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워치가 올해 1월 창립 2주년을 맞아,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기념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의 소비자는 정부 실패로 피해를 보고 있으며 현재의 정부 정책 아래에서는 좋은 창업이나 창조경제는 공염불”이라고 입을 모았다. 컨슈머워치는 지난 2년간 소비자 입장에서 법률과 정책을 감시해온 소비자단체다. 컨슈머워치 2주년 세미나는 김진국 컨슈머워치 대표의 개회사 및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의 축사,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의 사회로 시작했다. 좌 교수는 서두에서 “지금은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정치 중심의 경제가 되었다”면서 “경제의 정치화 현상은 우려스런 수준”이라고 밝혔다.
패널로 참석한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한국 소비자 관련 경제정책의 모순은 기세등등한 영세상인 중소기업의 목소리와 미약한 소비자 권리/선택권 찾기의 목소리가 공존하는데 있다”면서 “소비자단체들이 소비자 이익의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이들에 대한 견제와 비판, 설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교수는 “소비자 권리가 어떤 경제적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깨닫도록 소비자의 권리 자각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래 글은 김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
소비자를 위한 경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1. 왜 소비자가 경제의 주인이어야 하나
경제란 사람들의 생산과 소비 활동의 집합체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이다. 사람들이 막고 마시고 입고, 살고, 즐기기 위해서 생산이 필요하다.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즉 생산을 하기 위해서 소비를 하는 경제가 있다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것이다.
물론 생산은 중요하다. 생산할 수 없다면 소비도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을 늘리는 것, 즉 경제성장은 늘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의 목적은 소비를 위함이어야 한다. 생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의 주인은 소비자여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의 주인은 소비자여야 한다. 생산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정책들도 궁극적으로는 생산을 확장해서 소비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주어야 한다. 소비자를 희생하면서 생산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책은 소비자가 부담하는 희생이 더욱 크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또 그런 정책으로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는 생산자들/업자들은 소비자를 희생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자는 것이기 때문에 염치없고 부도덕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소비자를 희생시켜 생산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책들이 많다. 또 그런 정책을 요구하는 부도덕하고 염치없는 기업들/업자들이 많다.
2. 한국 경제는 소비자를 위한 경제인가
가. 크게 보면 한국 경제는 소비자를 위한 경제
기업의 규모와 관계 없이, 성공하는 기업들은 자기 제품을 잘 만들어 파는 곳들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망하거나 침체를 면할 수 없다. 특히 민간 경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는 사실을 생산자들/업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산자/업자들은 팔릴만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대체로’ 소비자를 위한 경제이다.
필자가 ‘대체로’ 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는 그렇지 않은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경제의 실질적 내용은 소비자 지향적이지만 정치적 행정적으로 결정되는 경제정책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다.
▲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이나 제도들은 대부분 규제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규제들로부터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규제영향평가가 유용한 수단이다. 규제들로 인해서 소비자와 생산자 각각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이익이 반영된다./사진=미디어펜 |
나. 소비자의 이익을 침탈하는 규제와 정책들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란 생산을 풍부히 해서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아지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외 개방 정책이다. 개방은 외국의 좋은 제품이 낮은 가격에 시장에 나오게 만들어서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인다. 또 국내의 생산자들을 자극해서 제품의 질 향상,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정책들이 개방에 적대적이다. 많은 관세 비관세 장벽들이 저렴하고 좋은 제품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 덕분에 국내의 생산자/업자들은 단기적 이익을 누리지만 그 대가로 소비자들은 높은 값을 치러야 한다. 지난 50년간 개방의 폭이 크고 넓어졌지만 아직도 생산자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폐쇄적 정책이 많이 남아있다.
새로운 생산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정책들도 소비자에게 해롭다. 은행·자동차·항공사· 방송 통신 등 많은 분야들에서 새로운 기업의 신규진입을 막고 있다. 명분은 여러 가지 이지만 결국은 기존 업체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함이고, 소비자들의 이익을 해친다.
이명박 정부 중반 이후 경제정책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것도 소비자에게 해로운 정책들의 집합이다. 예를들어 대형마트 영업규제, 빵집 등 프랜차이즈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이 ‘약자’보호를 명분으로 더욱 약자인 소비자의 이익을 침탈해왔다.
