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4·13총선을 앞두고 '배신의 정치' 아이콘 유승민 의원이 뜨고 있다. 아니 '뜨고' 있다기보다는 '띄우기'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좌우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들이 연일 유승민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 하듯 하고 있다. 여기에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도 한몫하고 있다. 야당의 역선택 여지가 뻔한데도 마치 정상적인 수치인양 발표해 오해의 소지를 주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지난 17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유승민 의원이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8.7%를 기록해 전 달보다 2.2%P 상승하면서 1위인 김무성 대표(19.3%)와 박빙을 이루며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지지층으로부터는 김무성(34.8%), 오세훈 (21.0%), 김문수(6.7%), 홍준표(6.0%), 나경원(5.2%), 정몽준(4.5%), 남경필(4.4%)에 이어 8위권인 3.6%의 지지를 받았다.
여당내에서 8위권에 불과한 유승민 의원이 어떻게 18.7%를 받아 2위권에 올랐을까? 비밀은 더불어민주당(29.2%), 국민의당(30.7%), 정의당 지지자(38.5%)들의 대대적인 '역선택'의 결과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는 여야 후보자를 묶어서 동시에 해야 상대 정당 지지자들에 의한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음에도 여야를 분리해 여론조사를 실시함으로서 역선택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야당과 반정부파들에게 유승민은 '꽃놀이패'다. 사정이 이럴진대 역선택이 가능한 여론조사를 '허수' 없이 '실수'로만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코미디다./사진=연합뉴스
이런 결과를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과없이 내보냈다. "유승민,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2위…김무성과 박빙"(조선일보), "공천파동 최대 수혜자 유승민…여권 차기 대선 2위"(노컷뉴스), "유승민, 여권 차기 대선주자 2위…與 ‘공천학살’ 최대 수혜자?"(동아일보)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번 되짚어 보자.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해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해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 빗발치는 사퇴요구에도 버티기를 하던 유승민 의원은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사퇴의 변과 함께 7월 원내대표직을 떠났다.
앞서 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해 온 박근혜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에 빠져 야당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일련의 치기어린 행동으로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과 맞장 뜬 개념 있는 원내대표'로 반정부파들의 환호를 받았다. 야당과 반정부 매체들의 '유승민 띄우기'로 단박에 대선주자 반열까지 올랐다.
야당과 반정부파들에게 유승민은 '꽃놀이패'다. 사정이 이럴진대 역선택이 가능한 여론조사를 '허수' 없이 '실수'로만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코미디다. 유승민 의원의 지지층을 봐도 그렇다.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유 의원은 지역별로 서울(20.5%), 경기·인천(17.0%), 광주·전라 (26.7%)에서 연령별로는 20대(16.3%), 30대 (31.1%), 40대(21.8%)에서 1위에 올랐다. 이념성향별로도 중도층(22.8%), 진보층(25.2%)에서 선두에 올랐다.
보수를 표방한 집권 여당의 전직 원내대표가 야당과 진보세력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다. 더욱이 공천 정국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 '러브콜'을 받으면서 수읽기를 거듭하고 있는 현 시점의 여론조사는 '유승민 띄우기' 그 이상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만 실제 여론조사는 중간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때로 여론조사는 수용보다 대립을 키우기도 한다. '1번 싫으니 무조건 2번'이라는 식으로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더욱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독'일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여론의 취사선택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새누리당의 공천을 계파공천이라고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한 이번 공천 내용에 대해 60.3%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불만족이라고 응답한 25.9%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만족한다는 답변은 32.2%에 불과하고 불만족이 48.9%를 차지했다.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만족한다는 23.6%, 불만족은 52.7%에 달해 불만족이 두 배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연일 여권을 겨냥 '보복공천', '공천 대학살'이라는 어마무시한 단어들로 도배하는 언론의 행태가 참으로 위태로움을 넘어 안쓰럽다.
정치 불신의 시대에 여론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여론이 이러하니 따르라"는 억압에서 "여론이 그러하던데…"라며 자유의사를 무시하는 반자유의 무기가 됐다. 건강한 판단과 건전한 대화를 가로막는 닫힌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 이제 독이 든 여론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제대로 된 여론에 귀 기울일 때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