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옥 정치학박사·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보이지 않는 전쟁
1. 총성 너머에서 벌어지는 전쟁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충돌은 단순한 공습과 보복의 교환이 아니다. 군사적 타격은 미군 전투력의 투사(projection)은 전쟁의 겉모습일 뿐, 그 이면에서는 정당성, 국제 여론, 동맹의 결속, 정책 결정 과정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동시에 진행된다.
오늘날 전쟁은 전선(front line)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외교 무대, 국제 유가, 언론, 소셜미디어, 사이버 공간까지 모두 전장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4세대 전쟁(Fourth-Generation Warfar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쟁은 국가대 국가 간의 대규모 정규전의 틀을 벗어나 분산되고 정치화된 환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는 전쟁의 표적이 물리적 대상에서 인간의 인식과 판단 체계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다.
2. 4세대 전쟁의 환경 속 미·이란 충돌
전쟁에서는 군사적 성과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정당성을 확보하는가, 누가 국제 여론을 선점하는가가 전략적 결과를 좌우한다.
미·이란 충돌에서도 군사행동은 곧 외교 메시지이자 정보전의 소재가 된다. 선제공격 여부, 자위권 주장, 민간 피해 책임을 둘러싼 서사(narraitv)경쟁은 군사적 타격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쟁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8일 민중 시위도중 차량이 불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3.인지전: 판단을 교란하는 전략
인지전은 단순한 선전이나 감정 자극이 아니다. 목표는 상대의 인식 구조와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쳐 전략적 오판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상대로 수행했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a. 민간 인프라 지하 시설 공개 전략
2023년 전쟁 초기,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병원과 학교 지하에 지휘 통제 시설과 무기 저장소를 설치했다는 정보를 영상, 위성 사진, 3차원 구조도와 함께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국제 여론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
이 발표는 “민간 시설 공격”이라는 비판적 프레임이 확산되기 전에, “하마스가 민간 인프라를 군사화하고 있다”는 서사를 먼저 제시하는 목적을 지녔다. 즉, 물리적 폭격 이전에 인식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전쟁의 표적은 건물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판단이었다.
b. ‘해킹 기지’ 보도와 대응 움직임 포착 사례
또 다른 사례는 2019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사이버 공격을 수행하는 ‘해킹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사이버 공격 시도를 탐지한 뒤, 관련 조직의 물리적 위치를 추적해 공습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군사 타격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을 물리적 공간으로 연결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함으로써 하마스의 대응 움직임을 유도하고 포착했다는 점에서 인지전적 요소가 강하다.
공개 발표는 하마스 내부에 혼선을 야기하고, 추가 활동을 노출시키는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히 해킹 시설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사결정과 행동 패턴을 교란하는 전략이었다. 전장은 키보드와 서버에서 시작해, 결국 공중 타격으로 이어졌다. 정보와 인식이 물리적 타격을 유도한 사례였다.
4. 심리전과의 구분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은 공포와 불안을 조성해 적의 사기를 약화시키는 전략이다. 감정이 주요 표적이다. 그러나 인지전은 판단 체계를 겨냥한다. 감정 자극은 수단일 뿐, 궁극적 목표는 정책 결정, 사회적 신뢰, 동맹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심리전이 “싸우기 싫게 만드는 것”이라면, 인지전은 “틀린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보듯, 정보 공개 자체가 전투 행위의 일부가 된다. 전쟁은 폭격 이전에 인식 공간에서 이미 시작된다.
5. 미·이란 전쟁의 향방은 어디에서 결정되는가
미·이란 충돌 역시 단순한 군사력 경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해석, 동맹 내부의 정치적 계산, 국내 여론의 흐름이 전략적 선택을 좌우한다.
현대 전쟁에서 전략적 우위는 화력이 아니라 인지 우위(cognitive superiority)에서 나온다.
누가 먼저 서사를 장악하는가, 누가 정당성의 기준을 설정하는가가 장기적 결과를 결정한다. 전장은 더 이상 지도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전장은 인간의 인식 속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강찬옥 정치학박사·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