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공식 선언함에 따라 정부와 노동계, 경제계의 힘겨운 노력으로 도출된 사회적 합의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 산업부 김세헌 기자 |
한국노총이 이번에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공언하며 문제로 제기한 것은 5대 법안의 내용에 있는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이다.
정부가 내놓은 양대 지침 중 '일반 해고'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외에 업무저성과자의 해고를 가능케 하는 장치다.
내용을 살펴보면 해고의 절차를 비교적 상세하게 정의하고 있다. 해고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업무능력 부족이 해고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했다.
해고의 정당성 판단과 관련해서는 평가제도 설계 단계에서 근로자 등의 참여를 권고했으며 타당성 확보에 필요한 '계량평가'와 '절대평가' 방식을 통해 객관성을 높이는 방식을 제시했다.
또 평가결과가 낮을 경우 교육훈련과 배치전환 등의 개선 기회를 줘야 하며, 이후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해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취업규칙 변경'은 사용자 권한을 강화한 지침으로 볼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피크제와 같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는 변경의 효력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어 사용자의 해석상에 따른 문제 발생의 소지가 있는 있어 노동계는 반발해 왔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양대 지침 초안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노사정위 탈퇴까지 거론하며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지금도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속 기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인데, 일반해고를 통해 쉬운 해고까지 가능해지면 노동조건은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게 한국노총의 주장이다.
한국노총이 이날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을 논의했지만 최종적인 파기는 오는 19일까지 연기됐다. 이들은 양대 지침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다음 주 결국 대타협 파기가 선언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계와 충분한 협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나 원점으로 돌아가 재논의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향후 양측의 논의 과정에서 절충점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을 점쳐진다.
▲ 11일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노사정 대타협 파기 및 노사정위 탈퇴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김동만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
특히 정부의 초안도 해고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노동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것인 만큼 기존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를 이어갈 것을 주문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계도 한국노총의 대타협 파기 선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속히 거두어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의 지침 철회를 조건으로 위협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노사정 대타협이 전면 백지화될 위기에 놓이면서 여론과 각계각층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양대 지침을 밀어붙이고 이에 반발하는 노동계가 총파업과 반대 시위 등으로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서게 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갈등과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늘어나는 가계 부채와 한계 기업의 증가 등 국내 불안 요인에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제의 불안, 저유가와 신흥국 위기 등 해외 악재들이 겹치게 되면서 현재 국가 경제는 낙관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노동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가중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 하다’는 시선이 대체적이다.
일각에선 '9·15 대타협'은 노사가 각자의 진영 내 반발을 무릅쓰고 어렵게 합의한 소중한 조항들이 많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데 지금 이 사회적 대타협을 무산시키고 더 큰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지금의 현실에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화의 길은 아직도 열려 있다. 노사정 모두가 다시 머리를 맞대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거듭 상기해야 할 때다. 앞으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지금의 날선 대치를 뒤고 하고 진중한 대화를 통한 대타협이 다시한번 도출되길 기대해본다. [미디어펜=김세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