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친일 낙인·반일 히스테리…'민족'을 파는 좌파

2016-03-16 09:3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목도했다. 역사적 경험이 의미 있는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어느 시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1945년 미군에 의해 해방된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이라는 낙인이 횡행하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친일’이라는 낙인이 건국-산업화 인물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15일 ‘2016 친일을 생각한다’ 생각의 틀 깨기 연속세미나를 열었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주장이 ‘친일’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인이 보는 일본에 대한 인식은 과도하게 부정적이며 적대적”이라며 “이러한 한국인의 대일본 인식은 세계인들이 일본을 인식하는 것과 커다란 격차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와 달리 우리가 좋아하는 나라 사람은 일본을 훨씬 더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쇠말뚝, 신작로에 대한 보도는 한국언론의 유치한 미몽 수준을 드러낸다”며 “이를 이유로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아직 전근대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보편가치에 입각하여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아래 글은 김광동 원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일본에 대한 의도적 적대의식과 민족가치의 유린

I. 세계가 보는 일본과 한국이 보는 일본 

한국인이 보는 일본에 대한 인식은 매우 특별하다. 과도하게 부정적이며 적대적이다. 한국인이 싫어하는 나라 순위를 보면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커다란 차이로 항상 유일무이한 1위에 있다.<표 1> 2002/2012년에 의거할 때, 모두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매우 높고, 북한이나 중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못할 만큼 압도적으로 싫어하는 나라로 평가된다.

그런 원인이자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이 불과 며칠의 언론보도만 살펴봐도 a. LPGA에서 각종 세리머니로 유명한 장하나선수가 우승하며 한 검도 세리머니를 사무라이라고 한 것을 인터넷과 중앙일보 등 주요 언론매체가 나서서 부정적인 논란 대상으로 확대시켰고,  연이어 b.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대한 논란을 부각시켰으며,  c. 소록도병원은 일제시대까지 방치되어온 전근대적 한센병에 대한 집중 대응 차원이었음에도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인권유린으로 그려내는 집중보도(mbc; '16/3/6)가 있었다. 그 외에도 일상적 차원의 일본에 대한 반감을 조성할만한 뮤지컬과 연극 및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일본인의 누적된 잘못에 의해서든,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과도한 오해에서든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반감을 일상적으로 펼친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인의 대일본 인식은 세계인들이 일본을 인식하는 것과 커다란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런 대표적 예로, 한국이 좋아하는 나라 사람들은 거의 한국보다 일본을 훨씬 좋아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호주, 스위스, 캐나다 등 한국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사람들은 모두 일본에 각별히 호의적이다. 한국인은 미국, 호주, 스위스, 캐나다, 영국, 프랑스(갤럽, 2002/2012)를 좋아하는 나라로 선택하고, 일본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선택하지만, 우리와 달리 우리가 좋아하는 나라 사람은 일본을 훨씬 더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특정된 인식과 세계인의 보편적 인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나라에서의 특정 현상이 아니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차이가 없을 만큼 긍정적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국가들을 비롯해,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모든 국가들이 상당한 격차로 일본을 한국보다 우호적인 나라로 일관되게 평가하고 있다(BBC/EAI). 그 외의 다른 조사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정서적 선호의 차원을 넘어 각종 평가지표를 보더라도 일본에 대한 우호적 평가는 상대적으로 확연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일본은 국가별 부패 순위에서도 15위로 한국의 43위와 커다란 차이가 있고, 여행할 만한 나라 순위에서도 일본은 9위, 한국은 29위이다. 그 외에도 함께 여행하고 싶은 나라의 국민과 같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한국인과 세계인 간에 인식 편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다.

표1.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갤럽, 2002/12년)


               
그렇다고 한-일간에 교류와 협력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는 숫자는 연 2백 8십만 명으로 중국에 이은 2위이다. 일본의 한국 방문자는 마찬가지로 2백 3십만 명으로 미국, 중국에 이은 3위다. 한국과 일본은 상호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 순위 3위 이내에 든다(jtb). 무역량과 투자를 보더라도 일본은 거의 일관되게 한국의 3위 이내의 파트너이다. 여행, 교류, 방문, 기술이전과 투자 등 모든 것을 보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나타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세계인들의 일반적 평가는 거의 다 일치되어 나타나지만 유독 한국인들만 일본에 대해 극도의 부정적 평가를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사실이다(BBC GlobeScan·EAI Global Poll, 2014). 또한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는 극도의 저평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국에 대해서는 극도의 고평가를 함으로써 세계인들의 일반적 평가와 커다란 격차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림1. 세계인과 한국인의 17개국 국가 긍정평가 비교(%). /자료=BBC · GlobeScan · EAI Global Poll(2014)



그림2. 17개국에 대한 한국과 21개국 긍정평가 비율의 격차(% p). /자료=BBC · GlobeScan · EAI Global Poll(2014)



