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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흙수저·노력충…현실도피 청년들의 핑계다

2016-02-07 10:2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우원재 자유기고가

헬조선, 게으른 청년들의 핑계거리일 뿐

모두가 즐기는 절망놀이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유행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너도 나도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며 처지를 한탄한다. 절망하는 것이 일종의 유머 코드이자 놀이 문화가 되었다. 우리 모두 틀려먹었다며 아직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 이들이 서로를 깎아내린다.

'흙수저’라는 단어로 스스로에게 하층민의 계급을 부여한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동빛이나 흙빛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결코 금이나 은이 될 수 없다. 이미 스스로를 동과 흙의 운명 속에 가뒀기에. 그들 말대로 수저는 입에 물고서 태어나는 것이니까. 동수저와 흙수저의 설움이 동력이 되어, 자식에게는 은수저를 물려주겠다는 욕심이라도 생기면 좋으련만, 이들에게 '헬조선’이라는 가상의 나라는 주어진 계급에 따라 살아가는 곳이기에 그런 욕심을 품지도 못한다. 죽창을 들자며 우스갯소리를 해대지만, 정작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의지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청년들의 능동성은 인터넷 댓글창에 배설되는 것이 고작이다.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환호한다. 암울한 경제전망, 높은 실업률 등 각박한 현실을 증명하는 수치와 데이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통계에는 괜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 나라가 헬조선이어야만 괜히 마음이 놓인다. 사실은 대한민국이 살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진국 반열에 드는 나라라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 된다.

절망하는 것은 인터넷이 만든 일종의 놀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 놀이를 망치려드는 목소리, 사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나름 잘 사는 좋은 나라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공격당한다.

나머지 200여개 국가들은?

2015년 기준 대한민국의 GDP는 세계 11위, 1인당 GDP는 2만 8천 달러로 세계 중상위권에 속한다. 제조업 경쟁력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프라, 성장동력, 환경 모두 세계 20위 안에 속하는 우수한 사회 제반을 갖춘 나라다. 선진 경제국(Advanced Economics)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G20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229개에 달하는 전 세계 국가에서 어떤 잣대를 들어도 최소 상위 20위 안에는 드는 대한민국. 이 말인 즉슨, 전 인류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상위 10%의 행운아들인 셈이다. 그런데도 힘들어 죽겠다고, '탈조선’, 즉 이민을 하겠다며 시끌시끌하다. 나머지 90%의 외국인들이 보면 얼마나 황당할까.

   
▲ 우리는 정말 헬조선, 흙수저론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자유경제원은 인권이라고는 없는 진짜 ‘지옥’을 경험하고 출신성분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었던 북한에 살았던 탈북 학생들과 함께 2015년 12월 28일 ‘헬조선, 흙수저론의 허구’에 대해 논하는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사진=자유경제원

도대체 멀쩡한 이 나라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언제나 낙관적인 부분보다는 비관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며 '불평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행복이란 주관적인 감정이다. 다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못 가졌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 세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모두가 자꾸 불행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이 나라가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법이다. 이제는 유행이 되어버린 자조, 이 '헬조선 붐’을 멈춰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거짓된 자국비하가 근거없는 절망을 전파하고, 강요하고 있다. 멀쩡하게 먹고 살 만한 사람들조차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의해 피해의식에 젖어들고 있다. 그 경향이 가장 심한 집단이 2030 세대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기에,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청년들이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이야기 한다. 웃기는 소리다.

헬조선, 게으른 청년들의 핑계거리

사실 그렇지 않은가? 청년들이 힘들다고 값비싼 스마트폰으로 SNS에 불만을 토로하는 그 순간에도, 수많은 노인들이 차디찬 거리를 누비며 폐지를 줍고 다닌다. 미안하지만 절대적인 고통량만 놓고 봤을 때 '사회적 약자’들은 청년들이 아니다. 청년들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냥 냉정하게 비교해보자는 거다. 힘든 그 순간에도 나름 누릴 거 누리며 세계에서 독보적인 대한민국 청춘 특유의 화려한 소비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서구문화권의 경우 성인이 된 시점에 대부분의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대고, 집세를 내고, 생활비를 마련한다. 청년들의 소비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후 취직을 해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려가며 서서히 그 소비수준이 올라간다.

