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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정권과 나치독일은 닮은꼴

2016-05-16 11:3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재의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체제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을 비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북한인권NGO 'SARAM' 대표는 지난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6 북한 정보 자유화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정치 구조와 이념 측면에서 북한은 오히려 파시스트 정권에 더 가깝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대표는 “북한의 인권상황이나 수령우상화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독일의 1933-1945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유의미하다”며 “독일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적인 교훈이 있다면, 전체주의 체제 하의 수많은 사람들이 외부 정보를 갈구했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대표는 “친족적 책임(연좌제), 강제수용소, 인권탄압, 수령 개인을 향한 충성서약 등의 관점에서 나치 독일과 북한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대표는 세션2에서 ‘독일 역사를 통한 북한 정권의 이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탄압, 조작, 프로파간다의 메커니즘을 통하여’를 주제로 발표했으며, 행사는 통일아카데미와 국민통일방송, ICNK가 공동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 및 대북방송협회가 후원했다. 아래 글은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독일 역사를 통한 북한 정권의 이해
: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탄압, 조작, 프로파간다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역사를 통해 배우고 현재의 위기를 이해한다

“과거를 잊은 이들은 그것을 반복할 뿐이다.”  

역사 속의 상황과 현재의 위기를 비교하는 것은 좋은 전략임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교를 위한 역사적 상황의 선택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남북한 갈등 상황의 경우, 가장 큰 관심은 통일이 될 것이다. 독일은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분단 상황을 극복해 냈고, 그런 만큼 독일의 역사적 상황을 선택하여 배우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독일이 통일되기 몇 달 전까지도, 어느 누구도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이뤄질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통일 문제 이외에도 구동독(GDR)과 북한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북한에게 “지구상의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라는 수식어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고려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정치 구조와 이념 측면에서 북한은 오히려 파시스트 정권에 더 가깝다. 독일의 분단은 60여 개 이상의 국가가 개입되고 6천-7천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2차 세계대전(1939-1945)의 결과였다. 2차 세 계대전은 파시스트 나치 정권이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다. 독일의 분단과 한반도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좋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북한의 인권상황이나 수령우상화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독일의 1933-1945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유의미하겠다(1933년은 나치 정권이 수립된 해이다). 필자는 나치 정권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메커니즘들을 예시로써 설명하고자 한다. 

정보의 흐름 통제와 교육을 통한 세뇌: 어느 정권에 비교해야 하는가? 

1935년부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SDAP)은 선전부에서 당시의 새로운 미디어였던 TV와 라디오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소개하도록 했다. 결과 모든 뉴스통신사들이 강제적으로 문을 닫거나 선전부에 병합 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모든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여 온 국민에게 동시에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설파할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1943년도에는 1천 6백만 가정에 라디오가 보급되었다. 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것은 극도의 불법 행위로 간주되었고 적발 시에는 청취자나 그 가족 모두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이러한 미디어들, 특히 TV는 새로운 문물이었기 때문에(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나치 정권은 외국의 방송 을 방해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만약 그런 기술을 보유했다면 당연히 사용했을 것이다.

수많은 보고서들에 언급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탈북하는 이유는, 외부 세계에서 전해진 정보의 내용과 북한의 통제된 미디어와 프로파간다가 제공하는 정보가 정반대인 것을 보면서 북한 정권에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자료사진=연합뉴스



