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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규명 없는 구조조정, 배가 또 산으로 갈 수 밖에"

2016-05-12 08:45 | 데스크 기자 | office@mediapen.com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판 양적 완화 필요성' 언급을 계기로 양적 완화 통화정책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총선과정에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제기한 '한국판 양적완화(QE)' 통화정책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구조조정이 초미의 과제이므로 산업은행이 기업구조조정 선도 과정에서 신규 자금 공급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은이 산은채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도 직접 인수해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분할상환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위기, 한은의 선택은

작년 한 해만 조선3사에서 8조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산업은행도 1조9000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는 등 급증하고 있는 기업부실과 그에 따른 금융부실 증가추세를 고려해 볼 때 기업부실이 중요한 과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는 대상기업의 존립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투자되어야 하는 자금,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에 필요한 자금, 부실여신으로 잠식된 금융기관 자본을 보완하기 위한 자금 등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러한 자금은 국가에서 국채를 발행하거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충당되어진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한국은 어려운 재정여건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은행의 적절한 역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금 호미로 막지 않으면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산은채권을 인수해 산은이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산은이 지난 수년 동안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켜오면서 문제를 키워온 것은 물론 심지어 지난 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기업부실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방만경영은 물론 산하 관리기업을 구조조정보다는 인사해소창구로 여기는 이해상충 문제, 낙하산인사들 마저 대거 부실기업 고위직에 임명해 왔던 도덕해이 문제를 보여온 과정을 보면 산은채권 인수는 기업구조조정은 안되면서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우려가 앞선다.

더욱 산은에 한은 발권력으로 자금을 공급하고도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내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되고 대선 후에도 국회청문회 등 여려 정치경제적 문제를 초래할 시한폭탄이 될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산은채권을 직접 인수하기 보다는 부실기업채권 매입을 위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채권이나 부실여신으로 자본건전성이 훼손된 금융기관의 자본보전을 위한 '자본확충펀드'에 대출하는 대책이 오히려 바람직해 보인다.

1997년 금융위기시 자산관리공사에 설치되었던 부실채권정리기금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총 33조 5734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 가운데 초기 기금의 현금조성을 위해 2조원의 채권을 한국은행이 인수해 현금을 마련했다. 나머지는 채권을 금융기관 부실채권대금으로 지급했다. 총 기금 중 12조원은 예금보험기금으로 이관하고 21조 5734억원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매입해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은 2002년 11월 까지 111조 6000억 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2012년 11월 법적으로 운영이 종료되고 2013년 3월 청산된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19%의 회수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은 영여금 3000억 원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국민행복기금에 사용되기도 했다.

자본확충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이 잠식돼 자본건전성이 훼손된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 주기 위해 2009년 4조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한은은 3조6000억 원을 산은을 통해 대출했다. 산은은 자본확충펀드(특수목적회사, SPC)에 재대출해 3조9560억원 시중은행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를 매입하게 해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했다.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은행의 자본조달이 원할해 지자 한은은 대출금을 회수했다.

이 밖에 '금융안정기금' 대출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안정기금은 2011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에 따라 조성됐지만 2014년 말에 신청기간 만료로 휴면상태다. 법 개정을 통해 신청 기간만 연장하고 지원대상에 국책은행 등을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기업부실 증가와 구조조정으로 경색될 수 밖에 없는 회사채시장 안정에 유용한 기금이다.

미국에서도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2008년 10월 부시행정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설치했다. 당초 7000억 달러 규모로 설치되었으나 도드프랭크법에 의해 4750억 달러로 축소되었다. 이 중 총 4310억 달러가 지출되었는데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2014년 12월 4417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종료했다.

이러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다시 조성해 사용할 것인가, 산업은행 산금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산업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구조조정을 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조직이 전문성 추진력 등 면에서 보다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에 적절할 것인가, 어느 조직의 구조조정과 부실채권정리이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등 다각적인 검토를 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다시 부활해 부실채권정리기금 이사장 또는 보다 포괄적인 구주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전권을 부여해 구조조정을 추진토록하는 것이 산은주도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조조정의 시급성과 실효성을 고려할 때 이사장이나 위원장은 장관급 정도는 되어야 구조조정 추진이 가능할 정도의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시에는 금융감독위원회에 '구조개혁기획단'을 설치하고 단장을 금융감독위원장이 겸임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의 정부보증을 위한 국회동의, 한국의 산은출자를 위한 산은법 개정, 한은의 산금채 매입을 위한 한은법 개정 모두 여소야대 국회를 거쳐야 하는 고비가 있다.

우선 구조조정이 시급성과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을 고려해 여소야대 국회 동의보다는 한은 금통위결정으로 가능한 ‘자본확충펀드’로 산은의 자본확충을 추진하고 수은에 대해서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한은 수은출자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이 확충된 다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부실채권정리기금', '금융안정기금'은 물론 구조조정과정에서 존속시켜 키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우량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소요되는 '성장동력강화기금' 등 소요자금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기적으로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금융불안이나 위기시 최종대부자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은법에 이미 명시된 한은의 금융안정기능을 보다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금융기관조사권 등 수단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한은법 개정도 필요하다. 현재는 자료제출요구권 공동검사권만 있는 데 이 정도로 최종대부자로서 금융안정기능을 선제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미흡하다.

10~20조 원에 달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되는 구조조정인 만큼 책임을 확실하게 규명하고 물어야 국민들이 납득하고 위기재발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2대 해운사 3대 조선사 부실정리에만도 수조원이 투입될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직접 국채를 발행하던 한은매입채권을 정부가 보증을 하던 이는 모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것이다. 물론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처럼 잘 만 하면 10여 년 후 원금회수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국민의 혈세투입은 불가피하다.

