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합의 파기에 '국민 불안가중'…'네탓공방'도 눈살
[미디어펜=김세헌기자] 19일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9·15 노사정 대타협'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런 가운데 노사정 주체인 한국노총과 정부, 노사정위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한 채 서로를 향해 책임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한국노총은 김동만 위원장은 19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9·15 노사정 대타협의 파탄을 선언하고,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 발표했다. / 연합뉴스 |
한국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9·15 노사정 합의가 정부·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조각이 됐고, 완전 파기돼 무효가 됐음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소송투쟁과 총선투쟁도 불사하 뜻을 밝혔다.
이날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탈퇴가 아닌 불참으로 선을 그어 앞으로 복귀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향후 행방에 대해 예단할 순 없다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이 꼽힌다. 양대 지침으로 인해 작년 4월 한국노총이 대화 결렬을 선언했고, 이후 협상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대타협이 도출됐다.
당초 노사정은 양대 지침 논의를 올해 1월 7일 시작하기로 합의했으나, 고용노동부가 작년말 전문가 토론회에서 양대 지침 초안을 발표하며 한국노총의 반발을 샀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곧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이 노사정 파탄 선언을 결심하게 만든 단초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노사정위 대표들은 차례로 기자회견을 열어 대타협 파탄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들 대표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쁜 모습이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선 정부의 조급한 노동개혁 추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5대 개혁 입법 조속 처리를 위해 양대 지침을 내세워 이번 사태를 부채질한 정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양대 지침을 노동개혁의 핵심 사안으로 부각시키는 동시에 양대 지침 추진 과정에서도 다소 조급한 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못한 행보에도 비판의 시각이 존재한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노동계 간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으나 이를 체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김 위원장은 작년 12월 말 정부의 양대 지침 초안 발표 후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를 위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한창일 당시 김 위원장의 중재 노력은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 연합뉴스 |
무엇보다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한 한국노총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큰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국내외 경기둔화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과감한 선택을 했으나 합의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외 경기는 둔화를 넘어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조선, 철강, 기계, 금융 등 각 산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청년실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정년 60세 법제화에 따른 청년들의 고용절벽 해소와 시급한 노동개혁 등 발등의 불같은 현안들이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노사정 대타협의 배경으로 작용했던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전혀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정부와의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노사정 대타협 파탄을 선언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이같은 국면에서 지금의 노사정 대타협의 위기는 노사정 대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만큼, 노사정 모두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한걸음씩 물러나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정의 불신이 깊어진 만큼 상호 의견이 대립할 때 타협하기보다는 '벼랑 끝까지 가 보자'며 상대방을 압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기풍이 고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한국노총이 이미 노사정 대화에서 발을 뺀 민주노총과 연대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편 경영계는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 불참 선언에 대해 이를 속히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의 고용 창출과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논의하는 노사정위는 민생과 직결된 회의체로 한국노총은 근로자와 구직자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대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성명을 내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5법과 양대 지침에 기업에 부담이 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경제계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서 "노동계도 노사정대타협 파기 선언을 철회하고 노사정 대화에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