고착화된 한국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원인과 관련된 많은 연구와 조사는 대체로 한 가지다. 그것은 a.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일본의 가혹한 식민정책 때문이라는 것,  b.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처럼 일본이 여전히 제국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고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거나 불법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부정적 평가 혹은 적대의식은 단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의 결과라고만은 볼 수 없고 식민지배 경험과 제국주의적 정책을 넘어선 문제라는 것을 다른 식민지배 사례에 대한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식민경험을 가진 국가들이 식민 지배국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데, 어떤 국가도 일본에 대한 한국의 인식만큼 극도로 부정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일본 식민과 점령은 최초의 식민지였던 대만은 물론이고 중국의 만주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다면, 대만과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대다수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 중 한국만큼 일본에 대해 적대적 인식을 가진 나라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지배나, 싱가포르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등 수많은 식민지배에 대한 평가를 비교해보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정책만이 예외적으로 유독 가혹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전제되지 않는 한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적대 인식은 그 성격을 다른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다른 식민지에 비해 한국에 대해 더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취했느냐의 문제를 보면 한국에 대해 특별히 더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전개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교 평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35년간의 식민 종결 후 1948년 8.15 광복 직후 전개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가혹한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인이 일본 총독부와 일본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적대 행위가 전개된 사실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총독부에 의한 치안 유지와 일본어 방송이 몇 개월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되었다. 일본어로 된 신문들이 계속 발간되고 있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적대인식은 식민지배 기간에 펼쳐진 것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후의 역사전개에 따라 점차 점증되고 확대된 것이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반에는 식민지 경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외에도 경쟁관계적 라이벌 의식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도 않고, 지표만 가지고도 그런 수준 이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주변국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경우는 많다. 영국과 아일랜드, 인도와 파키스탄, 영국과 프랑스, 중국과 베트남, 태국과 미얀마 등도 그런 예다. 물론 주변국에 대한 긍정적이고도 우호적인 인식의 예도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과 캐나다이고, 프랑스와 독일, 미국과 멕시코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주변국과의 갈등과 다툼, 혹은 질시라는 수준과 달리 일본에 대한 인식은 그런 보편적인 부정적 감정을 넘어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만약 식민지배와 경쟁의식에 따른 의도적 폄하였다면 식민지배 이후의 시간 경과와 한국의 위상 강화 및 경쟁의식 축소에 따라 완화되어야 할 텐데, 결코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먼저 35년간의 식민지배 기간보다 두 배 이상의 세월인 무려 70년 넘는 기간이 지났음에도 완화되지 않고 확대되어 온 것은 식민경험의 역사만으로 해석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경쟁 관계였다면 수준차이가 완화되거나 경쟁이 완화되면 그런 현상이 축소되어야 함에도 그런 변화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불과 5천만 명의 인구로 세계 5위 전후의 제조업 국가가 된 위상으로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패배의식을 가지 이유가 없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더라도 한국이 2만 8천 달러이고 일본이 3만 2천 달러 수준이어서 한국인의 소득은 일본인 소득수준의 84%에 달한다.(연합뉴스 2016.3.1) 가처분소득과 구매력기준의 소득으로 보면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열등의식을 느낄 수준은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다른 모든 영역에서의 정상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인식으로 고착화되고 확대되어 온 것을 보면, 일본에 대한 적대적 인식의 형성은, a. 보편적 평가와 달리 유독 한국인에게서 강한 일본 적대인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 b. 식민경험이 종결된 지 충분한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  c. 경쟁이나 자격지심의 관계가 극복되어 감에도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상당부분 ‘정치적 목적의 의도된 일본 적대 인식’의 결과로 보여진다. 다른 영역과 달리 정치적 인식의 영역에서 출발하고 확산되는 극대화된 부정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도된 정치적 목적의 부정적 평가의 형성 과정과 근거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만약 상당 부분 객관적 사실과 다르고, 보편가치적 기준과 한국의 미래지향적 가치에 반한다면 과도한 대일본 적대인식은 극복되고 바로잡혀져야 할 사안이다.  

보편가치와 민족가치에 입각하여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해가는 과정이자, 또 하나의 장애물을 넘는 과정이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II.  근대적 변화를 식민지배적 민족말살로 왜곡

한국 민족을 부정하거나 말살하려 한다는 차원에서 펼쳐지는 일본에 대한 적대 인식은 봉건사회와 전통사회를 넘어서 변화과정에서 있었던 것과 관련된 것에 집중된. 전근대 봉건 혹은 전통적 인식의 차원에서 근대적 변화에 대한 거부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예는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말살했다는 허구적 인식과 보도이다. kbs(2005. 10. 28/2012.11.14)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남한산성에 심어놓은 쇠말뚝...무려 50여개나 발견되었습니다” 혹은 “세종시 한복판에서 일제강점기 때 박힌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이 발견되었습니다...쇠말뚝이 박힌 형태로 미뤄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라고 보도했다.

 비슷하게도 연합뉴스(2011. 10. 27)는 “개성 송악산 등서 일제 쇠말뚝 6개 발견...우리민족끼리는...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기사를 인용해...주요 산과 지점에 쇠말뚝을 박는 전대미문의 망동을 부렸다고 비난했다”고 보도되었고, 다시 연합뉴스(2009. 8. 13)는 “일제가 기맥을 끊으려고 서울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에 박아놓은 쇠말뚝”이라며 “광복절을 맞아 이 말뚝을 뽑는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경향신문(2015.10.7)은 계룡산의 조경수인 가이즈카 향나무를 거론하며 “일제 생태 말뚝”에 해당한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나서서 ‘생태적 쇠말뚝’을 없애는 행사를 하였다고 보도였다. 또 다른 뉴스는 신불산의 통도사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민족정기를 끊기 위한 일제의 쇠말뚝을 다시 박겠다는 것과 같다”며 반대에 나섰다는 것을 보도하였다.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이 쇠말뚝을 박았다는 미신을 kbs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방송의 주요 반복적 테마의 하나이다. 물론 수없이 반복되더라도 그러한 보도는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거짓 보도일 뿐이다. 근대체제가 들어서면서 각종 측량과 공사를 위해 설치되던 쇠말뚝이 미신과 연결된 것이다. 오랫동안 일제가 설치했다는 쇠말뚝을 연구한 결과로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미신이 떠도는 것일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손정목). 심지어 방사성 탄소연대측정까지 된 바 있지만 다 거짓으로 밝혀진 바 있고 일체 관련된 자료도 없고, 실제 그런 목적으로 쇠말뚝이 박히는 것을 보았다는 전언과 구술도 없다.

