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근 선문대학교 교수 |
당초 상정되었던 것보다는 조금 낮은 월 1,500원이 오른 절충안을 만들어 가결시킨 것이다. 예상대로 야당추천이사 4인이 불참한 반쪽짜리 의결이라 향후 여·야 추천 위원들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동안 수신료 인상을 반대해온 야당과 야당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일부 보수단체들 조차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아 수신료 인상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수신료 문제가 공영방송 KBS의 경영 문제를 넘어 여러 정치적 쟁점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제 겨우 한발자국 내 딛었을 뿐이다.
▲ KBS이사회가 지난 10일 월 2500원의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는 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했다. |
물론 이상적으로 본다면, KBS 수신료 인상은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공적재원을 강화하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광고를 위시한 상업적 수익이 전체 재원의 60% 가까이 되고, 또 이런 재원을 바탕으로 제작된 상업적 프로그램으로 또다시 시장에서 수익을 확대해가는 형태는 진정한 공영방송의 운영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이러저런 이유로 악화되어 온 KBS의 경영위기를 극복하는 수준의 근시안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공영방송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재원정상화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게 이상론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KBS 수신료 인상을 반대해온 가장 큰 이유는 수신료 인상분만큼 줄어들 광고수익을 종합편성채널들에게 몰아주려 한다는 이른바 ‘종편 종자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신료인상액 보다는 적은 수준이지만 KBS 광고수익을 줄이겠다고 한 것은 향후 정치적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작 KBS노조와 내부 종사자들은 광고수익을 줄이는 것을 크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체 재원을 수신료에 의존하다보면, 이른바 매출/수익증대에 따른 구성원들에 대한 성과제도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KBS 역시 법적으로는 공기업이 아니지만 다른 공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종사자 이기주의가 고착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이로 인한 불합리한 경영구조가 심화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수신료 인상분보다 줄이겠다고 하는 광고수익이 더 적다는 점은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고, 현실적으로 광고수익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솔직히 광고수익을 전체 재원의 몇% 이내로 줄인다는 논리는 예산이 증대되면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고, 때문에 실제 광고물량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때문에 KBS 1TV의 광고를 없애버렸던 1995년처럼 광고시간 절대 총량을 줄이든지 아니면 특정시간대의 광고를 없애는 등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 해도 광고영업 특성상 얼마 이하로 광고수입을 줄이는 일이 가능할지 그것도 의문이다.
본질적으로 수신료 인상 같은 공영방송 재원정상화는 국민들의 부담증가에 비례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도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정치권력과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때문에 수신료 인상은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권이나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내부문제는 물론이고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수신료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수신료 논의시스템에서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얼마 올리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공영방송 전반에 대한 합리적 논의절차를 만드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온 (가칭) ‘공영방송 수신료위원회’같은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 KBS 길환영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다음으로 어찌되었든 상업방송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공영방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KBS 그리고 KBS종사자들이 상업광고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수신료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단계적으로라도 상업적 재원 의존도를 줄여나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고, 또 합리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수신료인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일부 시민단체들 역시 정파성을 벗어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공적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되어야만 시민단체들의 공적 역할에 대한 비판과 요구가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방송에게도 공공재인 주파수 이용, 사회적 영향력 등을 근거로 공적 책무를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적 재원에 바탕을 둔 공영방송에 대한 요구보다 결코 강할 수 없고 실제 실효성도 낮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KBS의 수신료 인상은 ‘KBS를 위한, KBS만의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우리나라 미디어 생태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행위자들이 승자가 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영방송 재원 정상화인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