한국은 어떤가? 그 반대다. 수많은 청년들이 부모 돈으로 대학 다니고 용돈까지 타쓰며 노동 없는 소비를 즐긴다. 최신형 스마트폰, 유행하는 패션, 적당한 문화생활과 여행, 심지어는 술집, 클럽, 모텔에 부모의 돈을 탕진하는 청년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4명만이 아르바이트 같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아무 노동없이 부모에게 기대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이런데 지옥이니 뭐니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노력 그 자체를 폄하하는 단어, '노오력충’

'헬조선’이나 '흙수저’라는 단어의 사용을 비판하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노력충’이라는 비꼼이다. “노력만 하면 뭐든지 다 해결된다는 말이지?”라며 상대의 주장을 노력만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폄하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절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오오력해도 안 됩니다”라는 거다. 소위 “수저 이동”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니까 다 함께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탓하며 절망하잔다.

(노력을 해도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고, 오히려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는 한국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좋다, 구조적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것 아닌가? 결국 사회 탓, 나라 탓을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헬조선을 외치고 다니는 청년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노오오력’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 '노오오력’의 주체는 항상 타자가 되는가? 사회 개선을 위해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청년의 수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헬조선의 근거로 항상 청년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이에 대한 해결노력은 기성세대에게 떠넘기는가?

   
▲ 사진은 헬조선 페이지의 배너. 19세기말 동학혁명에서나 등장했던 구호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죽창”과 “평등”의 뜻이 자신의 소비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저렇게 응징하겠다는 의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사진=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청년여론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회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힘들다면, 여기에는 구조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반드시 개인적인 원인도 존재한다. 정신적 혹은 육체적 나태와 같이 개인별로 문제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은 철저히 거부하고, 자꾸 구조 탓만 하며 스스로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학대하고 있는가. 내 탓은 하나도 없고, 전부 사회 탓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을 하면 또 “너 노력충이지? 그래 노오오력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거지?” 따위의 말장난으로 비겁하게 도망친다. 말장난과 냉소, 자조의 무한반복이다.

거시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와, 미시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개인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둘 다 같이 시도해야지, 자꾸 본인 삶에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사회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지금 경쟁력 있는 진로를 택한 건지, 내 능력과 적성에는 맞는 건지, 내가 고칠 수 있는 단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현상유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현재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을 구르지 않으면 추락하는 것이 우리 청년들의 삶이다.

노력을 이야기하고, 헬조선을 부정하는 청년들이 많아져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런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그냥 듣기 싫다고, 젊은이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꼰대’스러운 소리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리니까. 노력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낙관을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기에, 낙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강한 청년들. 이런 청년들은 생각보다 많다. 독립을 빨리하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며 조금씩 삶의 성취를 이뤄본 청년들은 대개 성실하게 흘린 땀의 가치를 믿고,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인터넷에서 헬조선이라며 떠들고 있는 일부 청년들이 자꾸 청년 전체를 대변하여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도피를 그만둘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들 혐오하는 '노오력'이란 걸 하면,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조금씩이나마 개선시키고, 전진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는 명백한 진리다. 그런데 수많은 청년들이 애써 이 진리를 부정하려고 한다. 비겁한 현실도피다. 사회 전체가 이를 부정하면 진짜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원동력조차 잃게 된다. “지금 힘들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거야”라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주장은 “이게 다 너희들이 노력을 안 해서 그래”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사실은 다들 알고 있으면서 애써 이를 동일시하며 현실로부터 귀를 막고 눈을 감으려 든다. 헬조선이라는 말, 흙수저라는 말, 그리고 노력충 혐오 정서는 좋은 현실도피 핑계거리니까.

우리가 지옥 같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은 서로를 자꾸 지옥으로 끌어내리려 하는 이 못된 습성이 아닐까. 긍정적인 변화는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실에 충실할 때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리에 주저앉아 현실을 저주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만하면 살 만한 나라다. 이제 불평은 그만두고, 앞으로 나아가자. 지금 내 앞에 고난이 있다면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우원재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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