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정재영 기자]
'예인과 장인'. 평생 한가지 분야에 몸을 바친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프로 의식과 책임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영화 '해어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생의 의미를 현대 시대의 엔터테이너로 접근시켜 지와 덕을 갖춘 '예인'으로 그려낸다.
'황진이','논개'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생들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뚜렷한 기를 가지고 있다.
'해어화'에 등장하는 소율(한효주 분)과 연희(천우희 분)는 가상인물이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소율과 천희는 경성 제일의 기생 학교 '대성권번'에서 돋보이는 재능으로 남다른 아우라를 발휘한다.
소율은 전통 가곡에 조예가 깊다면,연희는 탁월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서로 가진 재능의 차이처럼,이는 두 사람의 엇갈리는 삶을 암시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박흥식 감독은 타고난 재능의 충돌을 "모차르트와 모차르트"라고 표현했다.
소율은 모차르트를 거론할때 빠질 수 없는 살리에리의 특징이 투영됐다.
본인도 정가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사랑하는 윤우(유연석 분)이 연희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엄청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이 순간은 예술의 시작은 영감과 광기에서 비롯된다는 무언의 메세지를 관객들의 가슴에 심어준다.
영화는 이렇게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확실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예인들도 인간의 원초적인 목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보는 이들에게 알 수 없는 섬뜩함을 안겨준다.
지금까지 수 많은 영화들은 예술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이성적인 영역으로 나타냈다.
영화 속 예술가들을 보면,주체할 수 없는 영감이 때로는 광기로 거듭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해어화'는 여기에 덧붙여 혼란을 가중시킬만한 가슴 아픈 시대상을 투영시켰다.
1943년 일제 강점기는 음악의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점점 밀려오는 대중가요(율희)에 저항하는 정가(소율)의 대립과 일치한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욕망과 예술을 넘나드는 예인이자 한 인간의 다양한 삶을 통해 평소 알지 못했던 기생의 세계를 전한다.
화려하지만 어딘가 서글픈 영상,시대를 반영한 음악. '해어화'는 예술이라는 분야에 포괄되는 다채로운 요소를 총 망라해 새로운 '엔터무비'로서의 비전을 제시한다.
이는 미모와 지식,예술적 역량을 모두 보유한 팔방미인 기생이 걸었던 노선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영화의 재미는 더욱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어화'는 오는 4월 13일 개봉된다.
[미디어펜=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