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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통째 '현대'로…정주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2016-03-23 10:0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봐, 해봤어?”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아산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응축되어있는 한마디다. 아산이 기업을 시작할 당시 한국은 아프리카 가나 수준의 최빈국이었다. 그럼에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경부고속도로, 중동진출, 조선사업, 자동차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며 한국경제 성장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이것이 정 창업주의 서거 당시 미국의 타임지가 그를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해낸 사람’으로 평가한 이유다. 아산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오늘날 한국경제에 던지는 시사점은 더욱 크다. 저성장의 돌파구로서 창의력과 도전정신 등의 가치가 절실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아산의 서거 15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생애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자유경제원이 21일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이봐, 해봤어?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을 기리다’ 정주영 서거 15주기 기념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은 아산 정주영이 지니고 있던 ‘박정희 정신’을 언급하며 “박정희 정신이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큰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 ‘잘 살아보자’는 열망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는 것, 기적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믿는 사고”라고 강조했다. 김 편집장은 아산 정주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으로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생각과 사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냄으로써 한 인간이 만든 기업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살아 있는 표본”이라고 말했다. 아래 글은 김용삼 편집장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정주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주력 기업들을 꼽는다면 이병철의 삼성, 정주영의 현대, 김우중의 대우를 꼽는다. 세 기업은 카리스마와 리더십, 그리고 경영능력 면에서 뚜렷하게 다른 상징적 캐릭터(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기업 총수들의 캐릭터는 그 기업의 모태가 어떤 업종으로 출발했느냐에 따라 흥미롭게 달라진다. 이병철의 삼성은 무역으로 출발하여 설탕과 모직으로 확대되었다. 이병철의 머릿속에는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을 잘 지어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열심히 팔면 최고라는 사고가 지배한다. 따라서 공장 잘 돌아가도록 관리를 잘 하고 무난하게 처신하는 사람 위주로 인재를 구성한다. 잘 훈련된 관리자가 그가 바라는 인재상이다. 이런 기업 문화 덕분에 ‘튀는 인물’들이 삼성에서 요직에 오르기는 힘들다. 

정주영의 현대는 건설업으로 출발하여 건설로 잔뼈가 굵은 기업이다. 건설 노가다는 업의 특질 상 언제 무슨 일이 돌발적으로 발생할지 예측불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 천재지변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능력,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면 돌파력, 태산이 무너져도 살아서 임무를 완수하는 강철같은 의지 등이 요구된다. 노가다들은 이런 특질 상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며, 성과가 생기면 나눠먹기를 잘 한다. 

김우중은 원단 장사로 시작하여 와이셔츠, 봉재품 수출로 기반을 잡은 인물이다. 한 마디로 물불 가리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다. 장사로 죽고 살다보니 기업이나 공장도 사고파는 상품일 뿐이다. 따라서 김우중은 자기가 새로 기업을 창업한 것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주력 업종이 남이 만들어서 운영하다가 부실에 빠진 기업이나 공장을 헐값이 인수하여 리모델링, 리스트럭쳐링을 한 다음 되판다. 

정주영은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종교나 정치에는 기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 분야에서는 기적이 없으며, 오로지 땀과 노력과 창의력이 있을 뿐이라고 정주영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현대그룹 모두는 정주영 생각의 소산이다./사진=미디어펜



한 인간의 위대함

한 시절 한국을 대표했던 기업군의 뚜렷한 특성 때문에 만들어진 우스개 소리가 있다. 김우중이 정글도(刀)를 들고 밀림을 헤치며 길을 내고 들어가 의류를 판매한다. 정주영은 김우중이 만든 정글 속의 소로를 밀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잘 닦인 고속도로로 삼성이 TV를 싣고 가서 판매하여 재미를 본다는 것이다.

정주영은 건설 노가다판에서 기회를 잡았고,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냈다. 그는 김우중처럼 남이 세웠다가 부실에 빠진 기업이나 공장을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인수하여 사세를 확장하는 일 따위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기업인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구상,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회사를 설립한 다음 맨땅에 헤딩하듯 알토란같이 키워내는 기업인이었다. 

이러한 기질과 특성으로 인해 정주영은 조선업도 건설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기업가로서 정주영의 일생은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생각과 사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냄으로써 한 인간이 만든 기업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살아 있는 표본이었다. 

정주영은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종교나 정치에는 기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 분야에서는 기적이 없으며, 오로지 땀과 노력과 창의력이 있을 뿐이라고 정주영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기업인 정주영을 정치판으로 불러낸 것은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실패는 없다

정주영은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목표였던 대통령 당선에 실패했다. 정주영의 성격 상 이것은 비록 시련이었을지는 몰라도 절대 실패는 아니라고 자위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낙선한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YS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실패”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정주영의 모습에서 오로지 자신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편집증 내지는 강박증세를 발견하게 된다. 

