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지난해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소신은 뭘까? 그리고 유승민 의원에게 대북확성기란 어떤 의미일까? 오리무중인 것처럼 보이던 그의 소신이 지난 7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차원의 대북확성기 방송을 놓고 본색을 드러낸 느낌이다.
지난해 여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을 외치며 새누리당 원내대표직를 내려놓았던 유승민 의원. 당시 사퇴의 변은 자성이 아니라 책임전가와 자기가치에만 충실한 지극히 계산된 포퓰리즘 발언이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3선 의원으로서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나라 걱정보다는 자기 정치에 대한 변명으로 급급했다.
7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국방위 긴급현안보고에서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촉구하며 “북핵실험은 지난 해 남북공동합의문 3항을 정면 위반한 것으로 자동으로 대북확성기 방송은 오늘부터 당장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다그쳤다.
▲ 지난해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소신은 뭘까? 그리고 유승민 의원에게 대북확성기란 어떤 의미일까? 오리무중인 것처럼 보이던 그의 소신이 지난 7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차원의 대북확성기 방송을 놓고 본색을 드러낸 느낌이다./사진=연합뉴스 |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답변하자 유승민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정부당국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 발표했는데 확성기 방송 재개한 것이 혹독한 것이냐. 이게 전부냐”고 질타했다.
한 장관이 확성기 방송을 실시한 것은 우리 군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치 중 우선적으로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으나 유승민 의원은 “추가 조치를 할 것이냐. 당연히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확성기 재개가 혹독한 대가라고 생각할 국민이 있겠는가”라고 쏘아 붙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13일이 지났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유승민 의원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8월 판문점에서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당시 북한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고사포와 76.2mm 평곡사포를 동원해 포격도발을 감행했다. 동시에 인민군 총참모부의 통지문을 통해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방송이 계속되자 전선지역에 대한 준전시상태 돌입을 선언하고 전군에 완전무장을 지시했다. 고위급접촉 등이 오가는 와중에도 북한은 잠수함 전력의 70%를 움직이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어 열린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서도 예상과는 달리 북한은 무박 4일로 이어진 회담에 끝까지 남아 최종 합의에 이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의 이같은 행동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한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비무장지대(DMZ) 남측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우리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의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로 중단하기로 했었다.
이처럼 대북 관계에 있어 대북 확성기 방송은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위력 수단’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심리전인 동시에 주요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등 북한 3대 세습과 군내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유승민 의원은 알았을까? 5개월도 채 안 돼 유승민 의원은 국방장관을 앞에 놓고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한 입장을 바꿔 몰아쳤다. 3선 국회의원이자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지냈다는 언행치고는 앞뒤가 안 맞는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가보자.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의 변에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라고 했다. 그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단 말인가. 자신의 정치적 생각과 다르다고 자기반성은커녕 민주공화국 운운하는 것은 정치가로서의 포용력과 그릇을 그대로 보여준 전형이다.
그가 진정 민주공화국 집권 여당 원내대표라면 ‘개인의 가치’보다는 ‘당의 가치와 노선’에 부합하는지, 국민의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는 한번쯤 되짚어 봤어야 했다. 자신의 위치는 생각하지 않은 채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다 벽에 부딪치자 민주공화국 운운하며 자신만의 영웅심리에 만끽했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 당시 소신대로 행동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유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를 그만두기까지 보름 가까이 버텼다. 국회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와 함께 “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 달라”는 발언이 나오자 바로 그 다음날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마음 푸시길 바란다”며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이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표정관리를 하면 “사퇴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버티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후에야 ‘헌법가치’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치가 좌절된 듯한 투사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물러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 의원이 원내대표 퇴임사에서 ‘헌법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위헌성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는 시절 사사건건 정부와 당론에 각을 세웠다. 유 의원은 청와대의 사드 공론화 반대 의사에도 ‘사드 의총’을 강행했고,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규정하며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웠다. 5월에는 사퇴문제로 불거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에 국회법 개정안을 함께 묶어 처리하는 등 정부와 여당이 챙겨야 할 국정에 혼란과 분란만 키웠다.
그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일성으로 중부담 중복지를 외쳤다. 이는 줄기차게 북지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야당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다. 복지병으로 재정파탄이 난 유럽을 보면서도 말이다.
뿐만 아니다. 여당 내 사회적경제법의 최초 발의자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이번 대북확성기 방송을 놓고 벌인 일쯤이야 지극히 ‘유승민스러운’ 해프닝이기도 하겠다. 그래도 여전히 안쓰러운 건 그가 집권여당의 정책과 국회 대책을 지휘했던 원내대표였을 뿐 아니라 현직 국회의원이고 또 4선 국회의원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