국도는 물론이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등 지난 70년간 거의 무한대의 시설들이 산에 설치되었지만 아직 그런 문제를 가지고 민족정기를 끊는다는 보도는 없었다. 오직 일제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도만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산마다 방송 송신탑과 전기 송전탑들이 무한대로 설치되어 있는데도 민족정기나 맥을 끊는다는 논란은 있어본 적이 없다(김두규). 심지어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이던 이이화 박사도 “쇠말뚝과 관련된 일제의 문헌자료가 전무하다...일제 당국이 지도 작성의 과정에서 산마루에 쇠말뚝을 박아 표지로 삼았던 것”이었다고 단언하기도 했지만 그런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쇠말뚝들이 일제가 한 것을 알고 접근했다가 무속인이 설치했던 것으로 판명된 바도 있는데, 어처구니없게 쇠말뚝이 독립기념관에 보관되고 있는 수준이다. 

쇠말뚝과 함께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악용되는 선전 중의 하나가 신작로(新作路)와 관련된 보도다. 쇠말뚝보다 강도와 횟수는 작아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왜곡보도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kbs(2012.2.4)는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고 찻길을 낸다는 이유로 백두대간 곳곳이 끊기기 시작했”다고 보도하였고 백두대간을 잇는 사업을 설명하며 행정안전부장관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다시 이어서 민족정기와 얼을 되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mbc(2012.5.16)도 ‘일본 만행에 끊긴 한반도 등줄기 백두대간’이란 제목으로 “일제는 한민족의 정기를 끊고 도로를 만들기 위해 백두대간 곳곳을 훼손했다”고 보도하였고 경인일보(2012.11.15), MBN(2013.1.7) 등도 "신작로 개설을 명분으로 백두대간의 본줄기가 잘리면서 민족정기와 자존심이 크게 훼손 된 바 있습니다“라고 보도하였다.

사실적 근거와 발언 및 연구는 무한대로 존재하지만 그런 것들은 보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소백산에 신작로가 만들어지는 것과 관련하여 “서울에서 부산 간 물자수송을 위해 단거리로 봐가지고 산허리를 잘라낸 것”, 달리 말하면 1925년 차다 다닐 수 있는 최초의 근대적 도로가 괴산군에 개설된 것이라는 산림과장의 정확한 견해를 인용하면서도 그것을 민족의 정기와 얼의 훼손으로 해석하도록 하였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가 뚫리는 것은 어느덧 ‘명분’이 되었고, 실제로는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의도된 행동으로 전환시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1920년대 420Km 넘는 거대한 길이의 도로를 만들며 거대한 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로를 내는 것을 민족정기와 연결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야말로 대단한 것이고 한국 언론보도의 유치한 미몽상태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 현상에 반하는 태도와 관련하여 거의 60여 년 전인 1950년에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당초에 일본이 올 때 먼저 신작로를 내고, 철도를 깔고, 토지를 측량하고, 농사 개량을 학, 광산을 캐내고, 어업을 장려하고, 공업을 일으키고, 은행을 세우고, 각 방면으로 자본주의화에 힘썼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양반들의 착취로 원시상태를 못 면했던 경제에 처음으로 근대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402)는 것이다. 만약 그런 표현을 진보인사가 아닌 사람이 사용했다면 ‘친일’ 대상으로 사회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다. 쇠말뚝과 신작로가 민족정기 말살이란 시각으로 일반화해 인식하고,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전근대적 수준에서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흔히 불리는 좌파의 ‘민중’가요라는 노래도 마찬가지다. 흔히 아리랑 노래의 변조로 부르는 신작로 관련 가사는 “논과 밭 쓸 만한 것은 신작로 가고요, 계집 반반한 것은 유곽으로 간다"나, "인천 제물포 살기가 좋아도, 왜놈의 등살에 못 살겠네" 등으로 표현된다. 쓸만한 논과 밭이 ‘신작로’로 편입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근대에 대한 저항 의식으로 겹쳐서 반영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항일 지사적 활동이라도 반일의 목적과 성격이 봉건왕조제 복귀를 지향하는 차원이라면 전혀 별다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차원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항일지사인 최익현의 예가 그렇고, 당대 망국과 친일의 최고 책임자라 할 왕 고종(高宗)이 개화군주로 평가되는 예가 그것이다. 다른 예로, 1474년 조선 성종때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지켜야하는 것이고, 일제시대 1934년의 의례준칙(儀禮準則)은 전통에 반한다는 식의 칼럼(서울경제 ‘16/2) 등도 그런 것이다.

