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겐 손목시계가 7개 있다. 모두 내 눈에 들어 돈을 주고 직접 산 것이지만 그 중 오래된 것 하나는 예외다. 아버지가 제대 기념으로 마련해주신 시계다. 지금껏 15년간 배터리 한번만 갈았을 뿐 가장 튼튼하다. 디자인은 구식이지만 심기일전해야 할 중요한 자리에는 꼭 차고 나간다.
내게 손목시계하면 아버지가 주신 그 시계가 떠오른다. 그 시계는 시간의 축적과 물질의 축적 모두를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도 그러하리라 본다. 성경 속 노아의 이야기에서 조물주가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했던 지상명령을 차치하고라도 인류에게 깃들은 유전적인 본능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축적과 확장. 그 본능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이어진다.
여기서 필수적인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다. 아비는 수고로움과 땀을 희생한다. 어미는 생명력과 마음을 희생한다. 시간과 공을 들이는 이 모두는 다 자식을 위해서다. 물론 세상에는 못난 자식, 못난 부모가 많다. 서로를 죽이는 부모 자식 관계도 있지만 논외로 하자.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 자신, 개인이지만 그런 내가 맺는 최초의 관계이자 최대의 관계는 가족이며 부모다. 개인으로 태어나지만 이런 나를 형성하는 가장 큰 영향력은 부모에게서 온다.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관계 중에 유일하게 공산주의 방식인 것이 있어요. 가족. 가족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모든 것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입니다.” 스승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맞다. 부모가 사회생활을 하며 무엇을 어떻게 벌어오든 자식들과 함께 그 수확물을 고스란히 나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의 욕구와 필요를 최대한 만족하는 선에서 정리되고 소화한다. 아픔 또한 함께 다. 다치고 혹여는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더라도 그 슬픔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말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온전한 슬픔은 함께 살았던 가족의 선에서 갈무리된다.
지금껏 대대로 이어진 축적과 확장의 토대는 부모의 희생이요, 눈물이었다./자료사진=pexels.com 제공
지난 몇 년 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크게는 천안함 폭침, 세월호 사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수많은 자식들과 부모가 아파하고 절규했다. 작게는 각각의 가정에서 사고와 사망, 육체적인 다침은 물론 서로에게 말로 상처 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진실은 아버지라는 이름과 어머니의 마음은 그 자리 그대로라는 점이다. 아버지라면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다. 어머니라면 끝내 아이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다. 지금껏 대대로 이어진 축적과 확장의 토대는 부모의 희생이요, 눈물이었다.
수십 년으로 시야를 넓히면 참담했던 전쟁과 보릿고개라는 배고픔, 산업현장에서의 역군과 민주주의 정착을 지나 눈부신 경제발전이라는 열매가 축적됐다. 자본과 노동, 시간의 축적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한 한반도 최초의 풍요로움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 모두 선대, 조부모세대의 지난한 수고로움을 통해서였다.
오늘 5월 8일, 어버이날은 감사해야 할 날이다. 일년 365일 해도 모자랄 감사를 모아 표하는 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부모에게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어머니라면 끝내 아이들을 눈물로 안아줄 수밖에 없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다. 2015년 8월 4일 종로구 조계사에서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소원을 빌며 절을 하고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김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