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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 광주5.18 기념식, 무엇부터 잘못이었나?

2016-05-20 11:0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주필

광주5.18 기념식의 파행 소식을 전하는 그 다음날짜 조간신문들을 훑어보며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사태의 본질을 헛짚는 것도 분수가 있지 이건 완전히 ‘거꾸로 보도’였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매체가 이 지경인데,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제대로 따져 묻는 목소리가 현재까지론 전혀 없다.
 
물어보자. 왜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주무부처의 수장(首長)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행사장 진입 자체를 봉쇄한 유가족 집단난동을 꾸짖는 매체는 단 한 곳도 없는가? 그건 엄연히 공무집행 방해이고, 국무위원에 대한 능멸이자 공권력 무력화 기도가 아니던가?
 
기념식을 중계했던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런데도 모두가 딴소리다. 떼법과 지역정서에 호소했던 무리에겐 아무도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당한 공무를 수행했던 보훈처장은 그런 봉변을 당해 싸다는 투라서 어이가 없다. 다음날 조중동의 보도를 보라. 이게 과연 정상적인 보도인가?

"기념식장에서 쫓겨난 박승춘"(중앙일보 6면) "보훈처장 쫓겨나고…정부 대표 빼고 모두 제창"(조선일보 12면) "성난 광주… 박승춘 쫓아내고 野 지도부에 '똑바로 못하나?'"(동아일보 6면)

보훈처장은 그런 봉변을 당해 싸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기념식 직전인 오전 9시58분 식장에 진입하려던 박 보훈처장은 순식간에 5·18 유가족 그룹에 둘러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 대표로 참석한 황교안 총리가 자신의 자리로 가 먼저 앉은 직후에 일어난 돌발상황, 그러나 조금은 예견됐던 일이기도 했다.
 
소복을 입은 유가족들은 "박승춘 물러가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여기에 올 수 있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실랑이는 3분가량 지속됐지만,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진 못했다. 박 보훈처장은 착석을 포기한 채 행사장 밖으로 등 떠밀려 걸어 나가야 했다.
 
그는 이내 서울로 되돌아야 했는데, 희한한 상황은 이후에도 거듭됐다. 주무부처 수장의 불참이란 비상상황에서도 기념식은 기념식대로 꾸역꾸역 진행됐다. 황교안 총리는 예정대로 5·18 희생자 영령에 대한 헌화와 분향을 했고, 드디어 행사 말미 '임을 위한 행진곡'합창 순서까지 왔다.
 
그때 황 총리와 현기환 정무수석만이 입을 다물었을뿐 앞줄에 도열했던 정의화 국회의장, 정진석 새누리 원내대표, 김종인 더민주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정부의 방침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그 노래를 불러 재꼈지만, 이 20분 기념식은 모두에게 찜찜하고 석연치가 않았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 등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행사장 진입을 막으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행사 중단 선언 뒤 긴급 정부회의 열었어야

결론을 말하자. 총체적인 대응 실패였다. 예정된 기념식이니 진행하자는 판단을 했겠지만, 그건 당장의 상황만을 모면하려는 수세적 태도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난동꾼들에게 정부가 만만하게 보이고, 나라를 상황을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에 불과했다.
 
국무위원이자 주무부처의 수장이 그 수모를 당했는데, 행사는 행사대로 진행한다는 것부터 분명 모순이 아닌가? 난동꾼 그 누구도 현지 경찰에 의해 제지받고 연행당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한 노릇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무엇이 가장 진정 당당한 정부의 대응이었을까?
 
대통령을 대신한 총리는 기념식에 잔류하고, 주무부처장인 박 보훈처장은 행사장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서로 보조를 함께 하지 못한 것부터 일단 아쉬운 대목이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황 총리가 먼저 움직였어야 옳았다.
 
그가 기념식장을 빠져 나와 뒷전에 따로 있던 박 보훈처장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현지에서 비상 정부회의를 즉석으로 소집했어야 옳았다. 회의 소집의 요건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실은 회의 소집 그 자체가 정부의 엄중한 상황인식과 함께 기민한 대처능력을 보여주고, 박근혜 정부의 위엄을 과시하는 행위였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회의에서는 무엇을 결정했어야 했나? 일단 행사중지 선언이 수순이었다. 사실 한두 시간 늦게 기념식이 속개된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최악의 경우 기념식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었다. KBS가 그 과정을 현장 중계할 경우 이보다 훌륭한 시민교육의 아이템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반정부 난동 수준에 상습적인 반 박근혜 정서에 젖은 현지 분위기를 지켜보는 시청자와 국민들은 호남 현지의 비정상적인 공기와 함께‘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인식의 갭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는 결과가 됐을 것이다.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정부 입장 내놔야

물론 보훈처는 그날 보도자료를 내고, "5·18 단체 일부 회원들의 저지로 국가보훈처장이 입장을 거부당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지만, 그 정도론 안 된다. 1987년 체제 이후 심각한 공권력 무력화를 경험했고, 이후 계속 설쳐대는 떼법 속에서 법과 질서가 실종되다시피한 게 한국사회가 아니던가? 더구나 이번 일은 조직적인 공무집행 방해이고, 민주화 타령을 뒤에 업고 있기 때문에 죄질이 썩 좋다.
 
때문에 다음 주 국무회의를 나는 기대한다. 대통령이나 총리 명의로 그날 난동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걸 분명히 해야 옳다. 그날 국무회의가 해야 할 것은 또 있다.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 따위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해줘야 한다.
 
아무리 여소야대 국회라지만, 반(反)대한민국 혁명가요가 협치의 대상일 수 없다는 걸 정부가 위엄있게 보여주길 바란다. 그래야 "노래 한 곡이 협치(協治) 뒤흔들다"는 식의 기사를 쓰고 있는 이 나라의 얼빠진 언론도 조금은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뒷심을 기대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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