결론적으로 봉건왕조와 전근대적 봉건의 극복을 상당부분 스스로 진행시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근대적 변화를 근대화로 보지 않고 식민지배 현상으로 규정짓는 혼란과 왜곡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다. 근대 현상을 거부하고 미신과 풍수지리적 수준을 반일-반식민인 것처럼 만들어 왔다. 근대화 과정을 식민으로 규정짓고 비난하는 것이다. 대부분 전통에 반한다는 것과 반식민적인 것임을 거론하면서도 그 내용은 다시 봉건적 전근대로 돌아가는 것을 지칭한다. 문명적인 것도, 민족적인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근대적인 것을 반식민으로 연계시켜내고 있다. 봉건 회귀나 근대 거부 현상은 민족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민족적이다. 그럼에도 반일을 지향하며 그 성격은 반근대와 반민족내지 혹은 반문명을 지향하는 것이다.

III. ‘과거 군국주의’와 ‘현존 전체주의’의 착종된 이중성

군국주의적 일본의 식민지배 과정에 대한 적대인식의 형성을 보면 그것은 현존하는 전체주의인 북한을 보는 시각 및 대응과 대우 대조적이다. 일본이 자행한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민족의 생존권과 독립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보편가치적 기준과 민족가치적 기준에 따라 민족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및 민족 번영 등의 기준으로 체제와 역사적 사실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 군국주의의 가혹했던 식민체제의 문제를 정확하게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다면, 1945년 이후 70년이 넘게 북한에서 전개된 전체주의에 대한 극복과 확고한 대응 인식을 정립하려는 것이 일관성을 갖는 것이다. 예를 들면 70년 이전의 일제에 의한 위안부(慰安婦) 문제와 독도(獨島) 영유권 주장에 대한 문제와 갈등 수준은 높고 그럴 가치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식민지배의 억압성과 가혹성, 그리고 인권유린적 위안부 문제 혹은 독도에 대한 영토 갈등이 기준이 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에서의 광범위한 인권 유린과 학살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론 횟수에 있어서나 강도에 있어서 위안부 수준에 비할 수준이 아닐 것이다. 민족과 인권이란 잣대로 본다면 그 기준에 맞게 객관화되어 접근해야하며, 과거의 인권 유린도 문제지만 현재 펼쳐지는 인권유린과 학살을 더 중요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다뤄야 한다.

표2. 보편가치 기준에 의한 북한체제 성격과 반민족성


   
모든 지표의 결과는 세계 최악이다. 당연히 가장 중대하게 다뤄져야 할 첫째 의제는 한반도 북쪽에서 펼쳐지는 민족에 대한 유린과 파괴에의 대응이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였던 1930년의 한반도내 우리민족의 삶과 2015년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삶의 수준을 보면 무려 8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문명파괴 수준으로 참혹하고 종교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언론자유는 물론이고 영양상태와 교육기회 등 전 영역에서 최악의 상황에 있다.

무차별적 공개처형은 말할 것도 없고, 대량적 기아(饑餓)사망, 정치탄압과 정치수용소의 수준 등은 일제시대와 비교할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한국 민족의 유린이자 문명파괴의 가장 상징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군군주의에 의한 전체주의 극복과 북한의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에 대한 극복은 극도로 이중적이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은 저격의 대상이지만, 김일성과 김정은 등은 저격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구조인 것이다.  

북한에서 펼쳐지는 민족탄압과 인권유린은 물론이고 한국에 대한 위협과 도발 및 공격을 보아도 북한과 비교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1945년 광복이후 사망자 및 희생자의 숫자, 직접적 도발, 교류, 무역, 투자 등 모든 면에서 북한이 한국을 대상으로 저지른 반민족성과 반국가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자유와 민주를 포함한 모든 보편가치라는 기준을 갖고 평가한다면 인간 기본권을 유린하는 북한 공산체제에 대한 비판과 공산체제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우리 민족을 해방(解放)시키고 광복(光復)을 맞게 해주는 것은 가장 일차적 과제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는 현존하는 기본권 유린의 북한체제보다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이 훨씬 강하고 일상적이다. 북한의 2천 3백만 우리 민족에 대한 해방투쟁과 광복투쟁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의 서신 전달(2004) 등에서 보듯 미국이나 일본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법을 제정하는 것을 오히려 반대하고 항의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현실이다.

둘째는 영토와 주권에 대한 위협 수준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이다. 지난 70년간 한국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위협과 공격의 수준과 횟수, 규모를 보면 북한과 일본은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국제법적 처리 대상으로 만들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식민지배가 종결된 지난 70년간 일본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박탈하거나 영토를 빼앗을 목적으로 총과 대표를 쏘는 것과 같은 무력을 사용한 예는 없다. 더욱이 북한이 했던 바와 같이 6.25와 같은 전쟁을 전개하거나 대량 학살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민주적 체제를 위협하려는 의도적 목적의 물리적 공격은 없었다. ‘독도의 날’조차 지방자치단체인 시네마현(縣)이 개최하고 중앙정부는 차관급이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권과 체제에 대한 북한의 지난 70년간의 공격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군사 공격조차도 일상적으로 전개되는 대치관계이다. 대한민국과 관련된 일체의 정당성과 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총과 대포를 쏘고, 납치와 학살을 자행하였다. 심지어 4백만 민족의 희생을 만든 전쟁을 구사해왔다. 북한에 대한 평가는 단지 대한민국의 평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동일하게 평가된다.

