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더불어민주당의 신기남·노영민 의원에게는 내심 억울한 마음도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최근 이른바 ‘갑질 논란’이나 ‘시집 강매논란’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총선 공천 배제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이제 그들에게 ‘남의 일’이 된 것이다. 그들 마음엔 ‘만약 총선이 목전에 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더 심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태연히 배지를 달고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의 억울한 마음이 응답을 받은 것인지 당 내부에선 신 의원과 노 의원에 대한 구명 움직임이 나왔다. 김성곤 의원은 지난 27일부터 당내 의원들로부터 탄원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신기남·노영민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탄원서에는 “징계의 정도가 사실상 출마를 봉쇄하는, 현역 의원에게는 정치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것” “지나치게 가혹한 판결” 등의 표현이 들어 있었다.
▲ '갑질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더불어민주당 신기남·노영민 의원에 대한 징계가 과하다며 당 내부에서 탄원서 서명이 시작됐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당내의 또 다른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사진=연합뉴스 |
유행처럼 번져나간 서명운동에 제동을 건 것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을지로위원회 행사에서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할 때 정치인이 저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대해 굉장히 단호해야 한다”며 “(징계 받은 의원들을 구제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는) 이런 식의 행위를 취할 것 같으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철희 뉴파티위원장 또한 “이런 온정주의(구명운동)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당의 혁신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김성곤 의원은 탄원서 작업을 중단했다.
이번 해프닝은 우리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가슴에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서 활약하는 국회의원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바깥의 평범한 국민들 눈에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만한 ‘갑질’까지 태연히 옹호할 정도로 저들의 눈은 국회의사당 안에 갇혀버렸다는 슬픈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선거를 목전에 앞두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선거가 없던 2015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흐지부지 넘어갔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국 정치가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와 같은 ‘우리가 남이가?’ 정신에 있지 않았던가.
원칙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징계가 공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계산기를 두드린 그때 그들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의 위에 군림하며 유권자를 기만하려는 또 다른 ‘갑’이었다.
갑질 논란으로 징계까지 빚은 의원들에 대해 ‘또 다른 갑질’로 짬짜미식 봐주기를 하려 했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움직임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 밖에 없다. 민주주의 체제는 그 심판을 ‘선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