소비자를 위한 정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조물책임법이라든가,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법률들, 불완전판매를 보완하기 위한 법률들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정책들에 의해서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미미한 효과만을 가질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정책들은 국내산업 보호, 약자 보호라는 명분 하에 생산자 보호에 치중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작 정책의 주인이야 할 소비자의 이익은 희생되어 왔다. 수단과 목적이 뒤 바뀐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3. 왜 경제정책에 소비자의 소리는 반영되지 않는가
가. 한국의 소비자는 자신의 권리에 죄의식을 가지는 듯하다
한국에서 우버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격렬했었고 결국 시위대의 그 요구는 관철되었다. 아쉽게도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국이나 영국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의 포트 로데데일, 영국의 런던 등에서는 우버 규제정책에 대해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대시위를 벌였다.
소비자로서 싸고 좋은 제품을 누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지 않는 한 경제정책에 소비자의 권리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싸고 좋은 제품을 누리고 싶은 욕구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영세상인이나 중소기업 등 소위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가 소비자로서의 권리에 우선한다. 소비자의 권리는 대기업과 대결하는 상황에서만 주장할 수 있다.
소비자단체들도 중소기업이나 전통 상인들과의 대결에서는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기업들/상인들의 이익을 우선한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운동가들이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 운동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운동의 내용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영세상인 중소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권리란 결국 영세상인이나 중소기업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경제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소비자운동가들도 혼동하고 있는 셈이다.
▲ 컨슈머워치 창립2주년 세미나 ‘소비자를 위한 경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토론하고 있는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사진=미디어펜 |
나. 반면 생산자/업자들의 목소리는 기세 등등하다
경제 정책에 대해서 당당하게 높은 목소리를 내는 쪽은 소위 약자들이다. 영세상인들, 중소기업들이 그렇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기업들 사이의 경쟁에서도 일단 약자라고 인식되면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SKT 와 CJ 헬로비전 합병에 대해서 KT와 LGU+ 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신들이 약자라는 사실을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 명분 중에는 소비자에 대한 것도 있기는 하다. 합병으로 인해서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믿을만한 비판인가. 합병으로 가격이 올라간다면 경쟁상대방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합병 대상 기업의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진 자기에게로 올테니 말이다.
경쟁상대방의 반대가 격렬할수록 소비자에게는 좋은 결과가 올 것임을 예상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간파하는 소비자는 없고, 소비자 단체도 없다. 오직 기업들/업자들의 목소리만 세상에 가득하다.
이처럼 약자라는 명분 하에 기업들/업자들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것은 한국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들/업자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경제 정책은 더욱 소비자의 이익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경제는 차츰 소비자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생산을 계속하는 경제로 타락해 갈 것이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가. 소비자의 권리 자각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
소비자의 권리가 어떤 경제적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깨달을 때에만 소비자 지향적 경제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같은 자각은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서 얻어질 수 밖에 없다.
누가 소비자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정치인, 교수, 교사, 시민단체... 기존의 어떤 세력에게서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컨슈머워치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컨슈머워치만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비자 교육을 컨슈머워치의 중요한 활동 아이템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나. 기존 소비자단체들에 대한 비판과 설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단체들이 진정 소비자의 이익을 지향하는지 의문이다. 여러 소비자 운동가들이 지향하는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의 이익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이익에 봉사한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가 마치 소비자의 의견인양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안타깝다.
소비자단체들이 소비자의 이익의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이들에 대한 견제와 비판, 설득이 필요하다.
다. 모든 정책과 입법에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해야 한다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이나 제도들은 대부분 규제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규제들로부터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규제영향평가가 유용한 수단이다. 규제들로 인해서 소비자와 생산자 각각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이익이 반영된다. 이것을 통해서 규제들이 생산자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지금도 이 제도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지만 거의 사문화되다 싶이 했다. 이것을 되살려 내야 한다. 규제영향 평가를 하지 않으면 법률이 가결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문제는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이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컨슈머워치 운영위원
▲ 소비자로서 싸고 좋은 제품을 누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지 않는 한 경제정책에 소비자의 권리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사진=미디어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