따라서 나치 정권은 프로파간다에 있어서 다른 파시스트 국가들의 경험과 연결성을 갖지 못한다. 1944년 말까지도 뉴스에서는 연이은 승전 소식만이 보도되었다. 실제로는 독일군이 모든 전선에서 영구적인 후퇴를 하며 막대한 패배에 허덕이느라 승리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상황에서조차 그랬다. 이러한 거짓 보도는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와 희망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으며 실제로 종전 때까지 잘 먹혀들었다. 광고판과 포스터 곳곳에는 선전문구가, 벽보에는 슬로건과 사기진작을 위한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이처럼 독일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고 동기부여하기 위한 극단적인 프로파간다들은 북한의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또 다른 유사점은 나치 독일이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강렬한 추종 집단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신화까지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북한과 나치 독일의 교육 시스템 또한 서로 닮아있다. 북한에서와 같이, 아이들은 가족에게 속하기 이전에 먼저 국가에 속한다. 모든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유소년 준군사조직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나치 정권이 수립되자 곧이어 학교의 교수 내용이 정권의 지시에 따라 바뀌었다. 일반적인 지식들을 가르치는 대신, 1934년부터는 여러 과목에서 나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을 가르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다양한 지식과 기술력을 갖추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독일에서의 성공적인 세뇌의 결과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1944년 여름쯤이면 나치 독일이 절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일의 모든 국민이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러시아, 프랑스, 영국, 캐나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독일군의 막대한 부분들을 이미 성공적으로 격파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내 대부분의 도시들과 산업체들은 셀 수 없이 이어지는 포격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그날까지도 수많은 독일인들이 독일의 승리를 믿었고 되지도 않는 싸움을 끝까지 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베를린 전투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제대로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극도로 우세한 러시아 군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물론 아이들의 다수가 사망했다. 군인과 민간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싸우지 않은 14세 이상의 남성을 찾아내어 탈영죄로 즉결 처형하기도 했으며, 노인이나 장애인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러한 행동은 종종 상부의 지시 없이, 선전에 자극을 받아 행해졌다.      

수많은 독일 군인과 민간인들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자 동포들에게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러시아 군대에 항복하여 살 방도를 구하였다. 놀랍게도 어린이들 중에는 이 길을 택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탄약이 떨어지면 자살을 택했다. 이러한 상황을 목도한 연합군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충성스런 당원으로 구성된 테러 대대인 SS 대원들에게서 이와 비슷한 광기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이들을 “이데올로기의 전사들(Weltanschauungskrieger)”이라고 일컬었다.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정권의 목적을 위해 죽기까지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정권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신봉자들이었으며 현실에 대한 눈과 귀를 완전히 닫고 오로지 정권에 충성한 이들이다. 이 같은 세뇌는 북한 정권이 목적하는 바와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다.  

북한에게 “지구상의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라는 수식어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고려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정치 구조와 이념 측면에서 북한은 오히려 파시스트 정권에 더 가깝다./자료사진=연합뉴스



결론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봉의 위험성과 북한의 주민들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 정권의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의심이라도 일으키기 위한 모든 전략은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인권의 시각에서 보자면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적인 교훈이 있다면, 전체주의 체제 하의 수많은 사람들이 외부 정보를 갈구했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수많은 보고서들에 언급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탈북하는 이유는, 외부 세계에서 전해진 정보의 내용과 북한의 통제된 미디어와 프로파간다가 제공하는 정보가 정반대인 것을 보면서 북한 정권에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위험의 가능성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그들의 결단을 믿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하되 그들에게 상호작용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북한의 탄압 메커니즘을 전 생애에 걸쳐서 경험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들 자신과 가족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은 그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사점을 연구하는 것이 유의미할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다른 측면들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 오늘날 북한과 같이 나치 독일에서는 친족적 책임(연좌제)이 발생하였지만 구동독 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 북한의 관리소는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들과 구조적으로 대단히 유사하다.
• 2차 세계대전 이전과 도중에 독일 사회를 군사화한 것은 오늘날 북한과 매우 유사하나, 구동독은 그렇지 않았다.
• 극단적인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인권 탄압.
• 국가가 아닌 수령 개인을 향한 충성서약.

사람(Saram e.V.)의 팀원들과 필자는 나치 독일과 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보이는 이러한 혹은 또 다른 측면들에 관한 어떠한 연구든지 기꺼이 돕고자 한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북한인권NGO 'SARAM' 대표

북한과 나치 독일의 교육 시스템 또한 서로 닮아있다. 북한에서와 같이, 아이들은 가족에게 속하기 이전에 먼저 국가에 속한다. 모든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유소년 준군사조직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자료사진=영화 '태양 아래' 스틸컷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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