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올 겨울이 유난히 춥다. 계절적 이유보다 우리 경제에 불어닥친 한파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인 수출은 부진하고 업황은 수렁으로 깊게 빠진다. 미 금리인상, 중국 경제 부진, 저유가, 국지적 대립 등 대외 리스크가 한반도를 흔들어 놓고 있다. 경고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 사진은 지난 11월 10일 서울고법 형사12부 심리로 진행된 판기환송심에 참석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현 회장이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가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그룹 비상경영이 백척간두에 섰다./연합뉴스 |
재계가 체감하는 경제상황은 더 추울지 모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의 실형에 기업가 정신의 위축을 두려워하고 있다. 재계는 이 회장에 대한 2년6개월의 실형 선고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소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이 회장의 실형 선고로 기업인들의 사기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이 매우 엄중함을 감안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우리 기업인들이 이번 판결에 위축되지 않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결정에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일지라도 법질서를 경시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기회란 점에서 말이다.
재벌 총수에 대한 미움 여론도 작용했고 일부 유죄 부분도 분명 있었기에 여러가지 고려된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배임죄를 가중처벌한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검토하라고 파기환송시킨 점을 상기해보자. 이 회장의 배임혐의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빌딩을 사면서 일본 법인에 연대보증을 서게 해 결국 회사에 30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배임이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자신이 재산상 이득을 보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힌 일을 말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배임으로 이득을 봤다는 피해액의 계산을 대출원금에 이자를 합한 금액으로 산정했지만 대법원은 이 회장의 이득을 정확히 산출할 수 없기 때문에 형법에 비해 가중 처벌되는 특경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CJ 일본법인이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있었고 이자도 밀린 적이 없음을 들었다. 대신 일반 형법 중 배임죄로 다시 판단하라며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잘못한 것은 당연히 죄값을 치뤄야 히겠지만 여론 등에 떠밀려 죄값보다 더 엄한 벌을 받는다면 일반시민이나 재벌총수도 억울한 건 매 한가지다.
이 회장이 잘못한 게 있으니 억울해도 말을 못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재판과정에서 "모든게 제 탓"이라며 "건강을 잘 회복하고 선대의 유지인 사업보국과 미완성의 CJ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 기회를 달라"며 간곡한 선처로 속마음을 대신 했는지 모른다.
여론에 반해 재계에서 집행유예를 내심 기대했던 것은 이 회장의 심각한 건강 상태도 작용했다. 원래 몸무게가 70kg대였던 그가 현재 40kg대가 될 정도로 급속히 야위었다. 과거 사진과 비교해봐도 얼마나 이 회장의 상태가 나쁜지 가늠할 수 있다. 신장이식 거부반응과 치료법이 서로 상충되는 CMT병으로 인해 계속 악화될 수 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한다.
2년 넘은 투병생활을 재판과 함께 병행하다보니 더 힘든 상황일 수 있다. 문제는 재상고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이 회장이 제대로 형집행을 할 수 있을 지 여부다. 2013년 7월 구속수감 이후 법원은 올해까지 모두 다섯차례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이유는 신장이식수술, 수감 중 건강 악화 등 갈수록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법원에서 구속집행정지 요청을 수락했다.
만일 재판부가 이 회장의 잘못을 용서할 수 없음을 확고함으로 실형 확정 판결을 내려 구속 수감한들 이 회장의 건강상태로 미뤄보아 구치소 수감생활은 불가능해 보인다.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해야 몸을 추수릴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차디찬 수감생활에서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수 없다.
더욱 죄값을 치뤄야 한다는 법원의 강력한 의지는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구속집행정지나 건강 악화로 더 나쁜 몸상태로 전이됐을 경우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여론도 부담일 수 있다. 여기에 추가적인 소모적인 논쟁거리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엄중한 잣대는 좋으나 사법부의 유연하지 못한 판결이 국민들의 신뢰성을 잃을 수 있다.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재벌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는 분명히 보여줬다. 이 회장도 회사가 어려울 때 창업주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비를 털어 회사를 살렸고 창업주의 사유재산과 회사 비용이 칼같이 분리되는 지금과는 달리 일부 혼동해 사용하는 관행 시절, 순간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통해 검찰, 구치소,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비참한 신세를 느꼈고 죄값도 톡톡히 치뤘을 것이다. 이제 건강 문제에 부딪힌 이 회장에 대한 대승적인 판결을 고민할 때다. 법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때론 법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일도 있다.
CJ는 고부가가치산업이자 고용계수가 높은 문화산업 분야에서 국내 제일이자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만큼 정부가 애타게 희망하는 경제활성화에서 매우 큰 효과가 날수 있다.
안그래도 사업보국을 창업이념으로 가진 이 회장이다. 8.15 광복절 사면 이후 통큰 투자를 하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보다 더 과감한 투자와 사회공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몸상태로는 당장 경영 일선에 나서진 못하겠지만 CJ그룹이 그동안 멈춰섰던 과감한 투자들에는 분명 속도는 붙을 것이다.
CJ그룹은 총수의 장기부재로 대규모 M&A건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보류되면서 CJ대한통운, CJ오쇼핑, CJ제일제당 등 주요계열사가 추진했던 굵직한 M&A건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CEO 리스크가 부각된 CJ그룹은 높은 대외 위험성 파고에서 길잃은 아이처럼 주저하고 있다. 기업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듯 기업의 수명도 당연지사다.
점점 강화되는 경쟁 속에서의 생존은 아마존 정글과도 같다. 기업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시장의 급변화에 뒤쳐지면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한 순간에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아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사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휴대전화 업계의 최강자인 노키아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핸드폰 사업에서 철수 했다.
하루 아침에 CJ가 퇴출된다고 했을때 직장을 잃은 수많은 직원들의 생계는 비참해질 뿐이다. 지금도 재계의 구조조정은 상시화되고 있으며 살아나지 않는 경제상황에 밖으로 더 내몰린 위기에 처혔다.
경제살리기는 기업가 정신에서 나온다. 경제적 번영의 열쇠다. 투자란 단기간에 그 성과를 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 투자는 장기간을 두고 해야 한다는 점에서 누군가 주인의식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핵심정책으로 삼고 있는 경제활성화 역시 주인의식을 갖는 총수들이 투자결정을 하고 이를 추진할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판부의 판단이 죄값에 편협되지 않고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동력을 찾고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수 있도록 대승적인 재판부의 판단을 기대해본다. 이를 통해 이 회장도 과거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건강을 빨리 챙겨 그가 강조한 사업보국과 국가 경제를 위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헌신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