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현실에서 사업기회를 찾아내는 기업가, 박현주
기업가의 미래상을 밝히는 새로운 ‘샐러리맨의 신화’가 탄생했다. 1986년 동원증권에 입사, 1991년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1997년 창업에 나서 과감한 결단력, 발상의 전환, 기회의 선점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펀드로 금융시장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인물, 국내 30대 대기업 집단 오너 중 창업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는 누굴까? 그는 바로 최근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한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이다.
정치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사회, 관료들의 힘에 억눌린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어렵다. 그렇게 시들어가는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피터 드러커가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한국을 뽑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해당한다.
그래서 박현주의 등장은 신선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정치가 경제를 억압하는 관료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기업가의 롤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박현주의 성공은 기회를 만들고 준비하는 기업가의 개척정신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박현주의 스토리를 통해 규제가 중첩된 현실에서 어떻게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내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금융업의 새로운 신화 창조
‘최연소’ 지점장이던 1997년 박현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자본금 100억 원짜리 회사를 설립하여 금융시장이 어려운 시기에 창업이라는 도전적인 길에 나선 것이다.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를 시장에 내놓아 판매한지 3시간 만에 펀드 한도액을 모두 채웠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수익률 100%를 달성하였다. 2001년 1월 개방형 뮤추얼 펀드를 내놓은데 이어 7월엔 선취형 뮤추얼펀드 또한 잇따라 출시했다.
‘국내 최초’는 미래에셋이 내놓은 상품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경쟁 기업들이 유사 상품을 만들게 할 정도다. 미래에셋은 소규모의 신생 기업이었지만 대규모 자본을 요구하는 금융업에서 선제적 상품출시로 어엿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저축위주의 소극적 자산관리의 당시 시장상황에서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시작으로 남들이 꺼려하던 영역을 개척하여 시장선점, 높은 수익률로 경쟁자들을 제치며 새로운 신화창조를 이루었다.
박현주 1호 평균 수익률 85~100%라는 성공은 시작에 불과했다. 증권 시장이 대우증권, 삼성증권, 현대증권과 같은 큰 규모의 회사들이 주도하는 상황이었지만, 미래에셋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며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박현주 1호를 시작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에셋이라는 큰 금융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시너지 효과’는 박현주가 확신한 대우증권 인수의 이유다. 그리고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박현주는 자산관리, 해외투자에 강한 미래에셋과 투자은행, 리테일 부문에 강점이 있는 대우증권과의 시너지 효과를 굳게 믿었다.
해외시장 개척은 미래에셋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도전한 분야다. 미래에셋운용은 국내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법인을 설립한 뒤 인도, 미국, 브라질, 캐나다, 호주, 대만, 콜롬비아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80조 원의 운용자산 중 18조 원가량을 해외에서 직접 운영할 정도로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금융업은 돈을 투자하고 수익을 내는 업종이다. 박현주는 “기업은 투자로 먹고 사는 생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투자수익률로 승부가 결정되는 금융업이 가진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금융은 수출산업이다.” 해외부동산 투자에 나설 때 박현주가 외친 말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 성공 신화의 서막이었다. 미래에셋은 국내외 주식 투자로 사세를 키운 후 해외의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수익을 내게 되는데, 2006년 상하이 미래에셋타워를 필두로 브라질, 호주 등 8곳의 대형 부동산을 인수했다.
당시 주식시장이 붐이었던 상황에서 부동산 투자는 무모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미래에셋은 주식시장의 쏠림이 과하다는 판단에 해외 부동산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였다. 특히 미래에셋타워는 2800억 원에 인수하여 현재 1조원을 호가하고 있다. 현재 연기금 등 주요 기관과 증권사들이 해외 부동산을 적극 매입하여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 박현주의 미래에셋이 선점하여 개척한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미래에셋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갔다.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국내외 큰 규모의 금융사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국내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진출이라는 금융사들이 주저하던 것에 과감하게 진출하였다. 그리하여 해외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려 국내만의 금융사에서 벗어나 해외 유수한 금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
돌파구를 찾아내는 기업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박현주가 1991년 동원증권 중지점 지점장을 맡으면서 정한 지점훈이다. 당시 박현주는 국내 최연소 지점장이 되었는데, 이 문구만 보더라도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기업가 기질을 볼 수 있다.
1997년 7월은 박현주 인생에 전환기적인 시점이다.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을 설립함으로써 기업가 인생의 개막을 열었다. 그는 한달 후 국내 최초로 전문 자산운용회사인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하였다. 이어서 1998년 12월 ‘박현주 1호’라는 이름을 내걸고 전례 없는 돌풍을 일으킨다. 당시 ‘박현주 1호’는 85%의 투자 수익률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쾌거를 이뤘다.
박현주 1호가 등장한 1998년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투자회사에 대한 신용이 붕괴된 상태였다. 투자신탁 수탁액 400조 원 중에서 겨우 16조 원이 주식형펀드였다. 하지만 박현주 회장은 남들이 외면하는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여 길을 만들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현주 1호를 내놓은 지 3시간 만에 물량이 동났다.
돌파구는 기업가정신에 있다. 새로운 사업기회를 준비하고 도전하는 기업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명확한 목표와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결정을 통해 기회를 선점하려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현주는 금융업에서 새로운 기업가정신의 롤 모델을 제시했다.
