나라의 대미투자법 입법 지연을 이유로 25% 관세 재인상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검토에 착수했다. 대미투자특별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투자 후보 프로젝트를 사전 검토하기 위해서다.
15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범정부 한시 조직으로 출범한 ‘한미 전략적투자 양해각서(MOU) 이행위원회’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실무단 구성에 들어갔다. 앞서 이행위원회는 13일 첫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이행위원회에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산업부,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외교부 등 관계부처 차관과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기관장이 참여한다. 각 부처·기관에선 실무자를 파견해 이행위 실무단을 꾸리는 작업에도 즉각 착수했다. 실무단에는 대미투자 프로젝트 후보에 대한 사업성 검토에 필요한 부처·기관 인력과 미국 현지투자를 위한 금융, 법률, 시장 전문가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행위원회는 대미투자 프로젝트가 투자금 회수를 보장하는 국익에 부합한 사업으로 추진되도록 예비 검토를 진행한다. 향후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고 법에 따라 대미투자 펀드 조성 및 협의위원회가 구성되면, 이행위 검토 결과를 넘겨 대미투자가 신속히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한편, 정부가 약속한 대미투자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 부흥(MASGA),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 산업에 투자된다. 이 밖에 1000억 달러 규모로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원유에 석탄도 포함되며, 4년 안에 구매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회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12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여야 대치로 40여분만에 피행하는 등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대미투자법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조속히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초 여야가 목표로 삼았던 3월 9일까지 합의 처리될지 불투명해졌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미 대통령 집무실)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에 배석한 한국측 참모들. (앞줄 오른쪽부터) 조현 외교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뒷줄 오른쪽부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강경화 주미한국대사 내정자,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2025.8.25./사진=미국 백악관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14일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상호관세와 함께 담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및 한미 원자력협력 개정 등 안보 이슈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협상팀이 지금쯤 한국에 와서 협의를 해야 했을 때인데 지연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핵심광물장관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지난 3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국 내 분위기가 안좋다”는 말을 전해듣기도 했다. 조 장관의 이번 방미는 지난 10월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첫 미국 방문으로, 조 장관은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팩트시트 이행을 점검하는데 주력했다.
외교부는 “이번에 한미 외교장관은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관리해나가자는데 공감대 가졌다”고 밝혔다. 안보 이슈를 협의하기 위한 미국 협상단이 이르면 2월 말 방한할 가능성도 있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날짜는 조율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한미 간 안보 이슈 협상을 ‘원자력’(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대)과 ‘핵잠‘ 두 분야로 나눠서 투트랙으로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9일 이미 임갑수 한미 원자력협력 범정부 태스크포스(TF) 정부대표가 미국을 방문해 상견례 차원에서 국무부와 에너지부 고위 당국자를 만났고, 이번에 서울에서 첫 실무협상이 열리면 ‘원자력협정 개정’을 의제로 삼을 방침이다.
핵잠 협상은 국방부가 지난달 신설한 ‘핵잠 획득 추진팀’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핵잠 도입 협상과 관련해선 지난해 12월 외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재정경제부 등이 참여하는 ‘핵잠 범정부협의체(TF)’가 구성돼있다.
정부, 각 협상별 엔드스테이트 빠른 도출 위한 방법과 옵션 개발 중
하지만 대미투자가 지연될 경우 한미 간 안보 이슈 첫 실무협상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빠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대미투자법 지연을 문제 삼으면서 비관세 장벽 완화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을 볼 때, 대미투자와 비관세 장벽 완화에 대한 한국측의 뚜렷한 성의가 보이지 않을 경우 원자력·핵잠 문제 논의도 지연시키는 전략을 미국이 구사할 수 있다.
특히 현 트럼프 행정부는 자기가 맡은 사안이 아니라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느 한 고위당국자가 끼어들면 결정이 지연되면서 다른 사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구조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말 또는 3월 초에 방한할 안보 이슈 미국측 협상단엔 국무부, 에너지부, 국방부(전쟁부) 등의 여러 부처 관계자가 포함될 전망이다.
우리정부는 이번 협상을 위해 각 분야에서 빠르게 엔드스테이트(end state·최종 상태)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효율적인 방법과 옵션 수단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즉 각 분야 회의에서 우리의 구상 및 상대방의 협조가 필요한 요소를 정리해서 상호공감대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논의를 이끌어나간다는 방침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