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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반대할 자본론', 민주노총의 교과서인가?

2016-04-23 11:0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원숭이도 반대할 자본론』, 하다하다 이제는 원숭이도 파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말하기 전에 우선 동물 원숭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원숭이라는 동물은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나나를 얻기 위해 나무 위를 넘나든다. 혹여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그들은 인간들처럼 4대보험 중 하나인 산재보험도 없다. 떨어지면 죽거나 불구가 되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다.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서 원숭이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바나나라는 수확물을 얻기 위해 담보되지도 않는 목숨을 걸고 나무 위를 돌아다닌다. 예를 들어 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가 있고, 그렇지 못한 원숭이가 있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는 당연히 바나나라는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할 것이다. 

어느 날 바나나를 평소보다 더 많이 수확하다보면 나무 타기에 미숙한 원숭이한테 자신의 이름으로 바나나를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 그런 이윤을 비난하고, 빈부격차의 심화라고 비난하여 강제로 분배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숙한 원숭이는 나무를 잘 타려 스스로를 숙련시키려 할 필요성과 이유가 사라지고,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는 자신이 아무리 바나나를 많이 획득하여도 강제로 분배라는 이름으로 뺏기게 된다. 

그 미숙한 원숭이는 호의가 계속되니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진정 능력이 뛰어난 원숭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원숭이가 이 책의 저자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고, 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앞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내용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왜 동물 원숭이를 예를 들었냐고 물으면, 단지 책 제목을 비꼬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오래 전에 만든 것으로 자본론이라는 원론을 비판하기에는 내용이 방대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당을 표방한 국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20여 년 전에 몰락했다. 남은 국가들은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를 수용하거나 공산당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독재세습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책의 저자를 비판하는 것은 당장 책의 위험성을 의식해서 쓴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동구권이 망한 것을 직접 본 사람이 많으니까 자본론 자체가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장 많이 비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책들을 버리지 않고 대여할 수 있게 놔둔 도서관이다./자료사진=도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표지



이 책의 저자는 과거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활동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일심회 사건 이후로 종북이라는 NL이 드러나 PD계열과 분열되었다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PD계열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야합하였으며, 이후 주류정당인 통합민주당과 연대하였다. 그러나 2014년에 이 정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다. 여전히 해산된 정당 출신 당원들 대다수는 자신들의 이념이 옳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이나 판결은 무조건 거부하며 지독한 이념투쟁을 벌이고 있다. 저자도 이들처럼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으니 책을 썼을 때도 책에 대한 비판이 없다. 분명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동구권은 망했는데, 왜 망했나에 대한 비판은 2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목차는커녕 내용의 한 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본론이 좋았으면 진정으로 마르크스를 위한다면 '아, 당시에 자본론이 망한 것은 이러이러 했고, 책의 완성된 시기가 200년이 넘었기에 지금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실패한 자를 추종해서 무엇이 남을까?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하고 최소한 개량에 대한 의지는 없었다.

책에서 원시 공산제 이후 고대 노예제, 중세 농노제, 근대 자본제들을 통해 노예, 농노, 노동자를 착취당한다는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 하지만 셋은 엄연히 다르다. 이들이 다르다는 것은 시대는 분명히 발전한다는 증거이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주의 물건이 되어 언젠가는 팔릴 수도 있는 신분이다. 농노는 자신의 토지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을 관리하는 영주의 토지에서도 강제로 농사를 지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에 대한 임금은 모두 자신의 것이 된다. 노동자로 바뀔수록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자본가에게 몸뚱이를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되는 처지로 비하했다. 노예와 농노는 자기가 하기 싫다고 일을 관둘 수가 없다. 하기 싫으면 무조건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했다. 반면에 노동자는 일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저자도 민주노동당에 있었으면서 민주노총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민주노총이 일하기 싫어서 파업하고 돈 올려달라고 투정하는 것은 아예 연례행사 수준이 아닌가? 고대나 중세에 저런 식으로 파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반역죄로 사형당할 것이다. 이런 자유를 누리면서 저자는 그런 자유를 외면하고 마치 사회를 부정적으로 본다.

끝부분에는 반미주의적인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목차 13강 '제국주의-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이 부분에 첫 번째 부제목이 '제국주의의 대표국가 미국’이다. 다른 국가는 없다. 오직 미국만이 있다. 제국주의를 설명하려면 과연 미국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될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원론적으로 아무 반성 없이 추종하는 저자는 200여 년 전 당시의 상황을 알면서 이러는가?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에 정작 제국주의 국가는 영국, 프랑스가 대표적이었다. 그 이전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정도였다. 미국은 제국죽의 국가인 영국에서 독립한지 100여 년이 지났고, 내부에 개발해야 될 땅이 많거니와 먼로 대통령의 고립주의로 인해 식민지가 별로 없었다. 가져간 식민지도 필리핀, 쿠바였는데 이들도 스페인이 선점한 지역을 뺏은 것이었다. 그러니 미국이 제국주의의 대표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러시아를 가본 적이 없고,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떠돌아 다녔을 뿐 소련이나 대서양 건너 미국에는 관심이 없었다.



저자가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주장하고 싶은가본데,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왜 마르크스 시절 마르크스의 의도를 모르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가 주장한 노동자 혁명은 저자가 주장하는 미국은 커녕 훗날 레닌이 일으킨 소련도 아니다.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영국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마르크스는 러시아를 가본 적이 없고,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떠돌아 다녔을 뿐 소련이나 대서양 건너 미국에는 관심이 없었다. 목차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미국을 비판하기 이전에 영국, 프랑스 등의 제국주의부터 비난해야 되지 않을까?

책의 저자를 이토록 비판하는 것은 당장 책의 위험성을 의식해서 쓴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동구권이 망한 것을 직접 본 사람이 많으니까 자본론 자체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크게 비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책들을 버리지 않고 대여할 수 있게 놔둔 도서관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면 부정하는 이런 책이 도서관에 왜 놓여있어야 하나 반문한다. 공공 도서관에서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는 책이 버젓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최성환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도서고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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