다른 모든 지표(표 2. 참조)를 보더라도 북한은 전 세계가 평화파괴적 세력이자, 가장 악독한 전제군주체제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국가라는 데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대상은 정상국가 일본이지,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국가 북한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인식과 일본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차이가 크고 일본보다 북한을 훨씬 더 큰 비율로 우호적으로 보는 인식이 높다는 것은 민족가치나 보편가치적으로 평가할 때 인식과 대응에서 커다란 왜곡이 형성되어 있음을 나타낸다.<표 3. 참조> 

표3. 일본과 북한에 대한 지역별 긍정 평가의 비율(%, BBC/EAI, 2014)



한 예로 교과서를 보더라도 일제 및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과 비교할 때 공산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으로 점철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친일청산을 철저히 하지 않아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표현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또 침략전쟁인 6.25 전쟁을 감행하고 4백만 이상의 민족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북한에 평가는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317)”란 표현 등으로 전쟁 책임을 호도시킨다.

6.25전쟁의 피해와 영향에 대한 서술에서 “북한은 더욱 큰 피해를 입었다...전통문화는 해체되었고, 미군을 통해 미국의 대중문화가 빠르게 유입되었다(318)”라며 침략자인 북한을 대변하며 거꾸로 미국 문화의 확산을 비판하는 식이다. 대전, 전주 등과 각종 교회에서 자행된 북한 인민군에 의한 광범위하게 펼쳐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그런 언급이 있다면 오히려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자세하게 서술하는 방법을 통해 학살자는 일본과 한국정부 및 군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왔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일본을 의도적으로 적대화 하는 인식은 일본 비판과 대한민국 및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현존하는 전체주의에는 눈감고, 70여 년 전 과거의 군국주의에 사회적 관심을 집중하는 현실이다. 그런 인식구도를 형성시키는 것은 반일감정의 조성과 확산을 의도한 것이고 전체주의세력인 김일성과 그 세습체제를 ‘민족’으로 둔갑시키는 인식을 구조화시키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한국의 건국과정을 ‘친일’로 매도하고 전체주의 공산제국의 꼭두각시 정부를 ‘항일’인 것처럼 신화를 만들어온 것도 그러한 구도의 일환이다. 공산 제국주의의 일원이 되어 전체주의체제로 점철된 북한 정국에 대한 비판은 없고, 역사적 사실과 달리 거꾸로 민족적인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과 정부를 친일로 규정짓는 방식이 가장 전형적인 것이다(류석춘/김광동).

일본에 대한 의도적 적대의식에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부정과 연계되어 있고 대한민국의 건국 정당성에 대한 부정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식으로 건국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국가관과 체제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을 만드는 세력은 대한민국을 훼손할 목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와 유착한다는 의미의 ‘친일(親日)’이란 날조된 비난을 일상화하였다.

반민족적이고도 또 다른 식민체제를 만든 본산은 소련 소비에트와 북한 공산세력이었음에도 오히려 ‘친일’이란 굴레는 대한민국에게 씌워왔다. 특히, 북한은 전체주의자 스탈린은 꼭두각시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북한은 ‘항일투쟁’을 이끈 세력이 만들었다는 허구적 선전에 크게 영향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에 친일이란 굴레를 만들어 씌웠고, 그것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공산체제를 유지해온 전체주의의 의도된 조작과 선전선동이 상당부분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 형성된 반일 적대감의 상당 부분은 대한민국이 당당히 민족적 항일정부를 구성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게 하면서, 친일세력이란 조작을 기정사실화하여 민족적 주체성과 정당성을 훼손시켜온 결과이다.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 일본과 관련된 인식은 사안별로 정당하게 대처되어야 하지만, 근대에 반하는 근거에 입각한 ‘민족정기의 말살’과 같은 인식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을 호도하게 만드는 인식,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현존하며 더 위협적인 제국주의 태도를 회피시키고 왜곡하려는 의도에 따른 일본 적대인식은 잘못된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엄밀히 보면, 한국에서 친일세력의 최대 본산이자 중심은 구한말의 조선 왕조, 그 자체였다. 친일파의 최대 거두는 당연히 망국으로 이끈 고종(高宗)과 연이은 순종(純宗)이다. 고종은 일본 지배에 대한 수도 없는 예찬을 넘어 자녀들을 일본 황족과의 결혼시키고, 미국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주도적 활동 등을 보면 조선 왕조야말로 친일의 본산이고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고종 이래로 조선 왕족은 일본으로부터 모두 작위를 받았고 일본 식민체제와 제국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다. 조선 왕이 보인 이등박문에 대한 존경, 혹은 안중근의사에 대한 비난 등 모든 영역에서 망국체제와 일본 제국체제로의 편입에 가장 크게 기여했고 헌신했다. 그럼에도 친일매국을 이끈 왕조와 고종에 대한 비판 없이 그 뜻을 받든 5적(敵)과 그 신하(臣下)들 및 일제치하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친일단죄를 거론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봉건적 절대왕조는 보호하고 그 뜻을 받듯 신하들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일본과의 모든 협력체제를 거부하는 사회구조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조그마한 실질적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 북한 전체주의와의 협상은 ‘역사적’인 협상으로 평가받는데 반해, 정상적 국가관계에 있는 일본과의 협상은 망국적 내지 반민족적 협상결과라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든, 위안부문제에 대한 타결이든 일본과의 협상과 합의에는 커다란 반대시위가 펼쳐지지만 6.15선언이든 10.4선언이든, 아니면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협정(1991) 등 모든 합의는 긍정 평가의 대상이 되어왔다.

