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의 근원 2 : 사회 · 심리적 접근 `하이퍼 리얼리즘의 덫`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La societe de consommation)와 시뮬라시옹의 필터링으로 해석해보는 反기업, 反시장정서 Ep.2
20세기에 들어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많은 성찰(Reflect)과 반성을 요구했다. 황폐해진 유럽은 무엇보다 파시즘-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이 경제계, 교육계, 문학계를 비롯한 사회-인문분야, 심지어 의학계에까지 퍼졌고, 현실적 차원에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식민지의 반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여기서부터 세계는 근대화를 일찍 이룩한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농업경제를 기반으로 극단적 계급사회를 만든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60년에 가까운 냉전에 돌입하게 된다.
▲ 사진은 1945년 6월 24일 샌프란시스코 회의. 유엔창설의 모태가 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비중 있게 논의된 사항들은 전후 식민지 처리문제 만이 아닌, 파시즘에 관한 극복방안도 세부적으로 논의된 회의였다./사진=자유경제원 웹사이트 '세상일침' 게시판 |
전편에서 언급한 인류가 생필품을 위한 생산에서 기호의 소비를 위한 생산이 더해지는 시기가 이때이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는 냉전이라는 체제경쟁이 만들어낸 절박함 속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 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회의는 대한민국이 식민지에 벗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가치로 내건 국가라는 것을 세계에서 인정받는 의미심장한 회의이기도 했다. 냉전이 시작되자마자 소련과 동구권 공산진영은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인권을 소중히 하는 국가의 노동시장을 휴민트(Humint-인적네트워크를 통한 첩보활동)와 같은 지하활동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영국의 경우 1979년 마가렛 대처 수상이 등장하기 까지 강경노조의 영국병에 시달려야 했다.
건전한 개혁이 아닌 권력의 주체가 되고 싶은
노동운동 그리고 反시장론자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은 자신의 칼럼 “한국 노동운동의 뿌리”에서 1920년 식민지 조선시절부터 시작한 한국의 노동운동이 1953년 한국전쟁시기에도 지속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필자가 이 칼럼을 인상 깊게 주목했던 이유는 냉전시기 서유럽의 과격한 노동운동이 한국에서도 정치세력화가 되는 과정과 시기가 절묘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조선과 대한민국은 서유럽과 미국, 일본처럼 전쟁을 통한 피의 대가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한국전쟁의 예를 들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선진국들처럼 해외에서 벌인 전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의 反기업, 反시장 정서는 자신이 상대하고 싶은 가상의 집단을 미리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인다.
▲ 사진은 2012년 현대증권의 어울마당. 전세기 까지 동원하여 해외에 나가 정당인사까지 초청한 것은 사실상의 정치행사 이자 기득권 과시이다./사진=자유경제원 웹사이트 '세상일침' 게시판 |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노조단체의 행사에도 주목해야 한다. 2012년 현대증권사에서 노동문화제라고 명명했던 노동조합의 연례행사가 40억 원의 재정기금을 운용하며 “어울마당” 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의 전세기까지 동원 중국 상하이 행사의 호화 논란은 여러 차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괄목한 만한 사실은 민주노동당을 창당해 초대대표를 지냈고, 현재 종북논란으로 헌법재판소로부터 정당해산 심판을 받은 통합진보당 변론에 나선 권영길 전 의원이 초대된 것을 보면 사실상의 정치행사다.
뿐만 아니다. 노조단체의 고용세습도 사실상의 “현대판 음서제” 라는 비판을 받으며 헌법적으로 이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고, 이러한 행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교섭 지도 과정에서 노사간 개선권고 뿐인 것을 봤을 때 노동단체 스스로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건전한 개혁이 아닌 말 그대로 권력의 정점에서 뭔가를 누리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덫에 걸린 反기업정서와 反시장론자들
“대기업=괴물”이라는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는 진짜 괴물들
현재 대한민국은 남녀노소를 떠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설명하기 힘든 분노와 집단지성을 통한 돌팔매질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그 대상은 힘이 약한 대상일수도 있으나 대부분 전편에서 설명한 소비활동에 “기호로서의 소비”를 하지 못하는 집단에 의한 “설정된 증오”이다. 쉽게 말해 본인이 지향하고 싶은 이념에 속한 단체의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증오의 대상을 이미 “설정”해 놓고 증오를 퍼부어 대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다.
