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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 미디어스의 배인준 EBS감사 낙인찍기 진실은

2016-03-01 16:02 | 이서영 기자 | mediapen@mediapen.com

배인준 EBS 감사

 좌파매체들이 배인준 EBS 감사에 대한 비난과 낙인찍기가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금도를 벗어난 비난과 매도, 사실왜곡이 볼썽사납다.

경향신문과 미디어스 등은 배 감사가 동아일부 논설주간과 주필 시절 쓴 칼럼들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있다. 신문사 출신으로 방송사 감사에 임명되는 게 불합리하다는 시비가 첫 번째다. 국정원 댓글 사건 옹호설,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좌파매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그가 극우인사라고 굴레를 사정없이 씌웠다. 정통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배 감사에겐 모욕적인 폄훼다. 좌파매체들의 편향된 의혹제기와 낙인찍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살펴본다.

첫째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6년 2월 17일자 'EBS 감사 후보에 배인준 씨' 보도 관련.

경향신문은 "배 전 주필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칼럼을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적극적으로 옹호했고"라고 썼다.
진실=2012년 12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옹호하는 칼럼이건, 비판하는 칼럼이건 쓴 적이 없다. 경향의 보도는 그 후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좌파매체들에게 퍼 날라졌다.

인터넷에선 경향의 이 기사가 <단독>이라고 돼 있다. 배인준 전 주필이 EBS 감사 후보가 되었다고 '최초로 세상에 알리는 특종보도'라는 뜻이다. 경향은 이어 '배 전 주필이 써왔던 극우 성향의 칼럼으로 편향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고 했다. 논란이 일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라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이 기사에는 또 "(배 전 주필이)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을 낳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칼럼을 써 왔다"는 내용이 있다.

실체적 진실=배인준 칼럼은 대한민국을 부정 폄훼하거나 북한정권에 동조 추종하는 역사교과서로 우리의 미래세대를 가르쳐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인정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그러한 내용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음은 잘못된 현실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체성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을 분명히 인정하는 교과서가 있어야 하며, 그나마 그런 시도를 한 교학사 교과서가 집단적 공격을 받아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지적이 틀렸다고 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칼럼의 중심논지를 외면하고 '친일독재 논란을 낳은 교과서를 지지하는 칼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낙인찍기에 해당한다.

둘째 미디어스의 '극우인사'·'우편향'·'이념편향적' 주장 관련.

'우편향' 주장에 대한 반론=배 감사는 언론인 시절 대한민국 정체성,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국민이라면 그를 우편향 인사, 극우 인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향유하며, 행복의 원천을 거기서 찾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매도라면 경향과 한겨레신문의 기자와 주필 논설위원들은 극좌언론인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중립적 사상과 이념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과 반인륜 공산독재체제 북한의 한 가운데가 중립적인가? 그런 중립은 있을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가치가 북한 세습 독재집단의 그것과 등가일 수는 결코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는 보수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실용적 변화를 꾀하고 공동체의 결속과 화합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진보적 유연성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심지어 북한의 반인륜 공산독재정권에 동조까지 하면서 진보인양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시대착오적이다. 꼴통좌파적 수구행태다. 불법과 폭력을 진보의 수단인양 정당화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법치의 가치에 반한다. 또 자신들의 주장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불법도 폭력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이에 반대하는 다수 국민에 대한 위해 요인이다.

그것이 사회가치로 공인받을 수 있는 진보일 수는 없다. 배 감사는 다양한 칼럼에서 이같은 논지를 폈다.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칼럼을 쓴 것이 지탄받아야 할 '우편향'이고 극우 언론인인가? 

배 감사는 대학생 때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데모로 최루탄에 맞섰다. 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탄압에 반대하며 저항하다 해직됐다. 이후 4년간 언론 밖에 있어야 했다. 김대중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언론인 중에서 가장 먼저)로 인정된 사람이다. 그는 독재에 반대하고 언론탄압에 맞섰을 뿐, 대한민국을 거역한 적은 없다. 기자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 긍정역사를 왜곡 거부하는 세력을 비판해 왔다. 이것이 우편향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누가 과연 중립인가.