 공산주의와의 협상을 굴욕적인 것으로 평가받은 예는 드물다. 남북불가침협정, 비핵화 공동선언 등 모든 것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음에도 그것을 굴욕 협상이고, 결사 저지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인식구조이다. 예를 들면 북한과 맺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심각한 주권의 제한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대 없이 타결되었고 북한은 지키지 않고 한국만 묶어두는 것임에도 그에 대한 굴욕적 협상이란 평가나, 폐기 요구가 크지 않다. 반민족적 전체주의와의 협상을 민족적인 것이고, 정상 국가와의 협력은 반민족이라는 양분법적 공격이 천연덕스럽게 전개되는 것이다. 대신, 일본과의 협상은 다 굴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본에 대한 과도하고도 의도된 적대의식 조성에는 전체주의와의 연대와 공동투쟁이 연계되어 있음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반일 적대감 조성의 주역들에게 북한의 반민족적 전체주의에 대한 적대감의 수준은 매우 약하거나 찾기 어렵다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전체주의 북한도 한국사회에서 그런 대일본 적대감을 활용해왔다.

예를 들면, 2015년 말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협상에 대한 반일감정을 이용한 협상거부도 그런 전형적 예다. 다음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간의 합의 이후 북한이 2월 전후 살포한 삐라의 내용이다. 반일정서를 활용하여 북한에 대한 우호적 정서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론 대한민국의 기본정책을 부정하고 정부와 체제를 비난하게 만드는 일상적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1964년 한-일수교회담, 위안부문제 협상 등 다른 모든 사례 때마다 나타나는 ‘민족주의 장례식’이니, ‘굴욕적 협상, 결사반대’니 하며 난무했던 한국 사회의 반일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2월 전후 살포한 삐라의 내용



북한이 한국사회에 확산시키고 뿌려대는 인터넷 선전과 각종 삐라도 동일한 맥락이다. 적어도 최소 3천명이 넘는 북한 군인들이 한국 사회의 인터넷 등 사이버매체와 각종 언론매체에서 자행하는 철저한 여론조작과 댓글작업을 인지하고 심각하게 감안하며 대응해야 한다. 한국에서 전개되는 일본 적대감 조성의 상당부분은 북한의 의도된 대한민국 공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사회는 현존하는 전체주의와 대결하는 대신 과거의 군국주의와 대결하는 인식구조와 대응이 전개되고 있는 현실은 조속히 극복되어야 한다. 더욱 가혹하고 참혹한 전체주의가 자행하는 민족에 대한 유린과 인권 기본권의 파괴에 대해서는 눈감고, 대신 70년 이전에 있었던 식민지배의 가혹함과 참혹성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것은 한편으론 현존하는 전체주의적 유린체제에 대해 방조하게 만드는 인식틀을 확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전체주의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더 협력적이어야 할 주변국가 일본과는 작은 것이라도 연대와 협력의 틀을 무산시키고자하는 의도와도 결합된 것이다.

IV. 제국주의에 대한 오도와 일방적 인식 

한국 사회에는 ‘제국주의’적 존재를 유일무이하게 일본으로 보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한국에서 전개되는 제국주의에 대한 각성과 대항의식은 일본에게만 적용될 뿐 다른 주변국가에 대해서는 예외적 인식을 만든다. 중국(中國)과 러시아(蘇聯)은 제국주의로 보지 않고 오직 일본만 제국주의라는 식의 인식구조가 형성되어 온 것이 그것이다. 제국주의를 보는 인식에 커다란 이중적 인식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만을 적대적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한 차원의 의도적 인식형성의 결과가 아니라면 해석하기 힘든 수준이다.   

한국에게 제국주의적 행위를 감행하는 나라는 오직 일본이란 인식을 구조화하게 되는 첫 번째 방식은 일본의 식민지배 이전에 한국은 완전한 독립국이었다는 것을 전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전근대적 봉건체제에서 진행되었던 조선이 명(明)과 청(淸) 등을 비롯한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와 책봉(冊封)관계에 대한 설명이나 인식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 대한 외교권과 국방권을 부정했던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위는 거론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마치 중국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던 자주국가 조선이 있었는데 일본의 진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자주와 독립국가가 붕괴된 것처럼 인식시킨다.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적 태도는 일반적인 것이고 유사한 것임에도 제국주의적 행위로 규정짓는 것은 대부분 일본만을 대상으로 하여 고정되어있다. 조선을 대상으로 했던 500년간의 중국 패권과 패권주의적 행태는 보지 않고 35년의 식민에만 모든 초점을 맞춘다.

