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창당 한 달여만에 혼돈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시작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일 야권통합을 제의하면서다. 안철수 대표는 즉각 반발에 나섰지만 당내 의견은 제각각이다. 특히 김한길 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공동대표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어 내분으로 번질 조짐마저 일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의 행태는 단골메뉴지만 더민주를 박차고 나간 지 한두 달만에 '동침'을 꿈꾸는 얕은 술수에 기막힐 따름이다. 안철수 대표는 김종인 대표의 야권통합 제의에 "의도가 의심스럽다. 당내 정리부터 하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당내 이견이 노출되자 안철수 대표는 3일에도 김종인 대표를 겨냥 "비겁한 정치 공작이자 정치 공격"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앞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야권통합에 반발한 안철수 대표에게 "대선 후보가 될 생각에 빠져 야권통합을 반대한다"며 "안 대표가 더민주에서 탈당한 동기는 본질적으로 내년도 대선에 후보가 꼭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나 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김 대표는 헌정을 중단시킨 국보위 수준으로 (더민주) 당권을 장악했지만 당의 주인이 아니라 임시 사장" 이라며 김중인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진연합뉴스
안철수 대표 3일 부산여성회관에서 열린 '부산을 바꿔! 국민콘서트' 행사에서 김종인 대표를 향해 "(김 대표는)안철수만 빼고 다 받겠다. 이런 오만한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국민의당, 제3당이 우뚝 서는 것을 방해하고 저지하려는 정치공작"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안철수 대표가 평소 그 답지 않게 김종인 대표를 향해 독설을 내뱉은 것은 국민의당내 역학구도와 관련이 있다. 김종인 대표의 '야권 통합' 제안에 국민의당은 통합파와 반대파의 의견이 갈리면서 갈등과 분열 조짐이 일자 사전 차단의 의미가 짙다.
국민의당에 입당한 박지원 의원은 애시당초 야권 통합을 꿈꿔 왔다. 박지원 의원은 안철수 대표와 탈당파들이 떠난 이후에도 당내 남아 있다가 막차를 탔다. 탈당 결정하면서도 박지원 의원은 제 3지대에 머물면서 야권통합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한길·천정배 공동대표도 일단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야권은 분열에 선수이지만, 통합할 때도 보면 금메달을 딴다"며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반드시 단일화라도 해서 총선에 임하고, 총선 후에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당) 지도부에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선거 목표의 우선순위가 30석을 얻는 것이냐,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는 것이냐 라면 저는 후자라고 본다"며 야권통합 및 연대의 가능성에 여운을 뒀다.
김한길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2일 야권통합과 관련해 "양당 중심 정치를 극복해 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일당 독주를 허용하게 돼서는 안 된다는 당내 의견이 있다"며 "깊은 고민과 뜨거운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오른쪽)는 야권통합에 반발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대선 후보가 될 생각에 빠져 야권통합을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사진=연합뉴스
당내 기류가 야권통합이나 연대쪽으로 흐르자 다급해진 안철수 대표는 김종인 대표를 직접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으로 에둘러 당의 결속에 요구한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광주 서구을의 천정배 공동대표를 떨어뜨리기 위해 영입인사, 즉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를 자객공천한 것이 불과 사흘 전인데 한 손으로 협박을 하고 다른 쪽으로는 회유를 한다며 정치 공작이라며 맹비난했다.
이어 "도대체 우리 당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이런 막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막말 정치, 갑질 정치, 낡은 정치"라며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온갖 쇼하며 갈라졌다고, 연대와 통합을 외치지만 선거 끝나면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반박했다.
안 대표는 "김 대표는 헌정을 중단시킨 국보위 수준으로 (더민주) 당권을 장악했지만 당의 주인이 아니라 임시 사장" 이라며 "총선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전과 똑 같은 모습으로 다시 패권주의와 배타주의의 만년 야당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통합이든 연대든 거부의 뜻을 명백히 밝혔다.
안철수 대표의 명백한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이 야권통합을 놓고 흔들리는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당 지지율은 10% 미만에서 맴돌며 점점 당의 존재감마저 퇴색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창당 직후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원칙 없는 사람 끌어들이기로 '새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정책적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의당은 창당 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등 굵직한 현안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더민주의 2중대’라는 오명을 자초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이 자기 정체성을 내지 못하면서 선거가 다가올수록 야권통합이나 연대에 휘말려 들 수밖에 없다고 예단했다.
야권통합이든 연대든 결국 국민의당이나 더민주가 노리는 것은 선거다. 적도 동지도 없다. 의원배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야합도 서슴치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배지다. 한마디로 야권은 지금 배신의 정치판이다. 스스로 정치 혐오와 불신을 키우고 있다. 배신과 불신의 정치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