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26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청년, 그들은 왜 보수가 되었는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우파 청년들에게 붙는 꼬리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예전엔 ‘한나라당 알바’라 불렸고, 이제는 ‘일베충’이라는 단어가 이들을 따라다닌다. ‘보수’임을 선언하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자처하는 청년들은 점점 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자유경제원은 ‘보수’를 선언한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했다.
발제자로 나선 우원재 자유기고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우파 기자, 칼럼니스트, 논객들이 ‘너 혹시 일베하니?’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는다”며 “편집증 중증 환자를 연상케 하는, 정말로 웃기는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좌편향 된 사회가 형성한 이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하루빨리 허물어야, 이에 대한 반작용인 일베라는 ‘극우’도 허물어진다”고 강조했다. 결국 일베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젊은 보수들을 일베로 매도하며 일베포비아를 주도하는 좌성향 여론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젊은 보수들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인정받도록 하면 일베 문제는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 글은 우원재 자유기고가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우원재 자유기고가 |
청년, 그들은 왜 보수가 되었는가
- 젊은 보수들이 등장한 계기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되고 있는 일베에 관하여 -
“혹시 일베하세요?” 보수우파적 주장을 자주 어필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좌경화된 온라인 주류 여론과 다른 뉘앙스의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꼬리표가 달리는 사회분위기가 참으로 불편했다. 자꾸 물어대길래,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 하는 마음에 들어가봤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일베라는 사회적 터부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한나라당 알바’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우익에 속하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항상 소수자의 포지션에 놓여있었다. 소수자 집단에게는 언제나 레이블링이 따라 붙는다. 우익은 곧 나이 많은 사람들, 부자 기득권들과 연결된다. 아주 잘못된 편견이다.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 연령이나 소득과 같은 요소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저 ‘좋은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의 정치철학에 달려있는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되묻는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보수일 수 있느냐”. 마치 돌연변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 민주당을 지지하고, 진보 여론에 동참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젊은 보수’라는 이 이해할 수 없는 돌연변이 집단을 설명할 근거로 ‘한나라당 알바’를 이야기했고, 요즘은 ‘일베충’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사회에서 젊은 보수가 된다는 것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 된다는 것이고,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뜻이다.
왜 젊은 보수들이 늘어나는가?
그렇다면 젊은 보수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보수적 색채를 띤 젊은이는 비정상으로 매도되는 이 사회에서, 굳이 여기에 맞서며 목소리를 내는 레지스탕스들이 자꾸 튀어나오는 이유가 뭘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인간의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보수주의의 원류 정신을 얻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먼저 에드먼드 버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에드먼드 버크는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작한 프랑스 혁명이 광기와 폭력과 악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그래서 버크가 제시한 보수주의, 그 가장 깊은 곳에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경계가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언제든지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이며, 악의 유혹에 약하고, 어리석기까지 하다. 즉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사람들이 정의라 굳게 믿는 것을 통해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려 하는 순간을 가장 경계한다. 사회의 개선은 인류가 오랜 시간 이성을 통해 쌓아 올린 사회구조와 법치주의를 통해 천천히,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모 개그 TV 프로그램은 부엉이로 분장한 개그맨을 출연시켰다가 일베 소리를 듣고 사죄를 요구받았다. 영화 ‘연평해전’이 한창 뜰 때, 엔딩크레딧의 후원자 목록에 ‘일벤저스’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연평해전은 ‘일베충의 영화’가 되어버렸다./사진=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오늘날 한국의 젊은 보수들은 에드먼드 버크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정치적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광우병 사태’라는 중대한 사건을 목도한 것이다. 끓어오르는 혈기에 시위에 직접 참가한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TV를 통해 시위를 바라본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후 광우병 촛불시위가 얼마나 터무니 없었던 것인가를 깨닫고 나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던 에드먼드 버크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후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광우병 사태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닥, 그 불완전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젊은이들은 세월호 시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시위참가자들 사이에서 폭력이 등장한다. 젊은 보수들은 감정적인 사람들이 정의감으로 한데 뭉치면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더욱이 그 중심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선동이 있다는 사실에 이를 간다.
즉, 엄밀히 말하면 젊은 보수들은 시장자유주의 등과 같은 우익적 가치관에 공감해서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목격함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에드먼드 버크의 원류에 가까운 보수주의자가 되었고, 또 진보진영의 감성정치에 대항하고자 우익의 스탠스에 들어온 것이다. 소위 ‘국민미개론’ 이 유독 젊은 보수 사이에서 큰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이름으로 선동을 하는 전교조 교사들, 효순이 미선이를 이용해 불붙은 반미시위, 뻥으로 시작된 광우병 사태, 천안함, 세월호 등등.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동과 폭력시위 등을 바라보며 군중들이 부르짖는 '그들만의 정의’를 경계하게 된 젊은 보수들은 나름 확고한 철학을 얻었다.