배인준 칼럼이 전교조를 많이 비판했다는 데 대하여=전교조는 명실상부한 교육자들의 단체라면 스스로 솔선해서 법을 엄정하게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세대에게 "법치에 바탕을 둔 국가사회와 개인의 번영 발전 및 행복 추구"를 이끌어야 마땅하다.

전교조는 자주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배인준 칼럼은 이를 지적하고 비판했다. 모름지기 교육은 솔선수범이다. 전교조 주도세력(전체 교사가 아니라 운동을 이끄는 그룹)이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적 가치 구현의 모범을 보였는가? 그렇지 못한 일탈을 비판한 칼럼이 문제라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교조의 판결 거부 등 일탈을 옹호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중심세력이 되어도 좋은가.

좌파매체들이 배인준 EBS 감사에 대한 비난과 낙인찍기가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사진은 지난해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 본사에서 열린 '지상파 다채널 방송 EBS2 개국식' 장면./사진=연합뉴스


셋째 국정원 관련 칼럼에 대한 일부 매체의 비난과 관련

배감사는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그 중에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수뇌부의 확고한 안보 의지와 이를 위한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 국가안보에 긴요한 최고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한 주문과 역할 부족에 대한 질타도 많이 했다. 그는 대선 후에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공방이 확산되는 과정에서(대선 선거과정에서가 아니라) 국정원 댓글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해북방한계선(NLL) 논란 등을 다룬 칼럼을 썼다. 

근본적 취지는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균형 잡힌 경중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 국정원 댓글 문제가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대북 정보 기능 위축으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이었다. 이런 내용을 '국정원 댓글 적극 옹호'로 해석하는 것은 역시 좌파매체들의 전형적인 낙인찍기 수법이다. 배인준 칼럼에 댓글 자체를 적극 옹호한 내용이 과연 있는가.

세계 어느 민주국가도 국가정보기관 역할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정보기관을 무력화시키려 하지는 더 더욱 않는다. 대한민국은 세계 민주국가 중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고, 5000만 국민은 선군을 외치며 공산화 통일을 획책하는 핵개발 집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상시적 안보 위기 속에서 국정원 고유 역할의 정립과 실행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언론활동이란 말인가.

넷째 박정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편들었다는 주장과 관련

배 감사는 칼럼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그랬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주도를 인정하고, 그 성취 위에서 미래세대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논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에 대한 무지 또는 무관심을 비판했고, 박근혜 대통령 국정에 대해서 여러 차례 여러 형태로 비판과 쓴소리를 했다. 

미디어스는 2007년 8월 20일자 '박근혜, 빛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배인준 칼럼이 마치 문제가 있는 양 인용했다. 이 칼럼의 취지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인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박근혜의 승복에 대해서 평가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승자였던 이명박 후보에 대해 빛났다고 한 것이 아니라, 패자였던 박근혜 후보의 승복의 의미를 평가한 것이었다. 

칼럼을 쓰면서 정치인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정치의 바른 길, 대한민국의 바른 길을 국민과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칭찬도 하고 질타도 하는 것이다. 배인준의 잣대는 대한민국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 그리고 실용적 국가발전관에 부합할 때 평가하고, 그 반대일 때 비판한다는 것이다.

배 감사는 2005년 5월에 펴낸 칼럼집 '대한민국 되찾기'의 머리말 첫 문단을 다음과 같이 썼다. <머리말. 2007년 4월 2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한국과 미국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교섭의 시작도 마무리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했다. 이 사실은 노 대통령이 개방, 경쟁, 자유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좌파성향의 노무현대통령이 한미FTA를 체결한 것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 것. 이것도 잘못된 편들기인가.

2004년 12월 14일 배인준 칼럼의 첫 문단은 아래와 같다. <자이툰부대 깜짝 방문과 파격 스킨십은 노무현 브랜드 '감성마케팅'의 히트작이다. 찡한 장면을 보면서 '대통령의 선택엔 역시 고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배감사는 진보대통령이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올바른 길을 가면 긍정적 평가를 했다. 이런 칼럼도 잘못된 편들기인가.

