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어제와 오늘
2015년 12월 30일 신문지상과 TV에 떠들썩한 기사가 있었다.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를 빗자루로 때리고 침을 뱉고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고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사들을 존중하고 있고 이런 일은 매우 특정적인 사건이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학교의 교육적인 환경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12월 23일에 발생했는데, 5일이 지난 12월 28일에야 학교와 교육청은 그 사건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12월 30일에 매스컴에서 기사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학생 2명이 휴대전화로 폭행과 욕설 장면 동영상을 찍어 SNS로 전파하여서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12월 23일에 이런 사건을 저지른 비양심적인 학생들은 5일 동안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교육적인 지도를 받지도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학교와 사회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슬픈 현실이고 심각한 교육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은 어두운 장소에서 은밀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 사건을 많은 학급 학생들이 목격을 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가담을 한 학생들도 있었고, 웃으면서 지켜본 학생들도 있었고 침묵으로 일관한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학급 학생들 중에서 학급회장이나 부회장 등 어느 학생도 그 학급의 담임교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 담임교사도 그 사실을 보고 받고 모르는 척 등한시했단 말인가!
담임교사는 아니더라도 다른 교사들에게 그리고 그 학교의 생활지도부 교사들에게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 누군가는 알렸는데 다른 교사들도 무관심하고 퇴근을 하였다는 것인가! 학생들이 귀가하여 저녁 식사 시간에 누군가는 학부모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내용들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럼, 그 사건의 얘기를 들은 학부모는 그 누구도 학교 교육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그 학교의 교감이나 교장에게 전화 한 통화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참으로 이것들이 슬픈 현실이고 심각한 이기주의적인 분위기인 것이다. 아니, 학교에 알려봐야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면, 그 누군가는 교육청이나 교육부나 경찰서에 전화 한 통화로 고발이라도 해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교사가 학급에서 학생들에게 신체 폭행을 당한 일이 어떻게 5일 간이나 침묵 속에서 등한시되었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희망은 학교에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자료사진=나이스대국민서비스 홈페이지
이 파렴치한 학생들이 그날따라 돌연적으로 이런 행동들을 했었겠는가! 평상시에는 매우 착실한 학생들이었겠는가! 아마도 이런 학생들로 구성되어진 학급은 평상시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내재하고 있었으며,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무례한 행동들을 했었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12월 23일이다. 그러니깐 이제 학생들은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을 앞두고 있다. 조금 있으면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상급 학년으로 진학하는 것이다. 아마도 학급의 지도력은 레임덕의 현상에 빠져 있어서 공백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그 학급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두려워해야 할 존재들은 없었을 것이다.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교칙도 이 학생들에겐 아무런 통제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깐 연약해 보이는 기간제 교사에게 모욕을 주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다 해도, 자기들을 지도하고 꾸중하고 혼을 내고 야단을 치고 잔소리를 하면서 벌을 줄 사람은 이 학교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기들이 저지른 이 행동들은 학교에 곧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기들은 교칙에 의해서 처벌을 받거나 퇴학까지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학생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 학교에서는 그런 괴롭고 귀찮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학생들은 이런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이런 학교의 교육적인 분위기를 우리는 주시하면서 관심을 갖고 경계해야 되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과거의 학교와 비교하여 많은 경제적인 혜택과 첨단 과학기슬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내가 1976년 3월에 어느 고등학교에 초임교사로 부임했을 때에는 학교에는 자가용이 한 대도 없었다. 당시에 교사들은 매일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가방에 넣고 출근을 하였으며, 참으로 박봉의 힘든 생활이었다.
그리고 모든 학교업무는 수작업으로 기록하고 계산하며 생활기록부도 직접 펜으로 기입하는 시대였다. 지금은 학교 마당들에는 중형차와 외제차들을 포함하여 자가용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학교업무는 교사들의 책상에 비치되어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 의해서 편리하게 처리되어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한 학급의 학생 수는 60-7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명 정도이고 교사들의 경제적인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힘든 학교 환경 속에서도 교사들은 지금보다는 교육적인 열성과 정의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교사들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신체적인 폭행의 반항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언어적인 반항과 무례한 행동들이 있었다, 그런데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학생이 있었다면, 그 학생은 그 다음 날에는 학교에 등교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곧 학생 징계 선도위원회가 열릴 것이고, 그 학생에 대한 처벌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생활지도부 교사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례한 행동을 목격하거나 보고를 받은 다른 교사들에게 그 학생은 귀찮고 힘겨운 지도를 받아야 하며, 그 학생의 학부모는 바로 학교로 소환이 되어서 전학이나 퇴학의 절차까지도 밟아야 했었다.
2015년 12월 30일 신문지상과 TV에 떠들썩한 기사가 있었다.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를 빗자루로 때리고 침을 뱉고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고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자료사진=미디어펜
지금 학교의 분위기는 자기만의 well-being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서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교사들은 개인적인 편안함만을 생각하고 교육 행정가들은 출세 지향적인 길만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학교에는 아직 20살이 안 된 어린 영혼들의 올바른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올바른 배움에는 물론 정의감과 윤리의식과 양심에 대한 가르침도 포함되어져야 한다. 학교의 개울물이 합쳐져서 사회와 국가의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학교에 정의감과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정직한 사회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의 희망은 학교에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 대한민국은 정직하고 책임 있는 시민들로 이루어질 것이고, 더욱더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명호 전직 교사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