그런데 이 젊은 보수들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을 때 돌아온 것은, 사회의 억압이었다.
전체주의가 낳은 괴물, 일베
386은 사회를 좌편향시켰다. 인터넷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성에 호소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넷좌익의 주장은 전염병처럼 쉽게 번져나간다. 아무 논리가 없이 무조건 반정부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부라는 존재는 본인 삶 모든 문제의 제일원인으로 탓하기 딱 좋은 제물이다. 좌성향 목소리가 창궐한 인터넷은 정치적 가치관이 다른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다섯 명이 모였는데 네 명이 똑같은 의견을 내면, 다른 생각을 지닌 한 명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주위 사람들이 본인의 의견에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면, 아무리 타당한 의견이라도 스스로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젊은 보수의 목소리는 침묵의 나선 속에서 오랫동안 숨죽여왔고,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 기독교도들이 카타콤으로 숨어들었듯, 보수는 인터넷의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일베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 홍보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치킨을 들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린 모 프랜차이즈 치킨 회사는 불매운동 대상이 되었다. 해당 치킨 회사의 점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베 취급당하며 수익 손실을 봐야 했다. 사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11일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지도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인터넷 하위문화의 특성상,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깨부수는 일탈행위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기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소수자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니까. 패륜문화라 지탄받는 일베의 반사회적 놀이문화는 그들이 음지 속에 숨어듦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격화된 문화를 공유하는 일베라는 집단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젊은 보수들로서는 그들을 부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위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베와 관련된 모든 것에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현하기 전에, 무엇이 일베를 만들었는지 생각하고 이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문제를 배척하고 부정하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일베를 만든 것이 보수에 대한 전체주의적 억압이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오히려 일베라는 악마적 아이콘을 이용하여 전체주의적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일베포비아, 편집증을 앓는 사회
SNS에 경상도 사투리를 쓴 연예인이 일베 의혹에 휩싸여 경위 설명에 나섰다. 모 개그 TV 프로그램은 부엉이로 분장한 개그맨을 출연시켰다가 일베 소리를 듣고 사죄를 요구받았다. 영화 ‘연평해전’이 한창 뜰 때, 엔딩크레딧의 후원자 목록에 ‘일벤저스’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연평해전은 ‘일베충의 영화’가 되어버렸다. 홍보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치킨을 들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린 모 프랜차이즈 치킨 회사는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해당 치킨 회사의 점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베 취급당하며 수익 손실을 봐야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우파 기자, 칼럼니스트, 논객들이 ‘너 혹시 일베하니?’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는다. 편집증 중증 환자를 연상케 하는, 정말로 웃기는 세상이다.
이런 일베포비아가 만들어 낸 각종 사회적 금기들이 시민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 마다 행여 본인의 말이 일베의 그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정부의 입장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라고 잡아가던 공안 시대와 지금 이 시대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단지 억압의 주체가 정부에서 군중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고 해야겠다. 단지 일베가 하는 행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성과를 비판할 자유를 잃었고, 촛불시위의 불합리성에 대해 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겁을 먹게 되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말, 생각, 행동의 자유까지 억압받고 있다.
▲ “혹시 일베하세요?” 보수우파적 주장을 자주 어필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좌경화된 온라인 주류 여론과 다른 뉘앙스의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꼬리표가 달리는 사회분위기가 참으로 불편하다./사진=일베저장소 |
결국 악순환이다. 일베에 대한 극단적 공포와 혐오, 이른바 ‘일베포비아’는 젊은 보수와 일베가 더욱 더 음지로 들어가게 만들고, 더욱 더 과격화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는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 해답이다
이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날이 지날수록 심각해지는 이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진부할 정도로 자주 들어온 ‘똘레랑스’ 정신이다. 진보든 보수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는 말이다. 보수라는 집단을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하고, 흉악한 존재로 매도하는 사회는 일베와 같은 과격한 반작용을 부추길 뿐이다. 좌편향 된 사회가 형성한 이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하루빨리 허물어야, 이에 대한 반작용인 일베라는 ‘극우’도 허물어진다. 결국 일베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젊은 보수들을 일베로 매도하며 일베포비아를 주도하는 좌성향 여론에 있다는 말이다. 젊은 보수들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인정받도록 하면 이 문제는 점차 완화될 것이다. /우원재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