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정치판이 요동칠 조짐이다. 새누리당의 공천파동, 더민주의 야권분열과 셀프공천 소동, 야권연대를 둘러싼 국민의당의 내분. 그리고 공천 반발로 빚어진 탈당과 무소속 출마 강행. 말도 많고 탈도 많던 4·13총선이 끝났다. 대선주자들의 예비고사 성격을 지닌 이번 20대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양상을 보였다.
최종 성적표는 과반 붕괴를 넘어 1당마저 빼앗긴 새누리당의 참패, 호남에서는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한 더민주의 선전, 호남의 새로운 맹주로 등극한 국민의당의 돌풍, 무소속의 약진으로 일단락됐다. 1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유권자의 선택은 새누리당의 '국정안정론'과 더민주의 '경제심판론'보다 국민의당이 내건 '양당심판론'으로 쏠렸다. 거대양당으로 양분된 최악의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이다. 수권정당을 빼앗긴 집권여당과 더민주의 수도권의 압승, 호남의 맹주로 등극한 국민의당 등 정치지형이 바뀌며 향후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20대 총선은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 등 총 300석을 놓고 치러졌다.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은 122석(비례대표 17), 더불어민주당은 123석(비례대표 13), 국민의당은 38석(비례대표 13), 정의당은 6석(비례대표 4) 무소속 11석으로 집계됐다. 16년만에 여소야대 정국으로, 20년만에 3당 체제로 바뀌었다.
국민의당 안철수의 녹색바람은 거셌다. 안철수 대표는 4·13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호남의 맹주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국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사진=연합뉴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새누리당의 진박 논란과 김무성 대표의 옥새파동으로 불거졌던 공천후유증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철옹성 같던 낙동강 벨트가 허물어졌다.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텃밭인 대구의 민심이 갈라졌다.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무소속 바람은 거셌고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던 김문수 후보는 야당인 더민주 김부겸 후보에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더민주는 목표의석을 넘는 선전을 했지만 야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호남을 국민의당에 내줬다. 선거 막바지 문재인 대표의 잇단 호남 읍소도 무위로 끝났다.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서를 내세웠지만 돌아선 호남민심은 냉정했다. 호남의 맹주 자리는 더민주에서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다. 더민주는 호남을 잃으면서 정통 야당이란 상징성마저 퇴색하게 됐다.
국민의당 안철수의 녹색바람은 거셌다. 안철수 대표는 4·13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호남의 맹주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국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공천 파동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김무성 대표와 호남을 빼앗긴 문재인 대표에 비하면 대권을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안철수 대표는 막판까지 시달렸던 야권연대를 거부했던 짐도 덜었다. 거대양당 심판론이 먹혀 든 만큼 앞으로 원내 활동에서 보폭도 넓어졌다.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를 쥐면서 때로는 새누리당과 때로는 더민주와 연대하며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했다. 최악의 국회로 불리는 19대 국회의 거대양당 횡포에 제동이 걸리면서 ‘제3당’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3당의 총선 성적표는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할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김 대표의 사퇴 여부와 관련없이 새누리는 향후 계파 갈등과 내홍에 시달릴 우려가 높다. 김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도 타격을 받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현 정부의 동력도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야당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 활성화 관련법 처리도 어렵게 됐다.
특히 공천 갈등으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의 복당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총선 전 새누리는 복당불가론을 외쳤지만 여소야대 정국으로 입장이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역할론 등을 놓고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도 호남의 반문 정서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호남 지지를 호소하며 문 전 대표는 정계 은퇴의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이 약속에서 문재인 대표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밖에도 3월 말 김종인 대표와 친노 주류가 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충돌한 것도 화약고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김 대표의 자택을 찾아 설득 끝에 하루만에 봉합되기는 했지만 앙금은 살아 있다. 중도 성향 야권 지지층에선 "운동권당 청산을 내걸었던 김 대표가 결국 비례 2번을 받는 것으로 운동권과 타협했다"는 실망감이 쏟아졌다. 김종인 대표는 문 전 대표와 친노 운동권이 내세운 임시 사장이란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호남을 잃어버린 현 상황에서 친노와 비노의 주도권 싸움은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향후 정계개편의 진원지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야권의 정통성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차기 대선에도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호남 맹주 자리다. 둘째, 수권정당 자리를 빼앗기고 안방불패마저 깨진 여당은 선거 책임론과 계파갈등이다. 셋째, 16년만에 다당 체제가 형성됨으로써 거대 양당체제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중간지대 의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넷째, 공천에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원내에 진입한 탈당파의 행보다.
거대양당의 안방불패 공식이 깨지고 야당의 호남 맹주가 바뀐 정치 지형도는 차기 대선가도의 밑그림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안철수발 정계개편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당 약진은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거대양당의 오만한 정치에 지친 국민들은 ‘제3당’을 만들어 희망찾기에 나선 것이다. 20대 국회가 유권자들의 선택과 심판을 제대로 읽었으면 한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