구조조정 핵심은 주주 경영진 채권단 노조의 손실분담 원칙 준수가 기본이다. 특히 채권단이 국책은행이라서 채권단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기업부실이 이처럼 악화된데는  일차적으로 기업경영진 대주주 노조 등 기업차원의 문제가 있다.

해운사는 호황일 때 장기용선계약을 해 용선료가 지금의 5배가 되어 아무리 실어 날라도 적자만 커진다고 하니 도무지 경영진이 글로벌경제나 해운업 전망 등 경영을 알기나 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대주주는 자율협약 신청전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니 도덕해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부거래 등 법률위반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 한다더니 이제 엄청난 천문학적인 부채만 남기고 그동안 50~90억 원의 고액 연봉을 받아온 대주주 경영자는 경영권만 포기할 터이니 수조원의 빚은 국가가 재정으로 하든지 한은 발권력으로 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노조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로는 구조조정이 순조로울 리 없다.

글로벌 경제불황에도 과잉투자를 해 온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적자누적에도 과도한 보수만을 요구하고 있는 강성노조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경영진은 잘 못된 경기전망을 토대로 과잉투자를 하고 노조는 생산성 보다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기업을 부실화시켰다. 앞으로 강성노조문제와 더불어 무능대주주경영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경제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이 다시 한번 각인되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기업의 행태에 대해 채권금융기관은 채권부실 방지를 위해 대출시 철저한 심사를 하고 대출 후에도 상시 모니터링을 하면서 상시 적기에 선제적으로 대처를 강구하지 않은데 대한 책임이 있다. 2011년부터 글로벌경제가 재침체하면서 해운물동량과 조선수주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업대출에 대한 사전심사와 사후감시를 해야 할 채권금융기관은 무엇을 하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책은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해야 할 국책은행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국책은행도 산하 관리기업이 인사해소 창구역할을 하므로 구조조정을 미루는 도덕해이 소지가 있다.

산업은행은 관리회사가 268개나 된다고 하니 한국 최고의 문어발 재벌이다. 한 마디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책은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은행규율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들이 그러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것이 감독당국의 책무다. 이번 기업부실 과정에서 그러한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감독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감독당국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전문기관으로서 순수한 경제논리에 의해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준수여부를 감독해야 한다.

1997년 금융위기시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관치금융에 있고 그 연결고리의 핵심에 독립성 없는 감독체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에 독립된 감독체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핵심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순수한 경제논리만을 토대로 금융기관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독할 수 있는 금융감독제도와 감독인데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정치권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위원회 위상 강화 등 거꾸로 가다 드디어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주기적으로 위기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다시 문데가 된 만큼 감독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이처럼 기업차원의 기업경영진 대주주 노조와 금융기관 감독당국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느 한 부문에서만 잘했어도 이처럼 문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책임규명도 없이 수 조원의 국민혈세만 투입된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재발방지는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이런 기업부실과 혈세투입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책임을 규명하고 잘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 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위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배가 산으로 가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토대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여야정치권은 구조조정관련법규를 정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대기업을 제외하고 공급과잉업종으로 제한해 실효성이 반감된 사업재편지원특별법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기업들 대부분이 대기업이고 비록 공급과잉업종이 아니더라도 신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재편이 시급한 점을 감안해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구조조정이란 관련 업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사라져 부실해 진 부분을 도려내고 신성장동력 부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므로 기업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이 패키지로 추진돼야 효과가 크다.

이 과정에 정치논리가 개입돼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나가면 정치실패가 발생한다. 내년 대선때 후유증이 클 우려도 있다. 과거 잘나가던 LG반도체를 대북사업에 협조적이었던 약체의 현대전자에 정치논리로 합병시켜 탄생시킨 하이닉스가 그 후 15년 여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둘째, 정부는 구조조정방향, 소요자금조달, 일정, 실업대책 등 큰 그림만 그려야 한다. 그동안 구조조정은 제대로 못하고 부실만 키워온 국책은행을 여전히 구조조정 주도기관으로 할 것인지 부실채권정리기금 등 새로운 기구를 통해 할 것인지, 부실여신으로 악화된 은행자본금은 어떤 방식으로 보전할 것인지, 구조조정과정에서 나오는 실업자와 장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 큰 정책방향만 설정한다.

이 보다 더 나가면 정부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실업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조선 철강 등 구조조정으로 타격을 입을 지역이 동남권인 점을 고려해 동남권신공항건설도 좋은 대책이다. 이런 대책과 패키지로 추진할 때 반발을 최소화해 구조조정이 추동력을 가질 수 있다. 단순히 고용특별업종으로 지정해 실업급여 몇 개월 더 주는 정도로 강성노조의 발발을 무마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채권은행은 1~2년 정도를 내다본 미래지향적(forward looking criteria: FLC)인 기준에 의해 마련된 기업정상화계획을 토대로 산업전문가와 함께 재무상태를 분석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지, 지급불능인지를 판단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기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은행 주주 경영진 노조의 손실분담 원칙하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무재조정과 금융지원 등 채권은행과 기업 간의 자율협약이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살리고 지급불능기업은 법정관리로 가는 등 청산절차를 진행한다. 감독당국은 채권은행의 추진상황을 감독한다.

넷째, 현장의 구조조정은 구조조정전문가가 전권을 가지고 추진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배제된 구조조정전문가가 추진함으로써 정부개입과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고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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