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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비계덩어리’와 법규 위반한 앰뷸런스

2013-12-05 12:02 |

어느 한겨울 꼭두새벽, 19세기 보불전쟁(프러시아와 프랑스간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북부도시 루앙. 엄동설한에 주민들이 대절한 마차 한 대가 서둘러 출발했다.

마차 안에는 귀족부부, 지방의회 의원부부, 포도주 도매상부부, 수녀 2명, 정치인 한명, 또 비계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길거리여인이 앉아있다.
비계덩어리 여인은 존재 그 자체로 마차안의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이들은 전쟁에서 패한 직후여서 아무런 준비없이 출발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 모두가 먹는 문제로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런데 모두가 백안시하는 비계덩어리가 이들의 허기와 갈증을 해소해주는 기적의 선물을 준비했다. 포도주와 고기를 꺼낸 것이다. 을씨년스럽던 마차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하느님의 '맛나'가 떨어진 것처럼 환해진다. 비계덩어리의 포도주와 고기는 승객들을 추위와 허기에서 구해낸 소중한 음식이었다.

마차는 중간 기착지에 도달했다.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악재가 또다시 나타났다. 다시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할 마차가 계속 멈춰버린 것이다. 이튿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달리지 못했다. 여행 허가증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 장교가 이들의 출발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발목을 잡고 있는 이유는 비계덩어리와의 잠자리였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프러시아 장교의 요구에 대해 분노했다. 야만적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이 장교는 마차안 사람들의 운명을 쥐고 있었다. 점령자에게 거역할 수 없었다. 수녀들은 ‘신은 순수한 목적에서 행한 죄악을 용서하리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비계덩어리는 마침내 결단을 내려 프러시아 장교를 찾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마차는 자유의 땅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마차 안에 탄 사람들은 수치심에 떨며 황급히 오른 이 비계덩어리 희생양을 철저히 외면했다. 불결한 존재와의 접촉을 피하려는 듯 안간힘을 썼다. 어느 누구도 이 가련한 여인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적군 장교의 노리개가 됐던 이 여인은 허기와 수치, 그리고 분노로 눈물을 흘렸다.

귀족은 물론이요, 천박한 상인, 심지어 사랑을 베풀어야 할 수녀마저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음식과 몸을 바친 비계덩어리를 짓밟았다.

프랑스의 모파상이 쓴 <비계덩어리>는 보불전쟁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통상 자신을 희생하며 집단의 위기를 구해낸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한 사람들 모두가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비계덩어리라는 여인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비극적이다.

국가적 부도위기에 몰렸던 1998년 외환위기 때 적지않은 대기업과 그룹 총수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희생을 통해 국가경제 회생을 위해 분투했다. 삼성 등 대기업 모두가 자금난에 시달릴 때였다. 알짜기업까지 팔아서 부채를 줄이는 데 안간힘을 썼다. 30대 그룹 중 대우 쌍용 기아 진로 등 16개 그룹이 재계 무대에서 사라졌다. 단군 이래 최대 위기였다. 많은 대기업들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등을 지원받아 회생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들은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인 구조조정과 합병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들 그룹이야말로 ‘비계덩어리’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국민과 은행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노력과 사업재편, 매출극대화 등으로 살아남고, 이후 경쟁력도 지속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은 채 부실을 털어내려고 총력을 기울인 대기업들이 많다. 삼성 LG 롯데 효성 등이 대표적이다.

종합상사를 보유했던 삼성 옛 현대 LG SK 대우 효성 쌍용 등 7대 그룹 중 공중분해된 대우와 쌍용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룹이 종합상사 부실을 자율적인 구조조정과 제3자 매각을 통해 해소했다. 현대종합상사는 현대그룹 분가 과정에서 외국 기업에 매각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옛 현대가를 대표해서 현대종합상사를 사들였다.

종합상사들은 누적된 부실로 어려움을 겪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입국과 수출보국을 재계가 뒷받침하기위해 만들어진 종합상사는 그룹사 수출대행은 물론 중소기업 수출 시장개척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국가경제를 위한 수출보국에 매진하다가 온 몸에 골다공증에 걸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수출 후유증으로 부실채권이 누적됐다가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몰렸다. 삼성도 삼성물산 부실 해소에 수년이 걸렸다. 현대종합상사는 계열분리되면서 중동 기업에 매각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우와 쌍용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제3자에게 매각됐다. 효성도 부실 종합상사를 우량기업과 합병시켜 점진적으로 부실을 해소해왔다. 조석래 회장은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노력으로 회생시켜 보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부실 종합상사들은 당시 시장논리와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에 입각했다면 부도처리 했어야 했다.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종합상사를 부도처리할 경우 해당 그룹 전체에 대한 여신을 중단하고, 회수하겠다는 압박을 가했다. 그룹을 해체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구조조정에 성공한 삼성 LG 효성 등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종합상사 부실 문제가 15년만에 다시금 드러나고 이중 효성이 유독 국세청 세무조사에 이어 검찰 수사까지 받는 것은 안타깝다.

경제위기를 구한 재계 원로를 탈세범 등 죄인 취급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조석래 회장은 재계총리인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고, 한미 경협과 한일 경협 등을 주도하는 등 산업입국과 국가경쟁력 강화, 경제외교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해왔다. 단지 효성의 경영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 경제의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고민해온 재계 원로이다.

재계가 올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세무조사를 많이 받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롯데 효성 등....이중 특정 그룹만이 세무사찰에 이어 검찰 수사까지 받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칫 세간의 예측대로 특정그룹에 대한 표적수사, 과잉 세무조사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형평성 논란이 벌어지지 않게 균형잡힌 공권력의 행사가 아쉽다고 하겠다.

일부 그룹에 대한 세무사찰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과 연관이 있는 기업들이 수난을 당하는 사례가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은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람을 살리는 수사도 해야 하지만, 기업과 기업인을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광풍속에서 기업인을 인민재판하듯 중형에 처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 수사는 지양돼야 한다.

앰뷸런스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적시에 신속하게 이송해야 한다. 이송하는 과정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할 수 있다. 교통신호를 다 지켰다가는 환자는 치료도 못하고 사망할 가능성이 많다. 외환위기 당시의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자구노력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LG 롯데 효성 등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그룹의 자체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통법규를 다소 위반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전시였다. 전시에는 비상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국민의 도움없이 환자부터 살리다보니 지금의 잣대로 보면 일부 규정을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는 외환위기시에 이루어진 기업들의 분식회계 등에 대해서는 고해성사기간을 둬서 사면복권시켜줬다. 진보정권이 오히려 환란 당시의 대기업들의 불가피했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이해를 해준 것이다.

모파상의 ‘비계덩어리’처럼 환란 당시 국가경제와 국민들을 구해낸 대기업에 대해 이제와서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며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고, 앰뷸런스 기사까지 처벌하려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러면 위기 시에 어느 앰뷸런스 기사가 환자들을 구하려고 분투하겠는가?

글로벌 경기위축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청년실업자가 100만명이나 되는 엄동설한에 기업인들의 기를 꺾는 과잉 수사는 재고돼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인을 지나치게 엄혹하게 처벌한다면 투자와 일자리 창출, 창조경제는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의 엔진인 기업들이 ‘비계덩어리’로 취급받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미디어펜= 이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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