정주영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정치 도전은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실망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한다. 그는 국보위 시대를 “새로운 권력에 편승해서 손쉽게 커보려는 기업이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던 경제계의 혼란한 시대였고, 건실하고 진실한 기업에게는 암흑의 시대”라고 평할 정도로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 대한 정주영의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어쨌든 두 대통령에 대한 반감 내지는 적대감이 정주영을 정치세계로 흡인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주장일 뿐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을 심리적으로 연구한 김태형은 이들 기업가들의 공통점으로 ①돈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은 것, ②이윤추구에서 나름대로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노력한 점, ③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자기 민족에 대한 강한 신뢰, ④물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경제노선 추구, ⑤노동자 후대 등을 지적했다.1)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대의 외화를 벌어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 사진은 현장을 방문한 (사진왼쪽)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정주영이 대통령에 출마하여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의 고취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정주영은 시간이 나면 직원들, 특히 현장 근무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정주영은 매월 한 차례씩 현대중공업 영빈관 잔디밭에 기능공들을 불러놓고 불고기 파티를 열어주었다. 불고기 파티 때마다 정주영이 조선소 기능공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제일 큰 무기가 있다. 그 무기란 바로 여기 있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우수한 기능공 여러분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지금 일본에 비해 기술력이 30년 정도 뒤떨어져 있지만 여러분이 10년 내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야 우리도 잘 살고 나라도 잘살 수 있고,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모두 잘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애국자다.”2)

정주영은 한국인, 특히 회사 직원과 근로자들에 대한 신뢰감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러한 신뢰감과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고 외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주영의 발언 한 대목을 더 옮겨본다.

“나는 한국인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로 보나 역사, 문화로 보나 아시아에서 우리 민족 이상으로 훌륭한 민족은 없다. 세계 어느 만족보다도 우리는 성실하고 어질고 착하고 그러면서 우수하다.”3)

정주영의 국가 의식

정주영은 젊은 시절엔 그저 돈, 직장, 회사만을 생각하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라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는 내 가족들, 내 직원들만 챙기면서 나 자신의 발전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4)

그러던 그가 기업이 확장되면서 돈이 아닌 다른 가치들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은 국가 의식이었고, 민족에 대한 자각이었다. 정주영의 국가 의식과 민족에 대한 자각은 자동차산업 참여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정주영은 사업 파트너로 GM 대신 포드를 선택했다. 자본과 경영에 참여하여 일일이 간섭을 하는 GM의 합작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업에 대해 아무리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기업이라 해도 경영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포드와 제휴했다.

그러나 포드도 현대차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자 포드와 손을 끊고 독자 모델 승용차 개발에 나선다. 1976년 포니가 나오기까지 현대는 그룹의 존망이 흔들릴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고, 고유 모델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적나라한 압력에 맞서야 했다. 1977년 5월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는 정주영을 조선호텔로 불러 고유모델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라고 다음과 같이 압력을 넣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해 주시오.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하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현대를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포드든 GM이든 크라이슬러든 현대가 원하는 조건대로 조립 생산을 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내수시장은 물론 동남아 시장까지 현대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중동 건설시장에서도 현대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만일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현대는 앞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시아 2번째,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포니 개발성공이후 1985년 첫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의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이런 직설적인 협박에 대해 정주영은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사님의 제안은 무척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국토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도로는 인체 내의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습니다. 도로가 발달하고 자동차가 원활하게 다닐 수 있게 되면 모든 생산과 경제활동 역시 활발하게 돌아가고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좋은 자동차를 싸게 공급하는 것은 인체 내에 좋은 피를 흐르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가 자동차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명감 때문입니다.… 제가 건설에서 번 돈을 모두 쏟아 붓고 실패한다 해도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내 후대에 가서라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자리를 잡을 수만 있게 된다면 그것을 나는 보람으로 삼을 것입니다.”5)

만약 정주영이 현대자동차의 이윤추구만 생각했다면 모험이나 다름없는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미국 모델을 들여다 조립하여 팔아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다. 당시 정주영이 미국 대사의 협박에 굴복했다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미국에 종속되어 오늘과 같은 위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울산에서 조선소 건설이 진행될 무렵 정주영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서울을 출발해 울산으로 달려갔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남대문 근처를 지나가노라면, 어느 부부가 그날 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진지한 표정으로 길을 건너거나 지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정주영의 회고다.

‘그런 풍경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목이 뜨끈하게 아파오고는 했었다. 불과 얼마 안 되는 하루 벌이에도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만 생계를 꾸려갈 수가 있고, 자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 그 사람들의 엄숙한 현실이고 삶인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유대감과 존경심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래, 다 같이 노력해서 하루빨리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불끈 힘을 얻고는 했다.’6)

국내에 한계를 다한 건설업의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려 길을 찾은 정주영 명예회장은 뚝심과 배짱만으로 태국 파타니에서 나라티왓 구간의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에 성공시켰다./사진=아산정주영 닷컴



다 같이 노력해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

정주영이 기업인으로서 정치 참여에 성공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해도, 과연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론자는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가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 진정한 이유는 “박정희 정신의 구현을 위해서”였다고 본다. 

정주영이 생각하는 ‘박정희 정신’이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큰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 ‘잘 살아보자’는 열망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는 것, 기적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믿는 사고로 요약된다. 정주영이 뼈저리게 체험한 정치 건달들의 세계는 권력의 힘을 앞세워 “다 같이 나눠먹고 하루빨리 망하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이런 시스템을 권력의 힘을 동원하여 때려 부수고 “다 같이 노력해서 하루빨리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가시밭길을 택했던 것은 아닐까.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1) 김태형, 『기업가의 탄생』, 위즈덤하우스, 2010, 15쪽.

2) 송자 외 지음, 『아산 정주영과 한국경제 발전모델』, 아산사회복지재단, 2011, 157쪽.

3) 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솔 출판사, 1998, 346쪽.

4) 정주영, 앞의 책, 103쪽.

5) 박정웅, 『이봐, 해봤어?』, FKI미디어, 2002, 15~20쪽.

6) 정주영, 앞의 책, 182쪽.

[김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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