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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천안함·연평도 포격…한미동맹 가치 일깨우다

2016-05-10 10:4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올해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동맹을 맺은 지 63년이 되는 해다.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맹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1950년 당시 미국이 처음부터 한국과 한미동맹을 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극적으로 체결하여 흔들림 없는 안보의 기틀을 놓는데 성공했다. 1950년 6.25전쟁부터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유경제원은 지난달 20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한미동맹-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패널로 나선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는 “이승만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확산시키는 게 어려운 일”이라며 “한미동맹의 경우도 주한미군 주둔과 그로 인한 안전보장은 지난 63년 동안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그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배 기자는 “대한민국 사람들 일부는 오히려 주한미군범죄, 미군주둔으로 인한 지역발전 저해, 독립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 실추 등을 내세워 미군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 철수를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배진영 기자는 “지난 수년간의 안보위기(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북한 핵실험 등)를 겪으며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삼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앞으로의 한미동맹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우남 이승만이 마련했던 가장 호소력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져도 ‘미군이 있으니까 북이 도발해 오지 못할 것이다’, ‘미군이 있으니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아래 글은 배진영 기자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국방철학-對美인식·정책과 함께 이해해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터파기 공사를 잘 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터를 깊고 넓게 파야 건물이 튼튼하다. 하지만 터파기 공사를 아무리 잘해 놓아도 그게 밖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밖에서 보이는 화려하고 멋진 건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은 겉에서 보인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박정희를 존경한다. 심지어 그 시대에 박정희의 반대자였던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이승만이 해 놓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도입, 농지개혁, 교육 등과 같은 터파기 공사의 가치는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또 하나, 이승만이 해 놓은 업적은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당시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도입, 교육확대, 농지개혁 등). 이승만이 이루어놓은 업적들은 이제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들이다. 이승만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확산시키는 게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경우도 비슷하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그로 인한 안전보장은 지난 63년 동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주한미군범죄, 미군주둔으로 인한 지역발전 저해, 독립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 실추 등을 내세워 미군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그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마음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난 수년간의 안보위기 (천안함사태, 연평도포격, 북핵실험 등)를 겪으면서 주한미군,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삼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젊은 층, 특히 군 복무 중이거나 갓 병역을 마친 젊은이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제법 된다고 한다. 북의 도발로 긴장이 높아져도 ‘미군이 있으니까 북이 도발해 오지 못할 것이다’ ‘미군이 있으니까 결국은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곧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되거나 유사시 자동 파병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휴전선상에 배치되어 인계철선(引繼鐵線)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일베에서는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천조(天朝)’라고 하던 데서 나온 말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조국(千兆國)’, 즉 ‘국방예산으로 1천조원을 쓰는 나라’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미국의 힘에 대한 동경과 믿음이 담겨 있다. 그 ‘천조국’을 동맹국으로 붙잡아 놓은 게 이승만이다. 잘만 하면 ‘한미동맹’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산타 이승만’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좌파들에게는 가장 저주스러운 재앙이겠지만 말이다.

이승만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한미동맹’은 이의의 여지가 없는 큰 업적이다. 때문에 발표자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토론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작품을 만든다는 취지에 따라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1. 이승만의 국방정책과 국방철학

사실 ‘산타 이승만’의 선물 가운데 하나로 ‘호국’, 즉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이 공산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내용이 있어야 했다. 이승만의 구체적 업적을 밝히는 데 주력하다 보니 ‘한미동맹’이 주제로 선택되었고, 발표자는 그 주제에 충실한 발표를 해 주었다. 하지만 ‘호국 대통령’ ‘국가보위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의 업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글 앞부분에 약간의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글 앞부분이나 결론 부분에서 이승만의 국방정책, 국방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룬다면 좋을 것 같다.

2. 한미상호방위조약 前史에 대한 언급 필요

이승만은 일제시대에 ‘외교독립론’을 주장하면서 미국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힘을 알았기에 ‘용미(用美)’를 위해 노력했고, 그 절정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때문에 한미방위조약에 대해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승만의 대미인식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 건국~6‧25에 이르는 시기 미국을 붙잡기 위한 이승만의 노력과 실패(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우습게 알고 스탈린으로부터 유럽을 방위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군을 빨리 철수시키려고 안달을 했던 일, 건국 후 이승만이 요청한 군사원조 요청들을 거절했던 일, 애치슨 선언, 태평양방위공동체 구상 등)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의미와 가치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베에서는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른다. '천조국(千兆國)', '국방예산으로 1천조원을 쓰는 나라'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미국의 힘에 대한 동경과 믿음이 담겨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3. 작전권 문제 등

이승만 대통령은 6‧25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맞아 국군의 작전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위양(委讓)한 이후, 국군의 작전권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안보이슈이다. 특히 북한과 좌익세력은 이를 이승만의 비자주성,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비자주적인 나라, ‘미제(美帝)의 식민지’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한 주장에 혹해서 한미연합사 해체를 열심히 추진했던 대한민국의 국군 통수권자도 있었다.

작전권 문제는 한미방위조약과는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승만 시절 작전권 위양의 경위, 작전권의 개념과 본질, 전작권 논란의 문제점 등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언급이 있으면 ‘한미방위조약’이 왜 우리나라, 국군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후손 대대로 혜택을 미치는 ‘이승만의 선물’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곧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되거나 유사시 자동 파병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휴전선상에 배치되어 ‘인계철선(引繼鐵線)’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미군의 평택기지 이전 등으로 이런 기능은 약화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보완하는 이러한 장치들에 대한 언급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4. 해외의 사례 

이승만이 미국에게 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을 때, 미국이 거부했던 이유는 한 마디로 “우리는 양자방위조약을 함부로 맺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일본과 안보조약, 필리핀과 방위조약을 맺었다. 양자조약은 아니지만 호주‧뉴질랜드와는 앤저스동맹을 맺었다. 패망한 월남공화국과도 방위조약을 맺었다.

이러한 방위조약들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무엇이 같고 다른지, 특히 월남공화국은 왜 미국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었음에도 패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 한미방위조약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지난 수년간의 안보위기 (천안함사태, 연평도포격, 북핵실험 등)를 겪으면서 주한미군,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삼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북한 김정은의 도발로 긴장이 높아져도 '미군이 있으니까 북이 도발해 오지 못할 것이다', '미군이 있으니까 결국은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자료사진=연합뉴스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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