▲ 사진은 대한민국의 일상화된(?) 폭력시위 현장. 뒤틀린 앙심과 심보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정작 폭력시위의 당사자들이야말로 경직된 도그마를 단단히 틀어쥔 대한민국 최대의 기득권이자 이익집단,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는 진짜 괴물들이다./사진=자유경제원 웹사이트 '세상일침' 게시판 |
인간은 자신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 원인도 현실적인 해결책도 도저히 찾기 힘들다면, 그 문제로 불거진 불안감과 초조함을 여러 가지 강박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을 분출하며 해소하려 든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책임전가 의식이 교집합 된 상황이며 이러한 심리구조에서는 반드시 외부의 표적을 찾기 마련이다. 이러한 개체들이 단체를 형성하고 정치권의 정당과 같은 공신력을 인정받는 집단이라면 절대적으로 보이는 대상(시뮬라크르)을 증오함으로써 자신과 구성원들의 서열을 올려보려는 뒤틀린 정서가 만들어진다. 이 시뮬라크르의 표적은 불행히도 “미국”과 “대기업”이 간택(?)되었다.
反기업정서를 생산하는 反시장론자들은 대부분 기업가들 혹은 기업의 구성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거나, 경제적 사기를 당했다거나, 질이 떨어지는 제품에 대한 정당한 교환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괴물” 이라는 시뮬라크르는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인 혐오 대상에 대기업과 구성원들을 흡수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등식이 성립하는 심리적 기저에는
⓵ 경제활동의 경험이 없거나 미비했다는 점,
⓶ 시장의 격한 경쟁 속에 던져진 적이 없다는 점,
⓷ 직업적 특성상 수익창출이라는 합목적 목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점,
⓸ 피동적 자아로 인해 능동적 타인을 곱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여고생의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의 발언은 입맛에 맞지 않는 교과서라는 시뮬라시옹의 틀에 넣어 전체주의에 의해 1억 명 이상이 대량살상을 당한 이념적 뿌리를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세계에 말도 안 되는 등식을 덮어 씌웠다. 여고생이라는 신분을 살펴봐도 위의 4가지 사례는 정확히 일치하며 정당과 노조단체, 전교조와 같은 공신력을 인정받는(?) 집단의 정신구조야 말로 훨씬 더 뒤틀릴 데로 뒤틀린 교조주의적 잔인성을 포함한다는 것까지 계산한다면 사회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은 힘들게 나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사진은 통진고 여고생 전모양과 무언가에 오열하는 북한시민. 어떠한 현실이 저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울먹이게 만들었을까? 여고생의 신분상 과연 역사문제라는 것에 얼마큼의 축적된 지식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시뮬라르크 안에서 스스로의 감정과잉을 분출할 창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두 대상은 참 많이도 닮아있다./사진=자유경제원 웹사이트 '세상일침' 게시판 |
기업단체를 인식하는 다양한 창구가 절실
전편에서 설명한 몇 가지 사례와 자유경제원과 같은 민간단체를 통해 수많은 결과물과 다양한 활동을 했음에도 정치적 구호가 되어버린 反기업정서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법에 필자는 기업단체를 더 이상 부러움, 질시, 증오의 대상과 같은 감성적 접근 (Emotional Approach)이 아닌 정세와 역사적 사례, 사회발전, 고용창출과 같은 산술적 접근 (Statistical Approach)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기업과 국가경제와 같은 실체적 메커니즘을 더 이상 Ⓑ문화-소비-기호가 아닌 Ⓐ경제-생산-상품 이라는 현실적인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은 기업을 인식하는 채널의 다양성이라고 결론짓고 싶다.
일부 기업에서는 여전히 후진적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분명히 존재함과 동시에 열린 사고와 경영방식으로 인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기업들 역시 많다. 反기업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대중매체의 여파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일수록 대학에서 경제와 기업관련 강의여부를 제외한다면 실제적으로 기업과 지배구성원을 접하는 창구는 뉴스와 드라마이다.
특정매체의 기호에 맞게 설정되고 걸러진 후 대중에게 전파되는 매개일수록 가장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통한 현실적 실체를 시뮬라시옹화 하고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주목을 받는 집단에 익숙해지다 보면 재화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자본축적을 하고 인력을 창출하여 중산층을 만들어내며, 기업의 출현과 자본주의가 발전하므로 인류의 계급사회를 무너뜨렸다는 기업의 지극히 긍정적인 효과는 말 그대로 시뮬라크르가 되어버린다.
反기업정서는 곧 反시장주의를 낳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가장 자연적 경제활동인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빠질 위험성이 존재하며 이미 상당부분 그 목적(?)을 달성한 상태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를 통한 고용창출이다. 그러한 활동과 결과물 이야말로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회적 윤리라는 것을 인식하는 이성적인 눈높이가 절실하다. /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