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김종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다. 그것도 '셀프 공천'으로 2번이다. 당 대표에 주어진 비례공천권 세 자리 중 여성 몫 1번에 자기 사람인 모 교수를 꽂아 넣고 본인은 2번에 배정했다. 나머지 한 자리도 6번에 자기 사람을 심었다. 민주화됐다는 시절에 와서 당 대표가 총선에서 스스로를 비례2번에 박은 일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데 김종인의 탐욕만 번뜩이는 이런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보고도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조용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이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과감하다 못해 뻔뻔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이번 더민주당의 총선 공천 결과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여론이 비판할 것을 알면서도 아예 무시한 듯한 김종인의 이런 노골적인 자신감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종인을 불러들이고 칼을 쥐어 준 문재인이 최소한 사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더민주당 공천은 '문재인을 위한 공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지역구 공천만 봐도 안다. 차기를 노리는 문재인 앞으로의 행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거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이해찬, 유인태와 같은 구시대적 친노는 쳤다. 그러나 문재인 대권가도를 위해 필요한 젊은 '친문' 김경협 전해철 윤호중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진성준 배재정 등은 튼실하게 지켰다.
더민주가 인사를 수혈해온 여성계 인사 남인순, 보수언론을 공격하고 길들이는데 앞장섰던 최민희 등에겐 경선 기회를 주거나 아예 단수공천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김기식도 경선 기회를 얻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이렇게 내놓은 공천 인사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문재인의 차기 대권가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존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친노86운동권 정당이란 이미지를 벗겠다는 공언과 달리 그들 상당수를 살린 것은 애초 수권정당을 위한 개혁공천이라기보다 문재인당을 만들기 위한 명분용이었다는 쪽에 확신이 선다.
김종인의 역할은 문재인이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계산된 행보였을 뿐이다. 문재인 대신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겁 없는 칼잡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에 다름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인의 '청부정치'와 오물의 늪으로 빠진 정치
만일 그런 입바른 말대로 할 진정성이 눈꼽만큼이라도 있었다면, 김종인 영입1호 인사라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그렇게 당내 경선에서 나가떨어지도록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비례대표 2번 순번에 꽂는 대신 그를 그 자리에 배정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미FTA 주역인 그를 비례대표 당선권에 공천하는 것만큼 운동권 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확실히 벗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더민주당과 김종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을 어떻게 바꾸느냐의 목표가 문재인이 아닌 당 체질 개선에 맞춰져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종인이 더민주당에 들어가 한 일들이란 것이 특정인 요구에 맞춘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김종인을 언론과 식자층에서 '차르'니 '계몽절대군주'니 하는 비유로 그동안 추켜세웠다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전 필자의 글에서 언급한 '지배자'란 수식어도 가당치 않은 표현이었다.
김종인의 역할은 문재인이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계산된 행보였을 뿐이다. 문재인 대신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겁 없는 칼잡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의 역할 말이다. 그렇게 서로 간에 주고받은 견적서대로 집구석 일부를 리모델링 해주는 대신 후한 값을 받게 된 전문 업자로서의 능력 발휘. 이런 비유들이 아마도 김종인 효과의 실체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이 나라 정치는 오물과 진흙탕으로 뒤범벅된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됐다.
새누리당에서 3선을 하고 장관까지 지낸 인사가 공천을 못 받았다고 하루아침에 적대적 상대당으로 가 버리는 못 볼꼴까지 보게 되지 않았나. 아무리 요즘 정치가 이념과 가치, 정치도의와 같은 미덕이 실종된 시대라 해도, 여당에서 혜택을 입고 성장한 장관 출신 3선 의원이 할 짓인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여당의 그런 인물까지 마치 정치 공작하듯 빼낸 듯한 김종인식 정치는 과연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나.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뒤 탈당한 3선의 진영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인과 진영의 무도한 탐욕정치
더민주당에 입당한 진영 의원은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정치, 서민을 위한 민생정치, 통합의 정치를 이룩하는데 저의 마지막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또 이런 말들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추구한 '초심의 정치'는 완전히 좌초되었다" "그동안 저 역시 권력정치에 휩싸였고 계파 정치에 가담했으며, 분열의 정치에 몸담았다. 그들은 통치를 정치라고 강변하면서 살벌한 배격도 정치로 미화했다" "저는 대한민국주의자로서 새 깃발을 들었다. 저는 그 깃발을 함께 들 동지를 더불어민주당에서 찾았다" "저에게는 특정인의 지시로 움직이는 파당이 아닌 참된 정당정치가 소중하다"고 자신의 합리화에 급급했다.
그러면 진영 의원은 더민주당에서 벌어지는 문재인과 김종인이 벌이는 정치는 패당 정치, 계파 정치, 분열의 정치가 아닌지 답해야 한다. 언론이 다들 지적하듯 문재인 패권 강화는 통치가 아니고 민주정치란 말인가. 국민의당이란 분열의 정치의 생생한 증거가 있는데도 더민주당의 패권정치는 종식됐단 말인가.
자신이 속한 내부에서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적진에 가서 비방하고 무언가를 얻어내는 짓은 인간으로 취급하기 어려운 시정잡배들에게나 가능한 짓이다. 여야를 떠나 이 나라 장관까지 지낸 3선 정치인이 오직 공천 하나 외에는 명분도 설득력도 없이 당적을 옮긴 것은 그런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당이 내린 결정에 불만이 있다고, 설령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혜택을 입을 당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간 인물이 다른 당에 가서 신의를 지키고 그 당에 헌신할 것이라고도 믿기 어렵다.
김종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三毒)이란 것이 있다. 탐욕(貪慾)·진애(瞋恚)·우치(愚癡) 소위 '탐·진·치'를 가리키는 데 탐욕과 증오, 노여움에 가려 사리분별을 못하게 만드는 중생의 세 가지 어리석은 번뇌를 뜻한다. 지금의 얄팍한 행보가 대경제학자로서 지금까지 쌓고 이룬 것들을 모두 허물뿐 아니라 본인에 은혜를 베푼 대한민국 정치에 큰 해악을 끼친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보기 바란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