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당-민노총도 그쪽…정운찬 등 지식인도 대부분
▲ 조우석 주필
며칠 전 한겨레를 필두로 ‘미디어오늘’ ‘미디어스’‘PD저널’등 거의 모든 좌파 매체가 필자를 겨냥해 공격을 감행해 왔다. 대중에겐 우상이고 그들에겐 거룩한 스승인 신영복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방해 공작이다.
왜 그를‘골수 좌익’내지 ‘위장 지식인’으로 규정하느냐는 아우성인데, 그건 아름답게 포장된 신영복 이미지를 파괴하는 내 작업이 그만큼 저들에게 머리 아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신영복 때리기 제3탄을 쓰기로 나는 작정했다. 그건 정당한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을 겁박하고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압박에 굴할 순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점점 더 분명해지는 건 한국의 전체적인 지식상황이 ‘좌파 전체주의’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좌파가 지식정보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표준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과 말에는 재갈을 물리려든다. 이 글은 그런 좌파의 갑질에 대한 의연한 거부의 몸짓이다.
사람 길들이려는 ‘좌파 전체주의’의 갑질
제3탄에서는 신영복은 물론, 그런 류의 종북사범 위선자를 추앙하는 이 땅의 허깨비 리버럴리스트 그룹 모두와 여기에 덩달아 춤추는 대중까지 모두 언급하려 한다. 밝히지만 신영복에 대한 사실관계 규명은 이미 끝났다. 19일 존경하는 양동안 교수가 미디어펜에 쓴 글 ‘복면지성 신영복의 두 얼굴 실체 들여다보니’ 때문이다.
그동안 신영복 자신의 입으로 떠들었던 인터뷰 자료를 모아놓고 보니 그는 전향한 적이 없는 영락없는 종북좌파의 원조다. NL(민족해방)노선의 원조이자, 몸통이 정확하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데, 내 눈에 그는 ‘화석화된 인간’이다.
즉 1960년대 어디 쯤에서 생각이 딱 멈춘 게 신영복인데, 그점에서 지적-정서적 장애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그가 뱉어낸 온갖 감상적 언어의 포장을 뜯어내고 보니 신영복이란 인간의 멘탈리티가 실로 아찔하다는 게 양 교수의 글로 확인됐다.
일테면 그는“민족공동체의 전략적 사고” 어쩌고를 말했지만, 그거야말로 우리민족끼리의 NL(민족해방)정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말 깜짝 놀랐던 것은 따로 있었는데, 이른바 ‘부르주와 민주주의 타령’을 늘어놓는 대목이었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이해하는 민주담론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포기하는 것…”운운(『진보평론』 제3호 (2000년 봄호). 쉽게 말하자. 이 무슨 헛소리인가? 그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가치에 대한 부정이다. 상식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란 용어로 부르며 폄하해 왔다.
대신 자기들이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주의를 인민 민주주의 또는 통진당 이석기 류의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왔다. 이런 실체를 너끈히 꿰고 있는 한 언론사 후배 기자는 내게 이런 통렬한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는데, 그게 정답이다.
“육사 교수란 위인이 간첩질을 하고, 그 대가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반성은커녕 인문학 어쩌구를 떠든다는 게 얼마나 낯간지럽습니까? 그걸 모르는 대중들이 추모를 한다는 판이 걱정입니다. 좌파야 뭐 그렇다고 쳐도 그걸 부추기는 이 나라의 언론은 또 뭡니까?”
▲ 신영복은 전향한 적이 없는 영락없는 종북좌파의 원조다. NL(민족해방)노선의 원조이자, 몸통이 정확하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분명해지는 건 한국의 전체적인 지식상황이 ‘좌파 전체주의’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좌파가 지식정보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표준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과 말에는 재갈을 물리려든다./사진=연합뉴스 |
신영복 따위를 추앙하는 지식사회가 문제다
신영복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실은 그런 그를 추앙하는 지식사회와 대한민국의 아찔한 위기상황을 직시하자는 제안이 이번 글의 포인트다. 일테면 신영복은 김근태와 장명국 등을 포섭한 장본인이니 1960년대 서울상대 이념서클에서 좌익 두목급이었다. 그런 신영복을 사숙 내지 존경한다는 위인들이 우리 주변에 왜 그리 많은가?
바로 그게 대한민국의 헌법가치를 허물어 뜨리고, 건전한 체제수호 세력을 좀먹고 있다. 신영복 류가 퍼트린 ‘배신의 정신’, ‘배신의 DNA’ 에 함몰된 경우, 즉 신영복에게 자발적으로 포섭된 사람이 너무도 수두룩한데, 일테면 정운찬 전 총리가 그런 경우다.
