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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꿇어?"…상시청문회법 막나가는 국회

2016-05-26 10:2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 법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행사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소위 '상시 청문회법'을 반대하는 청와대를 겨냥해 뱉은 발언이다. 그런데 필자는 거꾸로 묻고 싶다. 그동안 해왔던 주요현안에 대한 청문회를 단지 명시한 것일 뿐이라면 왜 굳이 "남용하지 않겠다"고 했는지 말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남용 가능성이 크다는 뜻 아닌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협치를 깨는 것이라는 희한한 궤변을 동원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협치를 깨는 것인가. 그럼 정부는 국회가 요구하면 무조건 순순히 들어줘야 협치란 말인가. 상시 청문회법안에 상임위 소관 현안이라는 모호한 말을 집어넣은 것도 의혹덩어리다. 이런 문구는 청문회를 열 구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행정부를 통제하고 발아래 꿇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이런 문구야말로 왜 필요한가.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닌가. 우 원내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정부·여당이 더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정국 운영을 하지 말고 당면한 민생 경제에 집중하라는 것"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님을 위한 행진곡' 문제나 국회법 문제 등 민생과 상관없는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앞장서 정쟁을 유발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가 거부권으로 야당의 강경대응을 유발해 국회가 발목을 잡는다는 여론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인 것 같다.

상시 청문회법 핑계로 여야 대결국면으로 가져가서 여당 내분을 덮으려는 시도가 아니냐 하는 눈초리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렇게 민생을 위한다는 더민주당은 민생과 상관없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를 모처럼의 청와대 회동에까지 가서 꺼냈어야 했나. 그것이 "민생에 목숨을 걸겠다"는 당의 태도인가.

정의화 국회의장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상시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관련 의원들이 투표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운 대통령 잡겠다고 제 목에 방울 채우나

상시 청문회법이 누구의 안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 법이 야당에 무소불위 권력의 만능열쇠를 쥐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부 부처 사람들은 물론이요 기업 등 민간인들도 수시로 상임위 청문회에 불려나갈 것이다. 야당은 청문회를 한답시고 미운 놈들을 증인 참고인으로 불러 꾸짖고 호통치고 조지는 분풀이의 장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미국과 같은 정치선진국도 우리와 같이 상시 청문회가 열리지 않느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의회가 우리 국회의 수준과 같은가. 미국 의회가 우리 국회처럼 당리당략의 정쟁정치가 생활화 된 나라인가. 정치문화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선진국의 경우를 가져다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헌법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 감시할 목적으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있는데도 국회법을 개정해 청문회 개최 대상과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풀어놓은 것은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지배하라는 얘기다.

상시 청문회법이 삼권분립의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이렇게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데도 국회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협치 운운하며 청와대를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법안이 확정된다면 20대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이 마비시킨 19대보다 최악이라는 역대급 악명을 떨칠 것이 뻔하다.

다수인 야당 입맛대로 청문회가 밥 먹듯 열린다 치자. 방송과 신문 포털 미디어가 매일같이 떠들어 무능한 정부여당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민심이 여당에게 돌아서서 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까. 어림없는 얘기다. 민심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은 총선 결과가 보여주지 않았나.

여소야대에 벌써부터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 듯한 야당은 명심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당장의 이익만 따지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제 발목을 잡은 것처럼 더민주당은 상시 청문회법으로 제 목에 방울을 채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 잡겠다고 기어코 행정부를 잡는다면 부메랑이 되어 야당 목을 날릴지 모른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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