그런 인식 형성의 결과로 예를 들면, 고종의 부(父)이면서 1880년대 조선의 최대의 권력을 행사하던 흥선대원군조차 임오군란 이후 중국에 납치되어 3년간 중국에 억류되었다는 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군사를 끌고 와 12년간 서울 용산에 체류하며 총독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기본적 사실 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지배와 패권 행위는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을 위해 만들어진 영은문(迎恩門)이 독립문(獨立門)으로 된 것임에도 마치 독립문의 독립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한 것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잊혀져 대부분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의 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은 일본이 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했던 패권적, 제국주의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언급되는 독립(獨立)의 의미는 보편적 독립과는 거리가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독립이란 보편적 개념이고 국민형성의 개념이지만 한국에서 독립이란 거의 대부분 반일독립(反日獨立)을 의미한다. 독립운동(independence movements)도 보편적 차원의 국민형성(nation building)의 차원과 자주적이면서도 자유민주적 근대가치의 정립으로 보지 않고 반일활동으로만 고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독립기념관도 근대적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활동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만행과 일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단일 항목으로 채워져 있어서 독립기념관이기 보다는 ‘반일(反日)기념관’이라는 평가가 정당한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던 가혹한 공산 제국주의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만드는 투쟁은 독립투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독립과 자주의 개념이 보편적 의미로 정립되지 않고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고유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일본 적대의식은 과거 가혹했던 식민체제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것이 북한 김정은 정권 전체주의체제 하에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해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전체주의와 연대하며 일본을 공격하는 인식구조가 이뤄졌다. 이는 보편가치에 근거한 일본 비판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둘째,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蘇聯)가 주도한 북한 지배와 착취, 학살에 대한 평가가 없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대한 인식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신의주 학생의거와 함흥, 원산에서의 소련 군정의 무자비한 학살과 탄압이나 공산제국주의에 맞선 위대한 반공산주의 투쟁이었던 황해도 구월산(九月山)에서의 반공빨치산의 역사적 투쟁은 우리 역사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더불어 구한말에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하여 러시아에 의존하여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을 진행한 것도 자주와 독립의 개념에 따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1945년 이후 소련(러시아)가 제국주의적으로 한반도에 공산주의체제를 만들고, 민족의 파괴와 자주권의 유린은 참혹한 것이었음에도 이것을 제국주의적으로 보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일본과 계속된 우호관계를 유지하다가 일본 항복을 불과 6일을 앞둔 시점에서 대일본 전쟁에 참전한 한 대가로 차지한 소련의 이권과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소련 제국주의는 일본이 만든 제국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륜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북한에 진출하면서 자행한 학살과 전체주의체제의 옹립에 대한 인식은 찾기 어렵다. 김일성 정권 자체가 소련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음에도 그런 학문적 평가와 언론보도를 찾을 수 없다. 민족주의 세력이 탄압 받았고, 조만식을 비롯한 조선민주당은 해체되었으며, 천주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은 삶의 터전을 박탈 당했다. 산업시설을 뜯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헌법 제정과 국기 제정에서부터 정권 지도부 형성과 공산소비에트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자주와 독립개념은 일체 없었다.

소련은 민족 참화를 만든 전쟁을 주도한 것에서부터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주역이 된 것에 대한 반제국주의적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전형적인 괴뢰국가이자 위성국가였음에도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인식을 일본과는 차원을 달리할 만큼 이중적인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제국주의적 비판은 일본 다음이라면 그것은 미국에게 겨눠져있다. 공산주의는 제국주의로 보지 않고, 전체주의 유형 중 가장 인간 기본권을 파괴하는 전체주의로 보지 않으려하는 깊은 인식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의 침략전쟁이나 중국에 대한 의존은 제국주의나 종속관계로 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북한 무역의 90% 이상이 중국에만 의존하고 김일성과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가 거의 중국만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일방적 외교만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북한이 종속국가라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1970년대 이래 한국사회에서 일본 경제로의 대외종속을 말하고, 매판자본을 비롯한 만성적 종속경제를 거론해왔지만 북한의 극도의 의존과 편중에 대해서는 객관화된 분석조차 없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도 더 중국과의 무역량이 클 정도로 편중되어 있지만 과거에 논의되던 일본경제에의 종속이나 대일의존도 등과 같은 광범위한 우려는 없다. 중국에 대한 종속은 종속이 아니고, 일본과의 교류와 협력은 의존으로 보는 극단적이고도 이중적인 인식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6.25 전쟁 참전과 대한민국 통일 저지에 대한 인식과 비판은 한국사회의 담론에서 찾을 수 없다. 6.25라는 침략전쟁과 대참화를 겪고도 통일되지 못하고, 여전히 북한이 전체주의체제로 남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중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비판과 책임문제는 한국에서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60만 명 이상의 중국군이 대규모 참가하여 침략전쟁을 벌인 북한을 돕고, 수만 명의 한국인을 사망하게 한 역사적 사실을 그 어떤 교과서에서나, 학술서적에서조차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는 수준이다.

중국에 의한 제국주의적인 북한 지배와 대한민국 안보와 통일한국에 위협은 논란의 대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중 잣대가 한국사회에 커다랗게 형성된 결과이며, 일본은 제국주의적이지만 중국은 제국주의라는 잣대로 보지 않는 인식구조의 결과이다.  비슷한 예로, 불과 얼마 전 중국의 대사가 주권사항인 ‘사드배치’를 반대하며 위협한다든지, 한국 야당 지도자를 찾아가 사드배치 반대를 주문하는 것은 주권 국가에 대한 기본적 관례의 파괴다. 그런 유사한 행위가 일본 대사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한국사회는 커다란 소용돌이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제국주의 세력이란 전에도 일본이었고, 지금도 오직 일본이라는 구도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의 형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은 일본이 침략하기 전에는 조선이 자주독립국이었다는 허상과 중국과 러시아는 제국주의적이지 않았다는 허구적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그것은 공산주의를 전체주의로 보지 않으려 하고, 제국주의로 보지 않으려 하는 의도된 인식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강대국은 패권적이고 약소국을 대상으로 제국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더 가혹했음에도 한국에는 제국주의란 일본을 표현하는 것으로만 구조화되어 있다. 일본만을 적대의 대상으로 보게 하고 중국과 소련의 만행은 제국주의라는 틀에서 늘 예외이다. 공산주의를 전체주의가 아닌 것으로 보거나, 제국주의적 행위가 아닌 것으로 보는 이중적 인식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더 가혹하고 무자비한 반민족, 반인륜적 제국주의였음에도 그렇게 보지 않으려는 것에는 일본만을 대상으로 한 제국주의론적 인식의 근원은 제국주의를 보는 시각이 공산주의의 제국주의론에 입각하여, 공산주의와의 연대를 근간으로 하는 착종되고 왜곡된 인식의 결과이다.

