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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⑦]제2의 한강 기적 "아산이 길이다"

2015-12-18 13:4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박정희 시대에 한국 경제의 영웅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이봐, 해보기는 했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의 대표적 명언이다. 아산 정주영은 호암 이병철과 더불어 우리나라 기업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기업가다. 아무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상인의 길에 투신하여 돈을 벌고 집념과 불굴의 끈기 하나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집단을 일구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과업을 획기적인 발상으로 정면돌파한 우직한 위인이기도 하다. 

2015년 올해는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19151125)이다. 미디어펜은 이를 기리며 좌승희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의 아산 정주영연구논문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7번째 마지막 연재다. 좌승희 교수는 KDI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장과 경기개발연구원장을 역임한 기업경제, 경제발전 전문가다. 한국비교경제학회, 한국규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좌 교수는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아산의 기업경영 전략과 인생역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한국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행태를 이해하고자 했다. 신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과 기업인은 특정 경제사회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다. 좌 교수는 논문을 통해 그 제도적 환경의 내용과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 기업이나 기업인의 경영 및 인생행로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족벌경영 비난…아산의 경영전략은 옳았다

아산의 현대를 포함 한국 대기업들의 총수경영, 가족경영과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기업지배 구조에 선진 외국이 갑론을박이다. 

정치권이나 학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기 때문에 개혁되어야할 사안이라고 그 동안 온갖 제도개혁을 시도해 오고 있지만 얼마나 전문경영인체제가 정착되었는지, 혹은 그래서 한국기업들이 얼마나 경쟁력이 향상되었는지, 더 나아가 지금 몇 안 되지만 잘 나간다는 한국 대기업들이 투명한 전문경영인 체제 때문에 그런 것인지, 지배구조문제와 관련해서 답해야 할 난제들은 너무 많다.

필자는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냥 지배구조는 주어진, 혹은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 맞춰 진화할 뿐이지 불변의 정답은 없다는 입장이다.12) 그래서 최고의 성공지배 구조는 단지 성공한 기업의 지배구조라 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최적 지배구조는 기업들 간의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지는 것이지 어느 누구 외부인이 정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구조는 정치상황, 정부규제, 국민정서, 시장상황 등 외부 경쟁 환경에 대응해서 기업의 생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변수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제일 성공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한국기업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업들도 끝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한 암중모색을 통해 생존력을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다.

   
▲ 성공하는 일류 기업이 많은 경제는 일류 경제가 되고, 기업생태계가 발달하지 못한 경제는 후진국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아산 정주영이 창업해서 일군 현대그룹은 대한민국을 이끈 성공일류기업이다./사진=미디어펜

한국적 경영, 즉 총수오너 경영, 가족중심 경영,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은 그 나름대로 폐단도 있을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한국의 불투명한 재산권 보호, 정치권력의 횡포, 정부의 일관성 없는 규제정책, 일반국민들의 반재벌정서, 일부 좌파들의 재벌청산 주장 등의 대외여건 속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최적 형태로 진화해 온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선택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그룹 성공 열쇠, 아산의 다각화 전략 주효

아산은 철저한 관련다각화를 통해 현대의 성공을 이뤘다. 우선 정부의 산업화 전략에 부응하면서, 정부정책과 현대 사업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하였다. 국가 기간산업, 인프라 산업에 특화하면서 정부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를 정경유착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는 아산이 박정희시대 정경유착을 준비(?)하기 위해 1940년대에 현대건설을 창업하고 6.25중에 미군 상대 건설사업을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옳은 관점이 아니다. 그야 말로 박정희의 등장과 현대의 성공, 그리고 한국경제의 산업화는 운명적이었다는 말로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어 보인다.

여기에다 아산의 타고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경영역량이 뒷받침이 되어 다각화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설과 자동차로 시작하여 중공업으로, 자동차와의 관련성과 새로운 IT 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현대전자의 창업으로 이어지는 건설, 자동차, 조선, 중공업, IT로의 현대의 다각화 여정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관련 다각화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팔리는 유조선을 개조하여 컨테이너선을 만들어 현대상선을 창업한 일도 조선업종과의 시너지를 잘 살린 경우이다.

   
▲ 아시아 2번째,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포니 개발성공이후 1985년 첫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의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문어발 논란, 비관련 다각화는 왜?

다각화의 관련성과 비관련성의 구분은 대단히 자의적일 수 있다. 이미 지적한데로 산업연관측면에서 관련성이 낮더라도 기업가의 통제범위(span of control)가 넓으면 그 기업인이 거느릴 수 있는 산업은 다 관련 산업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업가의 경영능력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투입물이며, 하나의 투입물을 여러 분야에서 공유하여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분야 간의 관련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경제를 보다 전일적으로(holistically), 복잡성(complexity)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활동에서 연결성은 무한대로 확대될 수 있기도 하다. 경제에 유관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제조업을 떠나 금융업이나 언론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어발이라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쉽게 산업관련성 여부만으로 비관련 문어발 다각화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정부의 경제개입이 광범위하여 금융이 정부의 관치 하에 있다면 은행대출 의존마저도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기업의 생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때 기업은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재산권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업을 내부화할 유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외에도 금융은 모든 사업의 기본적 투입물이기 때문에 금융업은 어느 경우에나 관련 산업일 수 있다. 특히 80년대 이후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이 개별 기업지원에서 기능별 지원정책으로 전환되고 금융자율화가 진전되면서 독자적인 자체 자금조달 창구가 더욱 필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의 거의 모든 재벌들이 금융업을 자회사로 소유하고자 노력하게 된 것이며, 아산 또한 이에 예외가 아니었다.