서울대 총장 시절 그는 신입생 입학식에 신영복을 초청해 연설을 맡겼다. 신영복은 “이상에 따라 살라”고 멋진 훈시를 했다는데. 그가 말한 이상이란 게 대체 무얼까? 지금도 입만 열면 “우리 영복이 형”이라고 말한다는 국회의원 김문수도 은근히 걱정이다. 그는 아직도 운동권 껍질을 다 못 벗었다. 또 있다.
이번 빈소나 영결식에 참석하여 신영복의 가르침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국회의원 안철수-도종환-이인영-박원석-노회찬,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충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전 인권위원장 안경환, 소설가 공지영 등도 결코 멀쩡하지 않다.
특정인을 지목해 망신을 주자는 게 아니다. ‘신영복 DNA’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에 스며들어 있고, 그게 건국과 부국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현대사를 폄하하는 힘으로 작동된다. 명쾌한 얘기다. 일테면 ‘더불어’식의 공존의 논리는 경제학의 경우 경제민주화로 구체화된다.
헌법 119조 제2항에 그게 명문화된 게 1987년이다. 그렇다면 신영복이 출소하기 훨씬 전부터 이 나라는 그를 환영하고 떠받들 준비를 마치고 있던 셈일까? 때문에 신영복 문제는 그 개인을 넘어 한국의 지식사회와 시민사회 문화 전반의 건강성을 묻는 차원의 일이다. 자명한 얘기다. 지금도 한국경제를 망치는 게 평등과 분배정의, 균형발전, 동반성장을 들먹이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던가?
아직도 여전한 좌파들의 NL 노선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 참석해 운구행렬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걸 앞장서 주창해 온 사람이 전 서울대 상대 교수 변형윤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4·19 당시 교수 데모에 상대 교수로 유일하게 참여했다는 경력이 훈장처럼 따라 붙는 그는 1980년대 종속이론 소개도 주도했다. 때문에 정운찬의 스승인 변형윤 경제학과,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대필해 준 박현채의 이른바 민족경제론과는 오십보백보요, 한 끗발 차이다.
모두 ‘배신의 정신’, ‘배신의 DNA’다. 그런 신영복 류의 눈에 한국사회는 “제국주의 미국에 종속된 반봉건 사회”(통진당을 해산시킨 헌재 결정문에 등장하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런 낡은 인식을 생전의 신영복은 “북한은 미국질서의 중하위권에 종속된 한국처럼 되어선 안된다”고 자못 근엄하게 말했다.
고백하자. 그게 1980년대 학계의 화두인양 등장했고, 말도 안 되는 사회구성체 논쟁 그리고 체제변혁론으로 끓어 올랐다. 학생운동권에서 NL-PD 논쟁을 벌이더니 지금도 민노총에서도 그 짓을 반복한다. 뿐인가? 여의도 정치판 특히 친노세력은 그걸로 뭉친 집단인데, 무서운 NL 노선은 2000년대 지금도 살아남아 맹렬히 작동 중이다.
그런 19세기적 낡은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知的) 장애를 가진 이들, 허위의식에 빠져 관념의 사치를 즐기는 이들이 신영복-변형윤-박현채뿐이랴? 내가 꼽는 좌파 몸통 삼인방인 백낙청-리영희-조정래 말고도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의 태두(泰斗) 김용섭(전 연세대 교수), 현대사 왜곡에 앞장선 강만길(전 고려대 교수)도 모두 그쪽이다.
그런 게 개발연대 한국사회의 위대한 성취를 바로 못 보게 만들고, 뒤로 가는 대한민국을 재촉한다는 점을 재삼 확인해 둔다. 때문에 신영복 띄우기에 몰두하는 이 나라의 기형적 사회 풍토란 거의 망조(亡兆)에 다름 아니며, 정화되어야 할 영역이라는 게 굽힐 수 없는 내 판단이다.
글의 마무리인데, 5~6년 전 신영복과 결별했다는 출판사 대표는 내게 두 가지 새 사실을 전했다. 첫째 통혁당 사건 당시 무기형으로 감형 시켜준 것은 뜻밖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이다. 신영복의 선친이 한학(漢學)에도 밝았던 교장 선생 출신인데, 발이 넓었던 그가 대구사범 출신 교육자 등의 네트워크를 동원해 아들의 구명운동에 나섰던 탓이다.
그걸 신영복도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에 대한 욕만은 삼갔다고 한다. 둘째 신영복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았다는 지난 번 내 글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출판사 대표, 그가 해줬다. 신영복과 내왕이 잦았던 그에 따르면, 그는 서울 목동에 오래 살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든 셈이다. 그 점 유감인데, 실은 그가 지적을 해주기기 전날 미심쩍었던 그 대목을 내 스스로 솎아냈음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신영복은 더 검증되어야 옳고, 신영복 신화란 것도 명백히 허위이고 조작이라는 판단엔 변함없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