조선에 대한 외교권과 국방권을 부정했던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위는 거론되지 않는다. 조선을 대상으로 했던 500년간의 중국 패권과 패권주의적 행태는 보지 않고 35년의 일본 식민에만 모든 초점을 맞춘다./사진=연합뉴스



V. 일본 적대 인식과 해결 방안

한국은 일본을 객관적 인식의 대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자유, 민주, 인권, 종교도 없는 북한과 중국이 일본과 상호 비교되는 것조차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가 보는 일본과 한국이 보는 일본에 대한 인식 간에는 설명되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물론 일본도 한국을 보는 전향적 자세 변화와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한국도 국익 증진과 보편가치의 성숙과 확산을 위하여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혐오 국가’가 아니며, 그동안 오도되어온 인식 간극을 해소하고 공동의 가치를 지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 첫 단계는 보편적 기준에 입각하여 일본을 보겠다는 자세이다. 굳이 분류한다면 근대가치, 보편가치, 그리고 민족(국가)가치라는 잣대이다. 의도된 일본 적대감의 조성과 정치 목적적 차원에서 적대적 한일관계를 형성하려는 왜곡된 구도를 극복하는 방안은 다음 세 가지의 인식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일본에 대한 적대인식 조성에는 전근대 봉건체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근대성에 대한 거부현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쇠말뚝이 그것이고, 신작로가 그것이다. 민족 정기의 말살이란 식의 미신 및 풍수지리적 현상과 연계시켜 근대적 현상을 식민지배와 반일 적대감 형성으로 연결 짓는 여론조성이 무비판적으로 실재한다. 한국이 스스로 전개시켜 온 반봉건 및 전근대의 극복과정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근대적 현상을 악의적인 일본지배와 민족정기의 말살행위의 결과라고 왜곡 선전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저급한 인식수준을 말하는 것이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한국이 지향해야 할 문명사회라는 방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둘째, 일본에 대한 적대인식에는 ‘현존 전체주의 문제에 대한 의도적 회피’와 깊게 연계되어 있다. 일본 식민체제를 비판했던 것은 군국주의가 만든 체제,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비롯한 인간 기본권의 유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70년 이전에 전개되었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은 연속적이고도, 일관되게 현재 우리 민족에게도 펼쳐지는 현존하는 북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극복방안으로 결집되어 나타나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일본 적대의식은 과거 가혹했던 식민체제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그것이 북한 전체주의체제 하에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해방투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전체주의와 연대하며 일본을 공격하는 방식의 인식구조가 설정되어 왔다. 그것은 보편가치에 근거한 일본 비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과거 일본’에 초점을 맞춰 ‘현존 전체주의’에 대결해야할 민족역량과 보편가치의 정립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켜온 결과인 것이다. 더구나 그런 비난과 공격이 다른 한편으론 북한 전체주의가 아닌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자유민주 주도세력에게 맞춰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다.

셋째, 일본만을 제국주의의 상징적 존재로 본다는 사실이다. 다른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적 현상은 의도적으로 도외시하며 오직 일본에게만 제국주의란 비난을 집중한다.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강조하여 비판하는 측에서는 훨씬 가혹하고도 더 제국주의적인 공산 제국주의의 참혹한 지배에 대한 비판을 찾기는 어렵다. 중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소련의 제국주의적 지배, 그리고 보편가치에 반하고, 민족가치에 반하는 공산체제의 침략전쟁과 공산전체주의와의 대치라는 지난 70년간의 한국의 반제국주의 투쟁과 전쟁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배제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 일본과 관련된 인식은 사안별로 정당하게 대처되어야 하지만, 근대에 반하는 근거에 입각한 ‘민족정기의 말살’과 같은 인식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을 호도하게 만드는 인식,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현존하며 더 위협적인 제국주의 태도를 회피시키고 왜곡하려는 의도에 따른 일본 적대인식은 잘못된 것이고, 재정립되어야 한다.

더구나 일본에 대한 적대인식 형성의 의도는 대한민국의 체제와 정당성 부정과도 깊게 연관된 경우가 많다. 그것은 공산주의가 확대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던 시기에 계급투쟁의 일환이자, 대한민국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의 방법으로 ‘친일’이란 낙인을 덧붙이기 시작한 역사적 근원과도 맞닿아있다. 그런 면에서 근대가치에 반하고, 민족가치에 반하며, 보편가치에 반하는 북한 전체주의와 공산제국주의를 종식시키는 과정은 일본에 대한 정당한 인식 정립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북한 전체주의의 종식과 한반도 통일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의 성숙, 보편가치의 정립, 그리고 동아시아 번영공동체의 형성 등 모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라는 방향과 동일선상에 있다. 보편가치와 민족가치에 입각하여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해가는 과정이자, 또 하나의 장애물을 넘는 과정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김광동]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