한편 언론사(문화일보, 한국경제)에의 지분참여나 계열화도 부당한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볼 수 있다. 언론사를 소유하는것이 무슨 대단한 수익사업이라서가 아니라 부당한 정치권력이나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재산권을 지키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일 수 있다. 언론사가 적자경영이 많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산 또한 이에 예외가 아니다.

아산, 대마불사(大馬不死)  계책 있었나, 없었나 

경제학은 대마불사 전략이란 실패의 비용이 너무 커 국가가 쉽게 파산을 방치 못할 정도로 기업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기업에게는 생존전략이 될 수 있는 반면, 정부로서는 가급적 회피해야 할 상황이라고 가르친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런 전략으로 기업규모를 필요이상으로 키우고 정부에 대고 소위 ‘배 째라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해 왔다. 더구나 IMF 외환위기시 재벌파산의 국민경제적 파장을 보면서 이런 시각이 보편화된 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강력한 정부개입 하에서는 기업이 생사여탈권을 쥔 정부의 힘을 이용하거나 그 힘에 대한 방어수단을 강구하려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대마불사전략이 유용한 방어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재벌은 중화학공업화 전략에 따라 내수가 아니라 해외시장을 목표로 해서 규모의 경제를 감안해서 공장의 규모를 대형화하고 이에 따라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대마불사전략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만 전체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업간 통폐합 과정을 통해 일부 그룹이 부실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면서 결과적으로 대마불사와 유사한 전략을 활용한 면이 있었다고 보이나 아산의 경우는 모든 사업을 처음부터 창업으로 시작하고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한 두건의 공기업인수 말고는 대마불사 전략이라 볼 수 있는 기업 확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가 다른 대기업들에도 다 적용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아 보인다.

   
▲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대의 외화를 벌어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 사진은 현장을 방문한 (사진왼쪽)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정경유착, 오해와 진실

한국의 대기업 재벌들은 정경유착의 화신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정치권력의 비위를 거스르고는 생존할 수 없는 경제 환경 하에서 기업의 생존전략은 소비자의 지지를 많이 받는 것 못지않게 정치권력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정경유착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특히 정치권력이 부패할 경우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뇌물을 주는 쪽과 요구하여 받는 쪽과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

아산의 소회를 들어보면 그 답이 보일 것이다. 다음은 국회 5공 비리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정경유착 문제에 대해 소회를 밝힌 부분이다.

“나는 둘째가라면 서럽게 정치자금을 많이 낸 사람이다. 내가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있지만 내야 할 것 같아서 낸 것도 많고, 안 내면 혼날 것 같은 눈치라 내기도 했고, 노골적으로 내라고 해서 내기도 했다. 정치인이나 통치자의 활동지원 차원의 순수한 의미의 정치자금 도 있었고, ‘현대’의 생존을 위해 사발로 겨자 먹는 것처럼 괴로워하면서 낸 뭉칫돈도 있었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항상 뇌물 없이, 혹은 다른 방식이라도 정경유착 없이 기업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지만 “권력”이라는 힘이 없어지지 않은 한 그것은 이상 사회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치도 사업보국의 연장선

기업가는 더구나 아산 같은 도전적 기업가는 항상 기업경영 환경의 저해 요인을 내부화하려는 의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처님이 나를, 기업을, 경제를 정말 계속 못살게 굴면 아예 내가 부처님이 되면 되지 않겠는가!

아산의 자서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한 가지 아산이 기업가로서 극복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위해 요소는 바로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 못지않은 삶과 사업에 대한 고통이 바로 정치권력의 횡포라 했다. 이것이 바로 운명적으로 아산을 정치로 이끈 원인이 아니었을까 해석해 볼 수 있다.

정당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하고 나아가 대통령까지 한다면 아산이 그렇게도 고통스러웠던 정치를 전부 내부화할 수 있는 셈이 아닌가? 아산이 이 가능성을 놓쳤다면 그동안 살아온 아산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 출마는 실패했지만 아산으로서는 ‘해보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선택의 배경에는 아산의 산업보국 이념과 애국충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산은 그의 대통령 출마를 “나라를 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의 지나간 권력들은 무분별, 무경우, 무경험이 대부분이었다. 나라는 산으로 가든 말든, 강으로 가든 말든, 밤이나 낮이나 자기네들끼리의 세력다툼밖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걸핏하면 세무조사에, 걸핏하면 잡아넣고, 또한 꼬박 꼬박 바쳐야 하는 정치자금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무섭기는 또 엄청나게 무서웠다.