다섯째 EBS 감사 자격 시비 및 노조의 주장에 관하여

<전문성 시비>
배 감사는 언론계에서 35년 이상 시험받고 경쟁하고 동아일보 주필까지 지냈다. 언론계에서 숱한 경험을 했다. 93-96년 동아일보 동경 특파원 및 지국장 시절에는 일본의 멀티미디어 전개를 살폈고, 일본 언론의 신방겸영 구조를 파악했다. 2010년 종편 출범과 관련해서는 동아일보 방송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채널A 출범 후에는 11개월간 매주 1회 방송에 직접 출연해 1시간짜리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방송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전방위적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실무적 전문성을 넘어서는 전문성의 세계가 있다. 실무 단계가 아닌 고위경영 단계의 전문성이란 통찰력과 판단력에서 나올 것이다. 인류와 국가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 속의 교육과 방송에 대한 종합적 통찰력이 전문성의 기초일 것이다. 방송 안에도 여러 분야가 있거니와 그 한두 분야의 경험보다는 다양화 사회와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력이 더 큰 전문성일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보자. 그는 2급 배우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큰 족적을 남겼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76년 무과에 급제한 후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될 때까지 수군 경험이 전혀 없었다. 육군에서만 근무했다. KBS 사장을 역임한 박권산 전 동아일보 주필, 정연주 전 한겨레 워싱턴 통신원도 종이신문 출신이다.  

<노조 감사 임명 반대에 대해>    
사장도, 감사도, 노조도 각각 다른 제도요 독립적인 직분에 해당한다. 제도는 적법 절차에 따라 성립되고 공인되어야 한다. 가령 제도 A가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적법성 있는 제도 B를 부정하거나 일방적으로 반대한다면 제도 A의 존립 정당성도 부정될 수 있다. 제도와 제도 간에는 한편으로는 상호 독립성, 또 한편으로는 조화가 필요하다. 

사장이나 감사가 노조와 견해가 다르다고 부정·배척한다면 그것은 노영조직을 획책하는 것이다. 특별법에 의해 영위되는 EBS는 당연히 그 법의 취지와 내용에 맞추어 조직이 운영되어야 한다. 노조도 교육방송을 위한 노조여야 한다. 노조를 위한 교육방송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노조를 위한 공영방송을 꾀한다면 EBS의 국가적 존립 이유가 흔들리고, EBS에 대한 국민적 여망에 부합하기 어렵다.

<배인준 칼럼에 대한 무지 또는 낙인찍기 한 가지>
배 감사는 2009년 2월 '법과 폭력이 동거하는 나라'라는 칼럼을 썼다. 당시 용산 폭력시위 진압과 관련해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한 사안을 다룬 칼럼이었다. 사퇴라지만 사실은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으로 경질한 것이었다. 법 집행 핵심책임자를 이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경질하면 법치를 세우기 어렵고, 시위 명분과 관철 수단은 달라야 한다(불법이 판쳐서도, 이를 두둔해서도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해당글을 쓰는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사람의 전화였다. 그는 "김석기(경찰청장 내정자) 사퇴는 미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통령한테 (사표를) 반려하라는 논설을 써 달라. 이런 식으로 내쫓으면 폭력이 공권력을 야금야금 무너뜨리는데 또 성공하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했던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치안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논지와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이 전화내용을 칼럼의 도입부에 소개했다.

이 칼럼이 나가자 인터넷에 <'청부칼럼' 쓰는 배인준 동아일보 논설주간님>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미디어비평 전문 블로그-미디어 후비기>라는 이름 아래 '배인준 칼럼이 청부칼럼'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동아일보 논설주간(2009년 당시)이 자기 뜻에도 없는 칼럼을 누구의 전화 한 통 받고 썼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서글픈 일이다. 칼럼 글의 전개에는 여러 방식이 있음을 알면서도 <청부칼럼>이라고 규정했다면 악의적인 낙인찍기에 해당한다.

무릇 글의 작법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배인준은 1년에 25편 이상, 약 12년간 300편 안팎의 칼럼을 썼다. 칼럼이 한결같은 기승전결 구도였다. 틀에 박힌 서론 본론 결론 구도라면 독자들은 식상할 것이다. 칼럼 필자들은 같은 취지의 내용이라도 어떻게 달리 써내려갈지 늘 고민한다. 제3자의 말을 먼저 도입부에서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은 여러 저널리스트들이 가끔 사용하는 칼럼작법이다. 이런 것을 청부칼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청부칼럼 쓰는 배인준>이라는 제목의 글이 지금도 인터넷에 떠있다. 배감사의 명예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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