“자본시장에서는 항상 소수 처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남들이 과민 반응할 때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그의 투자 철학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주식투자에 집중할 때 그는 주식투자에 대한 위험을 생각한다. 채권투자 붐이 일면 주식투자로 눈을 돌린다. 다수가 꺼려하는 영역에 오히려 저평가된 성장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그는 박현주 1호를 기점으로 뮤추얼 펀드시장에서 주도적인 사업자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골프장 투자는 박현주에 대한 또 하나의 성공 일화다. 2008년 8월 초 박현주는 전국 영업점 회의에서 골프회원권이 고평가된 상태라고 인식하고 골프회원권 대부분을 팔게 하였다. 실제로 이후 골프회원권 가격은 하강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골프장이 수익 악화로 침체된 2013년, 박현주는 이번엔 강원도 홍천에 골프장 하나를 열었다. 다들 의아해 할 정도였다. 해발 765m의 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였고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를 맡은 경쟁력을 갖춘 코스로 인해 골프장은 주말 이용료가 비싼 수준이었지만 미리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골프장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둔다.
도전적 기업가의 자질은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경제에 필수요건이다. 박현주와 같이 외환위기 이후 움츠러들었던 주식시장에 박현주 1호로 돌풍을 일으켰던 것이나 골프장 투자와 같은 일화를 통해 그의 기업가적 기질을 확인할 수 있다. 남들이 불확실하고 리스크를 높게 보는 영역에 오히려 기회를 찾아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박현주는 금융계의 새로운 성공방식을 제시한 기업가 정신의 대표적인 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사업기회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기회를 선점한다.” 말은 쉽지만, 성공 가능성도 낮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금융업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규제가 많은 분야로 정책리스크가 크고 불확실하여 사업기회 선점 자체가 어렵다. 박현주 1호라 불리는 뮤추얼펀드는 1998년 당시에도 등록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현주는 주식과 파생상품에 70%가량 투자하는 공격형 펀드를 만들어 뮤추얼펀드시장에서 대대적인 수익률 획득 기회의 장에 나서기로 한다.
구체적으로 당시 법으로는 뮤추얼펀드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불확실한 시기였다. 미레에셋은 투자자문업으로 활동영역이 제한되어 있었다. 박현주는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하여 자산운용회사 출범을 준비하였다. 1998년 11월 13일 금융감독위원회의 투자회사법 감독규정이 확정되면 20일 후에 뮤추얼 펀드 등록이 전면 허용될 전망이었다. 박현주는 행동에 나섰다.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의 펀드 설정규모를 300억 원 내외로 잡았다. 그리고 이미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10%를 가진 삼성증권이 자신들의 영업점에서 대행판매하기로 협의를 통해 박현주 1호 발행을 선제적으로 준비하였다.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까다롭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박현주는 규제가 풀리기 전 선제적으로 상품을 준비한다. 그는 이미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고민하고 경험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규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하며 규제가 풀릴 것에 대비하였다. 이것은 결국 기회를 선점하여 큰 수익률을 거두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박현주 1호가 출시된 이후 이를 바탕으로 2003년 첫 선을 보인 주가연계증권(ELS)과 여기서 확장된 파생연계증권(DLS) 등 여러 상품군으로 확대되었다. 박현주는 금융업에서는 가히 기회를 포착하여 사업을 확장하는 타고난 기업가라고 볼 수 있다. 기회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방식은 사업을 선점하고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기업가
박현주의 등장은 신선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정치가 경제를 억압하는 관료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기업가의 롤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박현주의 성공은 기회를 만들고 준비하는 기업가의 개척정신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자산규모 7000배, 조직규모 1200배 폭발적인 성장이라는 성공을 거둔 박현주는 대우증권을 인수하였다. 공기업인 산업은행이 우량 증권회사인 대우증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는 것은 관료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이어져 왔고 대우증권은 정치권이 결단을 내리면 언제든지 민영화할 수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큰 규모의 증권사 인수였기에 박현주는 결정전에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는 결정 후엔 주저 않고 단숨에 추진하는 성격을 가진 그가 큰 목표를 향해 고뇌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는 박현주가 확신한 대우증권 인수의 이유다. 그리고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박현주는 자산관리, 해외투자에 강한 미래에셋과 투자은행, 리테일 부문에 강점이 있는 대우증권과의 시너지 효과를 굳게 믿었다. IB분야에서 대우증권은 명실공히 업계 최고로 손꼽힌다. 미래에셋그룹은 2003년 국내 최초의 해외 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출범하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해 왔다. 여기에 대우증권의 해외법인 네트워크가 융합한다면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로의 진출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박현주는 확신하였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 이런 선배들이 어떻게 (회사를) 만들었냐고 하면 그 당시에선 불가능한 세상을 꿈꿨다는 것입니다.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려면 불가능한 꿈을, 불가능한 상상을 재무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상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박현주의 도전적 기업가정신이 느껴진다.
‘아시아 1위’ 투자금융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포부를 밝히며, 대우증권을 동경하였던 한 청년이 금융회사를 크게 일구어 오히려 대우증권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는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골드만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을 이루고자 하는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에 다시 불씨를 살려라
최근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한국경제에 도전정신 부재를 꼬집었다. 가장 모험적인 자본시장도 수익률의 0.1%차이에 일희일비하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박현주는 한국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정신에 기반한 투자의 야성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모든 것이 열악하였던 과거에 정주영 회장은 ‘해봤나?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냐’라며 도전정신을 외쳤다. 이제 한국은 과거와 다른 의미에서 열악한 상황이다. 한마디로 꽉 막힌 상황이다. 그래도 돌파구는 기업가정신에 있다. 새로운 사업기회를 준비하고 도전하는 기업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명확한 목표와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결정을 통해 기회를 선점하려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현주는 금융업에서 새로운 기업가정신의 롤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정신이 아직 꺼지지 않았으며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 '한국의기업가'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승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