   
▲ 1971년 정주영 회장은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 몇 채가 선 초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배를 수주하러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됐다. 사진은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권력을 막강한 힘만으로 알고 막강한 책임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는 집단의 정치 아래서 기업을 하면서 살아내기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갖가지 비리에 얼룩진 전두환씨의 5공이 끝나고, 6공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서는 더더구나 기업 활동이 힘들어졌다. 성금이라는 명목의 정치자금은 정권이 바뀔수록 단위가 커져갔는데 큰 불편 없이 기업을 꾸려 가려면 정부의 미움을 받지 않아야하기 때문에 때마다 지도자한테 뭉텅이의 돈을 바쳐야 하는 이 나라가, 나라이기나 한 것이냐는 한심스러운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나라의 좌절과 영락은 막아야 하고, 그래서 국민이 다 같이 행복하고 보람 있는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집념, 그 뿐이었다”

실패 후 아산은 그이 낙선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그의 인생의 결정적 실패라는 세간의 지적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디쓴 고배를 들었고 (YS 정부로부터) 보복 차원의 시련과 수모도 받았지만 나는 실패한 것이 없다. 오늘의 현실을 보자. 5년 전 내가 낙선한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YS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실패이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온 YS의 실패이다. 나는 그저 선거에 나가 뽑히지 못 했을 뿐이다. 후회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 음미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일개 기업인이 왠 사업보국인가?

아산이 어린 시절 서당 훈장이신 조부님으로부터 유학을 배웠다고 했다. 유학은 동양의 고래의 사농공상의 이념의 뿌리이다. 인간은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동량이 되고 가문의 이름을 빛내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산도 고등고시, 회계사까지 시도하지 않았던가. 유학자가 어떻게 자신의 자존을 지키며 기업을 할 것인가?

기업을 하되 서양식 이윤추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다면 유학의 이념에 맞고 가문에도 욕됨이 없고, ‘선비’인 내 마음도 편해지지 않겠는가. 이래서 동양의 기업가들은 항상 사업을 하되 나라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생각과 주장을 - 사실 그러한지는 알 수없는 일이지만 - 하게 되는 것이다.

아산 왈,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아산은 그러나 말로만이 아니라 그의 사업의 발자취 자체가 한국의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했으니 진정으로 자신과 종업원과 나라를 위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산의 '민족'중시 대북 경제관

60년대 이후 개발연대의 한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아산으로서 북한은 무엇인가? 고향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또 하나의 산업혁명을 기다리는 우리의 60년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반쪽의 한국이다. 북한이 최빈국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남쪽의 산업화를 이끈 아산이 북한을 저개발과 빈곤의 나락에서 구할 수 있다는 자신과 확신이 왜 없었겠는가? 산업화의 노하우를 체화한 아산에게 북한은 다시없는 제2의 산업화 실험의 최적지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인식과 더불어 민족 통일이라는 대 과업, 고향이라는 또 다른 인연, 미개발의 자원, 우수한 인력, 이런 것들로 아산은 북한판 제2의 ‘현대’를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산의 꿈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북한 또한 산업혁명을 원한다면 여전히 아산 류의 기업가정신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아산을 만들고, 아산의 선택이 한강 기적 이끌다

기업의 경영전략은 해당 기업이 특정시점에서 처하는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옳고 그르다는 평가를 쉽게 내릴 수는 없다. 경제·경영환경에 의해 선택되는 전략만이 성공할 뿐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대기업들을 포함하여 아산의 경우에도 나름대로 주어진 격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최선의 선택을 한 결과가 아산이 남긴 현대그룹의 모습인 것이다.

실패하는 기업은 잘못 적응한 결과이며, 그나마 현대처럼 계열분리를 포함하여 많은 격변을 겪었으나 오늘날 자동차, 건설, 중공업 등의 주력 기업들이 저 만큼이나 굳건하게 융성하고 있다면 그동안의 아산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닥칠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과 성공여부는 아무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아산 정주영은 한국에 대해 무엇인가? 경제발전은 흥하는 이웃의 성공 노하우를 따라 배워, 즉 무임승차해서 흥하는 자가 양산되는 과정이다. 아산이야 말로 그 자신의 성공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기업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기업성공, 인생성공의 노하우를 공짜로 가르쳐 준 선각자이다.

아산을 무임승차하여 새로운 창업과 기업 활동에 나선 사람이 줄을 이루고 이들의 성공이 한강의 기적을 완수하였다.

물론 같은 의미에서 아산을 선택하고 앞세워 대한민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박정희는 세계 모든 후진국들이 따라 배울 만한 리더십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아산의 선택과 이 선택이 한국경제의 산업혁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박정희시대의 산업화 전략은 함께 한국경제 근대화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선택 없이 아산의 성공은 불가능했고, 아산 정주영의 선택과 성공 없이 한강의 기적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아가 박정희시대의 성공적인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아산을 포함한 한국 유수의 대기업들을 일구었고, 이들의 노력이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아산의 정신은 지금도 대한민국에 도도하게 살아있다. 제2의 한강 기적과 대동강 기적을 확신하는 이유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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